⑮ 도그 프렌들리(dog friendly) - 3
doggie, puppy, hund, mutt, koira, หมา, 犬… 하나같이 개를 뜻하는 말들. 직접 보니 하는 짓도 달랐다. 앞서 베를린에서는 마트 앞에서 배를 깔고 주인을 기다리던 개들이, 헬싱키에서는 트램 칸칸마다 자리를 잡고 있던 녀석들이, 제주 모슬포에서는 항구 어귀를 어슬렁대던 들개가, 강정마을에서는 높다란 돌담 뒤에 숨어있던 백구가, 주문진에서는 수산시장에서 먹이를 뒤지던 유기견이, 방콕에서는 목줄 없이 대로를 활보하던 길멍이가 나를 반겼다. 이젠 (거기서) 뭘 봤어? 라고 묻는 말에 로컬 맛집, 대성당 같은 유적지가 아닌 "개"라고 답하는 게 익숙하다.
나흘간 도쿄에 머물렀다. 개를 몇 마리나 봤을까. 긴자 신주쿠 시부야 아오야마 등 번화가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4일간 본 개가 열 마리가 채 되지 않았다.
오히려 긴자의 소니빌딩에서 본 '도그봇' 수가 훨씬 많았다. 11월부터 내년 3월까지 소니빌딩에서는 80여년간 출시된 가전제품 수백점을 전시해놓았는데, 12층 건물 중 8~9개 층이 전시장이다. 소니는 그 중 한 층을 통째로 도그봇으로 채워놓았다. 이쯤 되면 '도그봇 프렌들리'. 아래는 사진들(첫 번째는 소니빌딩에서 직접 촬영).
도쿄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로봇에 관한 글을 쓰게 될 줄 몰랐는데 본 게 거의 도그봇이라 그렇게 됐다. 반려동물 시장에도 로봇, AI가 보편화 된다면 과장일까. 여느 개처럼 꼬리를 흔들고 먹이를 뜯고 공을 물어오고 게다가 교감도 있다면 다를 게 뭔가. 녀석이 늙고 병들어 가는 걸 볼 일도 없고,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도 없다.
이 글이 십년 이십년 남아 내 아이가 이걸 읽을 때면 이 또한 유물이 되겠지. 반려의 대상이 바뀌거나 질병 치료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면 노견 병치레는 그저 옛말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집 '아이 로봇'에 나오는 장면이 그리 생경하지 않겠지. 도그봇이 진짜 개와 사랑에 빠지는 그런 세상.
벤과의 5600일 - 프롤로그
벤과의 5600일① 대낮의 실종
벤과의 5600일② 녀석의 간식들
벤과의 5600일③ 벤과의 러닝
벤과의 5600일④ 털 손질
벤과의 5600일⑤ 오줌 소탕작전
벤과의 5600일⑥ 사진 수집을 게을리한 개 주인의 푸념
벤과의 5600일⑦ 벤의 소리들
벤과의 5600일⑧ 개와 목줄
벤과의 5600일⑨ 타이오와의 만남
벤과의 5600일⑩ 타이오와의 이별
벤과의 5600일⑪ 베를린의 개들
벤과의 5600일⑫ 헬싱키의 개들
벤과의 5600일⑬ #개스타그램
벤과의 5600일⑭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