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악인사이트 김현진 전략기획 디렉터
타인을 공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공감까지 가는 길 굽이굽이마다 자신을 만나야 하는 숙제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 길은 문제를 해결하며 한고비 한고비 넘는 스무고개 같은 길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랬듯 수십 년 전에 헤어졌던 혈육을 찾은 것처럼 쪼개졌던 내 심장의 일부를 찾는 뜨거운 설렘과 횡재의 길이기도 하다.
정혜신, <당신이 옳다> 중에서
어느 날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인생에서 어떻게 일해왔는가를 듣는 일은 항상 두근거립니다. 이 두근거림은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는데요, 기분 좋은 설렘과 더불어 진중함과 신중함이 함께 가슴 한편 한켠에 자리 잡습니다. 한 스푼의 가벼움과 두 스푼의 무거움이 공존한다고나 할까요? 한 사람의 업력을 귀로 글로 새기는 일이니 그럴 수밖에요.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마녀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듣듯 심장이 요동치기도 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자음과 모음이 차오르기도 합니다.
짧은 시간 나눈 대화로 인터뷰 대상자들의 전부를 알 수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마다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스무고개를 넘듯 한 질문 한 질문을 하다 보면 삶과 일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와 사고를 엿보게 됩니다. 그때 공감도 했다가 고개를 갸우뚱도 했다가 다시 응원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요, 그 순간들은 제 자신을 만나는 숙제의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는 그들의 형형색색 다채로운 삶에서 '나와 같은 모습과 다른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만나고 대화하고 공감하고 성찰하는 순간을 선사하는 [더 토크뷰]는 그래서 언제나 뜨겁게 설레기도 하고 행운처럼 느껴집니다. 매번 감정적인 동요가 일며 횡재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지요. 오늘도 마녀는 횡재를 했습니다. 내면의 단단함으로 거침없이 하지만 우아하게 일을 해나가는 분을 만났거든요. 개인적으로 이상형에 가까운 분인데요, 조곤조곤 말하는 모습에서 우아함이 드러나고 이야기에서 엿보이는 내면은 곧고 단단해 보였습니다. 외유내강(外柔內剛). 이 네 글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분입니다.
카디악인사이트의 김현진 전략기획 디렉터를 지금 만나 봅니다~
자신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 '계속 조금씩 성장하는 사람'. 빨리 두각을 나타내는 편은 아니지만 계속 가고 있는 방향을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아는 것도 좀 늦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멈추지 않고 조금씩 성장해 왔고, 이제는 제가 가진 스토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팔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느리게 성장하는 쪽이 자신을 더 잘 대변한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내가 가진 스토리를 잘 팔 수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더 가까운 설명일까요?
- 내가 가진 스토리를 잘 팔 수 있는 사람. 예전에는 그러지 못했지만, 지금은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여러 사람한테 나눌 수 있는 사람, 일에서도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그런 사람으로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이 대표적으로 어떤 스토리를 잘 파는 것 같나요?
- 제 인생에서 사람들이 대부분 '그것까지,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라고 말하는 결정들을 중간중간 했어요. 예를 들어서 한 조직에서 나올 때, 아니면 일본 현지 기업에 다니기로 결정했을 때, 이런 모든 결정 사항에 대해 주변에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냐?"라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제일 가까운 사람들도 그