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소티카 안재언 팀장
15세기 우리나라 문헌 <석보상절(釋譜詳節)>에는 '아름답다'라는 말이 '아(我)답다'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아(我)'는 명사 형태이고, 그 뜻이 나(私)라는 뜻이기에 '아름답다'는 '나답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하네요. '아름답다=나답다'라는 등식이 제법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달리 보이는 것이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이 불꽃처럼 타오릅니다. 물론 나다움을 찾고 정의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걸 잘 알기에 마녀가 아름다워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구나 싶기는 합니다.
사실 나다운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타인의 관점과 기준에 자신을 맞추느라 급급하고 헐떡이며 사니까요. 그 일은 힘에 부쳐 생기를 잃고 자신까지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아름다워 지려야 아름다워질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러니 나답게 사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어떻게 자기답게,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걸까?' 그저 감탄하며 호기심에 모락모락 연기만 피울 뿐입니다.
오늘 토크뷰의 주인공은 이런 호기심을 자극하는 마케터입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며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을 딱 좋아하는 마케터이죠. 그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던 대로, 지금처럼 하면 잘하고 있고 잘하게 될 거라는 걸 잘 아는 듯했습니다. 무리하고 거스르기보다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며 그 흐름 속에서 열심을 다하면서 말이죠. 지금을 살고 지금에 충분함을 느끼며 지금의 자신을 아는 그가 그답다고 느껴졌습니다. 그 다운 아름다움을 폴~폴 풍기는 그의 마케팅 이야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가요?
- 두 가지로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우선, 무계획 속 계획. 큰 틀에서 지금까지의 직장생활을 봤을 때 저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가 다양한 산업 분야와 환경에서 일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력이 한 번도 생각해 보거나 계획해 본 적이 없는 경력이에요. 그냥 흘러가는 대로 흘러왔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이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까지 큰 계획이 없었고, 앞으로도 큰 계획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솔직한 답입니다. 대신 당장 오늘 한다거나, 아니면 다음 주, 다음 달에 해야 되는 것들은 굉장히 구체적으로 계획을 잡는 편입니다.
두 번째는 제가 지금까지 다양한 산업에도 있었지만 다양한 직무도 해왔습니다. 영업에도 있었고, 트레이드 마케팅도 했고, 또 브랜드 마케팅도 잠깐 했었지요. 저는 옷을 던져주면 그 옷에 맞춰서 입는 스타일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는 아니고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란 생각이 들어요. 사실 그동안은 제 자신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최근 한 2-3년 동안 '나는 어떤 사람이지?'란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자기 평가(self assessment)라는 걸 처음 해봤는데, 전 스페셜리스트는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어떻게 보면 전문성이 없다는 건 단점일 수도 있는데, 또 어떻게 보면 가장 큰 강점이라고도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전 회사에서 상사와 여담으로 "아무거나 시켜도 난 다 한다."라고 얘기를 한 적도 있어요. 재무를 잘 모르는데, 재무를 하라고 하면, "시도를 해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다 열려 있어요.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없고, 안 해봤던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것에 조금은 더 열려 있는 스타일입니다. 경력으로 봤을 때 이렇게 두 측면에서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 안재언을 소개한다면?
- 인간 안재언은 공감력이 떨어집니다. 제가 쌍둥이 동생이랑 남자 많은 집안에서 커서 그런지 뭔가를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고 이해해 주고 다정한 말을 해주고 뭐 이런 능력은 많이 떨어져요. 다만, 많이 바뀌고 있는 중이에요. 아내를 만나고 지금 딸이 3살인데 딸도 낳고 하다 보니까 이전보다 많이 바뀌고 있어요. 단적인 예로 하나만 말씀드리면, 저는 생일이라는 것도 안 챙기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냥 미역국 먹고 생일 축하 인사 정도였는데, 가족이 모여서 손뼉 치고 노래 부르고 이런 걸 해 본 게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하하하.
이벤트도 하는 아빠가 되었지요. 이런 이벤트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는지 몰랐다고 아내가 서운해할 정도인데요. 딸아이가 태어난 날의 신문을 사서 액자에 걸어 놓고, 아이의 손톱, 배꼽 등도 별도 보관하고, 아이의 사진 앨범 등 나중에 아이에게 선물해 주고픈 것들을 생각하니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더군요. 진심을 가지니까 그런 듯해요. 그래서 기존에는 정말 공감력 하나도 없고 뭔가 인간미가 많이 적었던 것 같아서 반성하고 있고 많이 바뀌고 있다, 진화해 나가고 있다고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케터로서는?
- 제가 마케팅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도 약간 괴리를 갖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런 괴리를 느끼면서 '나는 진짜 마케팅하는 사람은 아니야'라는 생각을 최근에 스스로 인정을 했어요. '마케팅하는 사람이 뭔데?'라고 묻는다면, 마케터는 기본적으로 호기심도 많아야 되고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도 즐거워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저는 그냥 직업인으로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 제 성향이 마케팅에 딱 맞아서 하는 것이다?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카페에 사람이 많아서 줄 서 있다면, 저는 주로 서지 않습니다. 보통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라면 줄을 서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줄 서는 이유를 궁금해하고 호기심이 많아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줄을 서게 하는 걸까, 나도 한번 줄 서서 먹어봐야겠구나, 경험해 봐야겠구나 등의 생각을 특히 이 브랜드 쪽 하는 사람들은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저는 관심이나 호기심 자체가 크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경력이 무척 궁금해지는데요.
- 처음에는 푸드기업에서 가공식품 매장 MD로 일을 시작했어요. 그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한 7년 정도 일하다가 이탈리아 기업인 페레로로 이직을 했습니다. 이후 외국계 주류 회사를 거쳐 현재 룩소티카코리아에 재직 중입니다.
국내 기업에서 외국계 기업으로 옮기게 된 계기는?
-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 같아요. 몸이 조금씩 안 좋아진다라는 게 느껴졌죠. 예를 들어, 아침에 머리 감고 나오면 습관적으로 확인하는 게 부재중 전화가 있는지였어요. 쉬는 날에도 휴대폰을 놓지 못했어요. 어떤 이슈가 터졌을까 봐. 또 당시 선배들을 보는데 제가 5년 뒤 10년 뒤를 봤을 때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라고 할 만한 분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무엇보다 그것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외국계 기업이 국내 기업과 차이가 있었는지?
- 모든 게 다 다르더라고요. 사무실에 갔더니 직원들이 헤드폰을 쓰고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이전 회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문화적 충격을 좀 받았어요. 하하하. 국내 기업이든 외국계 기업이든 장단점이 다 있을 텐데, 상대적으로 제가 느낀 다른 점은 일하는 방식이었어요. 국내 기업에서는 탑다운(top-down) 방식이어서 이유를 물을 필요 없이 그냥 주어진 일을 하면 되었는데, 외국계 기업에서는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해야 하고, 또 누군가 와서 "이건 언제 할 거야?"하고 묻더라고요. 자율에 기반해 조금 더 큰 책임감을 느끼도록 하는 방식이고, 스스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조직 문화라고 느꼈습니다. 모든 게 다르다 보니까 초반에 적응하는 데 많이 어려웠던 기억이 나네요.
제일 어려웠던 게 뭔가요?
- 기본적으로는 언어가 힘들었어요. 상사가 이탈리아 사람이었는데, 이탈리아인의 영어가 제게는 좀 힘들더라고요. 하나도 못 알아듣고 말도 안 나오고. 그전까지 10여 년간 영어 공부를 해오면서 힘들어 본 적도 없고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아무런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살았구나, 제 영어 실력에 대해 환상이 깨져버렸던 상황이었지요. 지금 다니는 회사는 세 번째 외국기업인데, 그곳이 외국인과 한국인 모두 포함해서 영어 수준이 제일 높았던 곳이었어요. 모든 분들이 영어를 정말 잘해서 많이 움츠러들었었죠.
두 번째는 일하는 방식이나 이런 것도 다 달랐기 때문에 모드(mode)를 외국계로 바꾸는데 한 6개월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나름 적극적인 성격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전 습성 때문에 저의 모든 것을 외국계로 바꾸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6개월 정도 적응을 하고 나서는 재밌게 일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주된 업무였던 트레이드(trade) 마케팅 일을 하게 되었는데, 사실 트레이드 마케팅이 뭔지도 몰랐더랬죠.
외국계 기업은 외국계 출신 마케터를 선호하지는 않는지?
- 글쎄요. 다양한 요인이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국내 기업과 외국계 기업의 조직 문화와 업무 방식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어느 기업이나 사람이 나간다고 해도 회사가 문제없이 돌아가도록 하겠지만, 외국계 기업은 개개인의 비중이 큰 편이라고 생각해요. 프로젝트마다 담당자의 어떤 경험이나 역량들이 굉장히 힘을 많이 받는 편인데요, 그만큼 스스로 뭔가 더 일을 해볼 만한 기회도 더 많고, 또 반대로 그만큼 더 많은 책임감을 스스로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생각나는 부분은 큰 기업에서 좋은 시스템을 경험하신 분들은 그와 같은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를 바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외국계 안에서도 크고 작은 기업이 존재하고,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도 많거든요. 그럴 때 '이거는 왜 안 돼? 저것도 안 돼? 왜 이것도 안 돼?' 등의 불만을 표할 확률이 크다고 생각해요. 고민이 되는 부분이지요. 예전에 다닌 외국계 기업에서도 대기업 출신자 채용에 신중했어요. 시스템만 따지고 시스템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초반에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거든요.
만약 국내 기업의 마케터가 외국계로 가고 싶다면, 몇 년 차 이내로 움직이는 게 좋을까요?
- 외국계 기업을 목표로 한다면, 처음부터 외국계 기업에 지원을 하는 게 제일 좋다고 보는 입장인데요, 혹시 경력자라면, 3년 이전에 옮기는 걸 추천드리고 싶어요. 3년이 넘어가면 업무 방식이나 사고방식이 많이 국내 기업의 방식에 맞춰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마케터로서 국내 기업과 외국계 기업 중 어디에서 일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나요?
- 어디든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정말 이건 순전히 개인의 취향 문제와도 같다고 봅니다. 스스로 고민을 해보고 자신에게 더 맞는 곳에서 일해야겠지요. 제 경우는 흘러오다 보니 지금과 같은 경력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이 무기가 되었기에 외국계에 계속 있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데요. 자신의 심장이 뛰는 곳에서 마음이 움직이는 곳에서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 해요. 업무 방식이나 사고방식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곳을 선택해서 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고 싶어 하는 분들께 외국계 기업을 선택할 때 참고하면 좋을 기준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 꼭 본인이 알고 좋아하는 브랜드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럴 경우 본인의 시야를 좁히는 거고, 결국 기회도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외국계는 또 다른 세상이고 우리가 모르는 브랜드가 무조건 더 많기 마련이기 때문에 시야를 넓혀 볼 것을 제안드리고 싶어요. 제 주변에는 사실 소비재가 아닌 외국계 기업에 다니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거기도 정말 또 다른 큰 세상이거든요. 그러니까 굳이 내가 아는 분야만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술을 안 먹는다고 주류 회사에 안 가고, 패션을 모른다고 패션 회사에 안 갈 필요도 없는 것이죠. 자신이 모르는 분야라도 마음을 닫지 않고 다 열어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채용 시장이 많이 어렵다고 해요. 외국계 상황도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고요. 이럴 때 외국계 기업 지원자가 고려하면 좋을 사항은?
- 말씀드렸듯이 기준에 제약을 두지 말고 다 열어 놓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면, 자기 평가가 중요합니다. 이거 안 하시는 분들 많을 것 같은데요, 저도 그랬습니다. 생각도 안 해봤었는데, 한 2년 전부터 해보기 시작했어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계속 테스트도 해보고, 내가 강점이 뭐고 약점이 뭐고 이런 진지한 고민을 해보길 추천드립니다.
페레로에서 트레이드 마케팅을 하게 되었다고 했는데요. 조금 생소한데, 트레이드 마케팅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려요.
- 트레이드 마케팅의 트레이드는 채널을 의미합니다. 무역이란 의미의 트레이드는 아니고요. 채널은 카테고리마다 정리를 하기 나름이지만, 예를 들어 초콜릿이 제품이라면, 초콜릿이 팔리는 하이퍼마켓(대형할인마트), CVS(편의점) 같은 곳들이 채널이 되고, 주류 회사 같은 경우는 바(bar)라든지 레스토랑이 채널이 될 수 있지요. 지금 저희 회사는 안경원이라든지 아니면 백화점 채널 이런 곳들이 채널, 즉 트레이드가 됩니다. 전반적으로는 우리 브랜드가 팔리는 접점에서 수행하는 활동들을 관리하는 것이 트레이드 마케팅이라고 이해를 하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집중을 하는 부분은 인력, 예산을 포함해 여러 가지 자원들을 계속 최적화한다,라는 관점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항상 저희가 질문받는 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적은 투입으로 조금 더 많은 산출물을 낼 것인가, 인데요. 브랜드 매니저들 같은 경우는 브랜드 투자를 한다고 해서 바로 결과가 나오기 어렵잖아요. 반면에 트레이드 마케팅은 자원의 최적화에 집중하면서 단기적인 관점에서 산출물, 결과물을 조금 더 많이 낼 수 있는 기법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렇군요. 트레이드(trade) 마케팅 부서가 많이 있나요?
- 사실은 영업 쪽에 더 가까운 조직입니다. 트레이드 마케팅은 많은 회사에서 영업 부서의 하위 조직으로 들어가 있기도 해요. 아무튼 웬만한 큰 소비재 회사는 트레이드 마케팅 조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브랜드 마케팅 팀과 트레이드 마케팅 팀이 따로 있는 곳도 있지만, 브랜드 마케팅 팀 없이 트레이드 마케팅 팀이나 제품 마케팅 팀만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처음 트레이드 마케팅을 시작했을 때, 어떤 일들을 했나요?
- 제가 처음 트레이드 마케팅을 했을 때 회사에 사업상 매출이 많이 일어나는 주요 시기가 있었는데요.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이렇게 한 네 시기에 전체 매출의 상당수가 발생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주요 시즌에 담당 채널의 프로모션을 총괄했어요. 전국에 한 450군데 정도 되는 할인 마트에서 판촉 사업을 하기 위해서 디스플레이 제작 및 설치, 판촉사원 교육 및 투입 운영, 효율 분석 및 피드백 개선 등의 검토 작업을 했고요, 전국에 몇 만 개 있는 편의점들도 마찬가지로 운영관리 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매장 진열대에 우리 제품의 최적의 진열 상태에 대해서도 연구를 많이 했었고, 시즌 행사 매대뿐만 아니라 본 매대로 소비자가 카트를 끌고 왔을 때 우리 제품이 어디에 위치해야 되는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오프라인 소비자 행동 분석을 많이 했겠습니다.
- 네, 리서치 회사를 통해 고객 인사이트(insight)를 얻기 위해 계속 리서치를 했었습니다. 지금은 디지털 기반으로 많이 옮겨오기도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너무 재밌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또 어렵기도 했었지요.
고객 인사이트 리서치를 통해서 효과를 보았던 사례가 있다면?
- 정확히는 점주 인사이트를 활용한 사례라 할 수 있는데요. 편의점에 가보면 덤프빈(dumpbin)이라고 부르는 스탠드형 행사 매대가 있어요. 당시 저희가 한 시즌에 5만 개 정도를 편의점에 배포를 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 브랜드 행사 매대인데 점주분들께서 페레로뿐만이 아니고 온갖 경쟁사 제품을 다 올려놓는 거예요. 이게 항상 딜레마였지요. 카테고리 선두주자 브랜드로서 덤프빈 배포를 당연히 해야 되긴 하는데, 저희 예산을 투입해서 경쟁사 제품까지 홍보하는 격이니 난감했죠.
하이퍼 같은 경우는 협의를 할 여지가 있지만, 4-5만 개가 되는 편의점은 일일이 점주 분들을 다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였어요.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고, 해결 프로젝트를 시행했죠. 기존에는 조립형 매대를 보내 점주분들이 조립을 해서 사용했었는데, 아예 우리 제품으로 모두 채운 완성형 매대를 보내는 프로젝트였어요. 기존의 사람 크기의 매대를 보내기는 어려워서 판매율이 가장 높은 위치에 설치할 수 있는 한 단짜리 매대를 만들어서 제품을 모조리 포장해서 보내는 거였죠. 즉 우리만의 매대를 만들자는 거였어요.
우려 사항은 택배 운송 시 파손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3개월여간 공을 들여 신개념 진열 매대를 만들었어요. 목업을 만들고, 택배로 붙여 테스트도 해보고 하면서 파손되지 않는 매대를 만드는 데 성공을 했죠. 문제를 인식하고 우리가 방법을 찾자라고 해서 새로운 시도를 한 성공 사례였어요. 점주분들께 우리 제품만 진열해 달라고 해도 그렇게 잘 지켜줄지 알기도 어렵고, 또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채널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그냥 방법을 찾아야 되는 게 아닌가 싶었더랬습니다.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좋은 결과를 냈었던 프로젝트였어요. 이 프로젝트로 전 승진까지 했었습니다.
와우, '안 되면 되게 하라' 그런 것 같습니다. 하하하.
초콜릿 기업에서 주류 기업인 '빔 산토리'로 이직을 하셨는데요, 제품의 카테고리가 전혀 다른 데 혹시 술을 좋아하나요?
- 아닙니다. 하하하. 당시 술에는 관심도 없었고 위스키도 먹어본 적 없었어요. 소주도 안 좋아하고, 지금도 안 좋아합니다. 당시 지인의 소개로 지원을 하고 1차 면접을 봤는데, 면접관이셨던 마케팅 이사님이 너무 신기한 거예요. 인터뷰가 너무 좋았고 면접을 보고 나니까 그 브랜드가 궁금해지더군요. 그래서 그날 저녁에 면접 질문 중에 나왔던 하이볼을 먹으러 아내와 함께 나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전 하이볼이 뭔지도, 먹어보지도 못했었거든요. 그렇게 1차 면접 후에 진지한 모드가 되어 이후 면접에 계속 임하게 되었고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면접관과의 인터뷰가 좋아서 브랜드가 궁금해지고 이직까지 하다니, 색다른 이직 이야기입니다.
이직 후에 술에 대한 어떤 시각이 생겼나요?
- 술이라는 게 굉장히 매력적인 산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콜릿 판매량이 그냥 숫자라고 한다면, 술 판매량은 대표적인 문화로 느껴졌습니다. 가령, 초콜릿의 경우 안 팔리던 제품이 팔렸다고 어떤 문화가 바뀐 건 아니거든요. 하지만 술은 문화가 바뀌는 거라고 생각되었어요. "사람들이 안 먹던 위스키를 먹기 시작하네. 하이볼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네. 위스키를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있어." 이런 식으로 문화가 바뀌는 거란 시각이 생기니 맥주나 소주가 아닌 위스키 회사의 마케터로 일할 수 있다는 게 어떤 큰 자긍심, 영광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주류 업계에 들어가 보니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우리가 어떤 문화를 창조하는 조직이구나" 그 점이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주류 기업에서 제가 6년 가까이 있었는데요. 시작했을 때와 나왔을 때를 비교해 보면 위스키 문화가 완전히 다 바뀌었어요. 사람들이 하이볼을 많이 먹는구나, 이렇게 시장이 바뀌는데 제가 일조를 했다는 것에 자긍심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와, 하이볼 문화를 만든 분 중 한 분이셨군요. 그 역사가 궁금한데요.
-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하이볼은 15년 전에 일본에서 시작한 건데요. 배경을 조금 설명하자면, 일본에서 위스키는 한 2-30년 전에 엄청 붐(boom)이었어요. 그러다 점점 위스키가 아버지들이 먹는 술이란 이미지가 형성되다 보니까 업계에서는 큰 고민이 되었죠. 그래서 산토리에서 당시에 고민을 했던 게 어떻게 하면 젊은 층에게 위스키를 소구 할까였어요. 그래서 낸 안이 맥주 먹는 느낌을 위스키에도 줘보자는 거였고, 어떻게 그렇게 할까라는 고민에서 '그럼, 위스키랑 탄산수랑 섞어서 먹자'로 풀게 되었던 것이었죠. 맥주잔처럼 하이볼잔도 만들면서 시작한 것이 하이볼입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하이볼의 유래는 그렇습니다. 그게 2010년대 초반에 일본에서 시작되어 대략 5년 뒤에 한국에 넘어오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제품이 하나의 문화가 된다는 건 상상만 해도 멋진 일인데, 그 배경을 듣게 되니 재미있네요. 업계에 계실 때, 한국에서 하이볼 붐이 일게 된 계기가 있었다고 보는지?
- 코로나. 당시에 사람들이 집에 있다 보니까 집에서 술을 먹게 되잖아요. 맨날 먹던 소주 맥주 말고 다른 게 없을까 찾다 보니 이자카야 등에서 먹던 위스키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홈술(home+술)'이라는 트렌드가 위스키, 그리고 하이볼을 이끌었다고 봅니다.
젊은 층을 겨냥한 위스키의 변신은 성공한 거라 할 수 있겠네요.
- 기존에 갖고 있던 위스키 이미지가 아버지 찬장에 있는 술, 혹은 룸살롱에서 접대받는 술, 또는 폭탄주로 먹는 술이란 극한의 이미지였다면, 하이볼을 통해 요즘 젠지(GenZ)라든지 20대, 30대 초반의 젊은 층에게 형성되었던 그런 이미지를 깼다는 게 가장 큰 성과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다만 일본의 하이볼이 단맛이 없는 탄산수와 위스키의 조합이라면, 한국에서는 단맛이 있는 토닉워터를 섞는 하이볼이 빠르게 확산되었다는 데에 차이가 있겠습니다.
아, 처음 일본에서 시작된 오리지널은 탄산수 하이볼이었군요. 국내에서 유행한 토닉 워터 하이볼과는 차이가 있는데, 마케팅에 애로 사항은 없었는지?
- 오리지널 탄산수 하이볼에 대해 시장에 많이 알리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 일환 중에 하나가 '하이볼 명가'라는 인증 제도였고, 중요한 프로젝트 중에 하나였죠. 오리지널 탄산수 하이볼을 제대로 만들고, 그에 어울리는 좋은 품질의 음식을 판매하는 곳들을 우리 회사에서 선정을 해서 인증을 하자는 거였습니다. 나름의 효과가 있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명가로 인증된 점주들은 정말 하이볼에 진심인 분들이고, 당연히 음식에도 진심이기 때문에 그 품질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하이볼이 지금의 수준으로 확대되는 데는 명가 업장과 점주분들의 영향력이 기여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 업장들은 저희 브랜드보다 더 유명한 곳들이어서 저희가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저희의 노력 속도보다 토닉 워터 하이볼이 퍼지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르고 시장이 커져서-결과적으로는 저희의 마케팅 노력이 크게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얘기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하이볼의 탄생 배경과 문화 창조, 차이 등에 대해 들으니 무척 재밌습니다. 술 판매 데이터는 수치 이상으로, 문화의 변화를 나타내는 거란 의견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으로 하이볼을 마실 때 오늘 들은 이야기가 꽤나 좋은 대화 메뉴가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지금까지 초콜릿 회사부터 주류 회사에 이르기까지 트레이드 마케팅을 하면서 좋은 성과와 시도에 대해 얘기를 해주셨는데요. 마케팅이라는 일을 직무로 하면서 교훈이 컸었던 사례도 있지 않았었을까 합니다. 실패까지는 아니어도 어떤 일을 했는데 앞으로 일을 해나가면서 이거는 진짜 주의하고 참고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던 일이 있다면?
- 특별한 사례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한 대부분의 일에는 배움이 있었고, 앞서 제 소개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후회를 안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제 마음 가짐은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기초하기 때문에 미련이 없습니다. '그 시간으로 돌아가면 이걸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돌아가고 싶다!' 이런 생각을 안 하는 편입니다.
그 확신과 마음 가짐이 부럽네요. 단단하지 않으면 그러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마케팅 직무를 할 때 꼭 따르는 자신만의 일의 기준이나 업무 가치관이 있나요?
- 항상 고민을 많이 하는 부분이 이 제품을 누가 쓸까, 즉 고객에 대해서인데요. 이는 사실 브랜드 매니저들이 해야 될 핵심 업무 중에 하나인데 트레이드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예를 들어서 이런 거죠. 저희 회사에 레이벤(Ray-Ban)과 오클리(Oakley)라는 주요 브랜드가 있는데, 두 브랜드 모두 목표 고객이 젊은 세대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실은 젊은 세대도 다 다릅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젊은 세대가 고객인지 고민을 항상 합니다. 대학생인지 사회 초년생인지, 아니면 30대 중반인지. 그리고 이 사람들이 어떤 페인 포인트(paint point)를 갖고 있고, 어떤 니즈를 가지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를 눈을 크게 뜨고 보려고 합니다. 이제 저도 연차가 계속 쌓이다 보니까 공부를 해야 되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하하하. 그래서 항상 업무를 할 때, '이게 맞나?' 검증을 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프로모션을 하나 한다면, 이게 우리 목표 고객한테 맞는 얘기인 건가? 연관 있는 얘기인가? 항상 검증을 하는 것이죠. 워터밤 페스티벌 행사를 한다 치면, 레이벤 고객이 그 행사에 갈까 상상을 해봅니다. 레이벤 고객은 어떤 스타일이고,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아, 그럼 이 고객은 워터밤 페스티벌을 갈까 아니면 서울 뮤직 페스티벌을 갈까, 이런 고민을 마케팅 팀에서 계속하는 겁니다..
고객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은 마케터에게 숙명이죠. 하하하.
마케터가 마케팅을 할 때 꼭 한 가지 정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면?
- 저는 '디테일(details)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선릉역에 가보면 2호선과 분당선이 있어요. 두 라인의 차이를 보냐고 저희 팀에도 물어본 적이 있는데요. 무슨 차이가 있냐면 분당선 선릉역은 코레일, 2호선 선릉역은 서울 메트로에서 운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두 회사가 운영하는 톤이 달라요. 광고판부터 조명, 폰트, 모든 게 다르죠. 이 차이를 알고 있냐고 물으면, 한 반 정도는 모른다고 그래요. 저는 마케터라면 이 디테일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케터에게 필요한 자질이라 볼 수 있겠네요.
- 제 생각에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이라 말하고 싶어요. 비록 큰 틀 안에서는 루틴이 다 있겠지만, 다른 부서랑 대비해 봤을 때 특히 재무라든지 영업이라든지 이런 부서는 월별로 돌아가는 사이클 안에서 계속 움직이는 반면, 마케팅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에요. 아마 대부분 절반 정도의 일이나 프로젝트가 해오지 않았던 것들일 수 있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만나야 하거든요. 제 개인적으로도 새로운 것을 계속 찾아다녀야 되다 보니까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 꼭 필요한 자질이라고 보고, 저도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해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주요 채널별 마케팅을 달리 하는지 혹은 일원화하고 있는지?
- 채널별 접근이 좀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안경원 채널 같은 경우는 관계가 많이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해서 안경사분들이랑 어떻게 하면 더 유기적인 관계를 가져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있고요. 면세나 백화점 같은 경우는 진열 방식 등에 있어 고민을 더 하려고 합니다.
기존 소속 기업들과 현재 (안경) 패션 기업의 마케팅에 다른 점이 있을까요?
- 기본은 똑같은 것 같습니다. 잠깐 말씀드렸던 것처럼, 결국 우리의 제품, 우리 브랜드를 소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계속 고민한다는 점에서 카테고리를 넘어서 같다고 생각합니다.
패션 업계에서만 느껴지는 점이 있지 않나요?
- 경쟁이 굉장히 치열하다는 점, 그리고 그 경쟁이 기회일 수도 위기일 수도 있다고 느꼈어요. 해당 카테고리에 굉장히 강한 로컬 브랜드가 존재하다 보니 그렇게 느꼈는데요.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로컬 브랜드가 굉장히 강한 기업이지만, 한국 사람으로서는 좋은 현상이고 기회라고 느끼기도 합니다. 지금은 한국이 트렌드세터(trendsetter)로 떠올랐잖아요. 제가 얼마 전 출장을 다녀왔는데, 모두 한국만 바라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아시아를 넘어서 유럽에서도 한국에서 뭔가를 좀 하고 싶어 하고 있고, 그래서 저는 한국 마케터로서 많은 기회와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게 제가 현재 기업에 와서 최근 두 달 동안 가장 강렬하게 느꼈던 점입니다.
어느 산업 분야로 가더라도 경쟁 업체랑 대비해서 꼭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이 있다면?
- 전반적으로 봤을 때 지금까지 안 해봤던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보려고 합니다. 요즘은 고객 접점의 네트워킹을 강화해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안경사분들을 만나서 그분들의 얘기를 들어본다든지 바이어(buyer) 미팅에 동행해 바이어와 얘기를 해본다든지 등, 이런 소통에서 나올 수 있는 인사이트가 굉장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고객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우리 산업에 대해서 우리 브랜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가려운 곳이 있는지 등등. 그런 것들에서 나올 수 있는 인사이트가 많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접점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마케팅으로 풀어내는 과정에서도 안 해봤던 시도들을 많이 해보려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요즘 눈여겨보는 마케팅 트렌드가 있나요?
- 젠지(GenZ) 세대에서 건강을 중시하는 경향이 많이 보여서 그 트렌드를 유심히 보고 있고, 저희 브랜드도 그런 건강 커뮤니티들과 소통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품 판매에 초점을 맞춘다기보다는 브랜드 빌딩 차원에서 요즘 젊은 세대가 많이 참여하고 있는 커뮤니티와 접촉을 하면서 우리 브랜드를 노출시키려는 방향으로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그런 트렌드를 보고 있긴 하지만, 세대 트렌드는 계속 바뀌니까 계속 모니터링해 가면서 민첩하게 방향을 설정해 나가야 될 것 같습니다.
일하면서 영감을 얻거나 혹은 새로운 활기를 찾기 위해 하는 활동이 있다면?
- 일단 저는 걷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좀 생각이 복잡할 때 걸으면서 생각을 많이 정리합니다. 전 1시간이든 2시간이든 걸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많이 걸어 다니고, 집에서 시내 나갈 때도 걷고, 퇴근할 때 좀 정리가 필요하다 싶으면 지하철역에서 미리 내려서 1시간 정도 걸어가곤 하는데, 그때 영감 아닌 영감을 받는 경우도 있고 생각이 정리되기도 합니다.
마케터가 하면 좋을 취미나 공부가 있을까요?
-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요. 그냥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으면 좋다고 생각해요. 사소한 것에 궁금증을 많이 가지고 있고 고민을 많이 하는 그런 리더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호기심이 부족해 노력해야 되는 부분이죠.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저기 사람이 많이 서 있네, 저기 되게 핫하네'하면 그냥 넘어가는 게 아니고 왜 핫한지 한번 찾아보기도 하고, 시간이 되면 직접 가서 줄도 한번 서보고, 먹어도 보고 결과도 보고, 구매도 해보고 하는 그런 경험들이 되게 중요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텍스트를 접하길 추천하고 싶어요. 제 경우에는 책을 읽으려고 노력은 하는데 많이 읽지는 못하고 있고, 대신 신문은 대학생 때부터 매일 읽고 있습니다. 마케터에게 장문력은 중요합니다. 하다못해 어떤 이벤트의 카피(copy)를 쓸 때에도 맥락에 맞는 말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마케터에게는 마케팅 글을 읽고 쓰는 마케팅 문해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변에도 신문 사설 읽기를 추천하는 편입니다.
초반에 마케팅이 성향에 맞아서 하는 건 아니라고 했는데, 마케팅이란 직무를 잘 선택했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다른 직무를 했다면 더 잘했을 것 같다고 생각하나요?
- 그런 생각은 안 해봤던 것 같아요. 그런 거 보면 잘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앞서 얘기했듯이, 이 직무가 나의 어떤 특성과 참 잘 맞아떨어진다,라는 이런 특별함은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회사 생활을 충실히 했다는 데서, 마케팅이 곧 회사 생활이니 잘 선택했다고 보는 것이죠. 너무 회사원 같은 대답인가요? 하하하.
솔직한 답변이라 더 좋습니다. 그럼 질문을 좀 틀어서 과거로 돌아가 다시 직무를 선택할 기회가 있다면 어떤 직무를 해보고 싶나요?
- 제 경력으로 봤을 때는 트레이드 마케팅이 최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MD 생활 6-7년 했을 때 그 경험도 최대한 살릴 수 있고, 이후의 직장생활을 통틀어 봤을 때 트레이드 마케팅 직무가 어떻게 보면 최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후배나 동료 마케터와 평소에 자주 나누는 말이 있다면?
-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 어제 오랜만에 예전 기업에서 함께 일했던 일본인 동료와 술 약속이 있어서 나갔다 왔는데 한 4년 만에 만났는데도 너무 좋았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하게 일을 하다 오랜만에 만났을 때 옛날 같이 재미있게 일했던 순간들을 곱씹으면서 술 한잔 할 수 있다는 게 말이죠. 차이는 있겠지만 외국계는 동료와 같이 일하는 기간이 3- 5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 기업 출신이라는 거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서로한테 많은 도움이 되고 많이 배웠다는 기억들을 서로가 가지고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럴 수 있는 긍정적인 조직문화가 회사의 요구가 아닌 구성원들끼리 자연스레 형성되는 조직이 많이 생겨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과거나 미래로 갈 기회가 있다면 가고 싶은 시점이 있나요?
- 아니요. 저는 지금이 딱 좋아요. 좋았던 나이대가 있긴 하지만 그 나이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더 늙고 싶은 생각도 없고 지금의 제 나이가 좋습니다.
저도 지금의 저를 좋아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하하하. 부러운 대목입니다.
그럼 지금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잘하고 있어!" 왜냐하면 제가 이제 새로운 기업에서 출발을 했으니까요. 많이 배워가는 과정이고, 알아야 될 게 새롭게 많은데 해오던 대로, 지금 하고 있는 대로 그냥 꾸준하게 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 해서요.
오늘 인터뷰가 참 기쁘네요. 최근에 자존감이 떨어져 계신 마케터들을 많이 만났거든요. 누가 못한다고 구박을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성장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을 하다 보니까 자존감이 떨어져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하던 대로 잘하면 된다는 긍지 있는 분을 만나니 반갑고 기쁘고 좋습니다.
혹시 가족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 일하면서 육아를 하고 있는 아내한테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많이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어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아내와 함께 일과 육아를 잘해나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늘 팀장님 덕분에 '지금 이대로 좋다'는 배움을 얻어 갑니다. 배움이 있는 귀한 시간 허락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법륜 스님의 책, <지금 이대로 좋다> 본문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좋다 싫다에 구애받지 않는 언제나 지금 이대로 좋은 삶이어야 합니다.
지금 이대로의 인생이 훌륭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면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책, <지금 이대로 좋다> 본문 중에서
안재언 팀장과 너무 딱 맞아떨어지는 구절이라 놀랍기까지 했습니다. 지금을 충실히 살아내며 '지금이 딱 좋다'는 그의 이야기 속에 덧붙임과 무리함이 없어 더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불교에서 너무 애쓰지 말라는 말은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들은 적이 있는데요.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지 않고, 남들이 정해 놓은 것에 집착하지 않으며, 너무 애쓰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지금 이 순간에 성심을 다하는 그가 자유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현실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가 괜찮을 줄 알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이 자기 사랑의 시작입니다.
- 책, <지금 이대로 좋다> 본문 중에서
마녀가 참 못하는 것 중에 하나가 현실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인데요. 안재언 팀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지금껏 해오던 대로 하면 자신이 괜찮을 줄 알고,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아는 마케터처럼 보였습니다. 현실의 자신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은 자기 사랑의 시작일뿐만 아니라 자기답게 사는 시작이라 할 수 있는데요. '아름답다'가 '나답다'는 관계 등식이 성립한다면, 아름답게 사는 시작인 셈이기도 합니다. 이쯤 되니 그는 진정한 자유인이자 아름다운 사람으로 귀결이 되네요. 하하하
안재언 팀장은 손사래를 칠 것 같지만 오늘 그와의 인터뷰에서 마녀가 배운 것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현실의 자신을 인정하고 수용하기, 지금을 충실히 살기입니다. 마케터로서의 역량도 돋보였지만 일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사고에서 더 큰 울림이 있어 그런지 마치 한 권의 자기 계발서를 읽은 느낌이었습니다. 대단히 강조하거나 힘을 주어 말하지 않았는데도 마녀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으니 자기 계발서 중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무리가 없는 마케터, 사람이 지속가능하다고 믿어서 더 그랬나 봅니다.
이상 친절한 마녀였습니다!
[더 토크뷰]는 홍보마케터, 그리고 협업하는 대내외 여러 직군의 사람들을 만나 슬기롭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친절한 마녀의 B2B 마케팅] 매거진 속 코너입니다. 사람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각각의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통찰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또, 다른 기업에서 일하는 홍보마케터, 개발자, 기획자, 그리고 CEO 등의 이야기를 통해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도 있겠구나’ 이해하며 소통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이 글은 어때요?
[더 토크뷰 시즌 3]
스물다섯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그러나 즐겁게 사는 모금가
스물네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무기를 든 행운의 마케터
L [기고] 창의력 대신 데이터로!
스물세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웬만하면 이 마케터를 막을 수 없다
스물두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편] 기분좋~게 가슴 뛰~게 마케팅
L [기고] 당신, 1인 마케터인가요?
스물한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편] 내향형이지만 마케팅은 잘합니다
[더 토크뷰 시즌 2]
스무 번째. [더 토크뷰] 마크툽! 운을 내 편으로 만드는 마케터
열아홉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편] 마케팅 문해력왕
열여덟 번째. [더 토크뷰_CEO 편] 날개를 준비하는 사람
열일곱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편] 위풍당당 마케터
열여섯 번째. [더 토크뷰_CEO 편] 나의 꿈이 너의 꿈을 빛나게
열다섯 번째. [더 토크뷰_피플팀 편]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세계
열네 번째. [더 토크뷰_CEO 편] 가짜 일ㆍ진짜 일ㆍ대표의 일
열세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편] 잇프피 마케터의 불편한 마케팅
열두 번째. [더 토크뷰_CEO 편] 시를 사랑한 청년 CEO-파트 1
[더 토크뷰_CEO 편] 시를 사랑한 청년 CEO-파트 2
열한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편] 서울 강남에 외국계 기업 다니는 마케터 전 과장 이야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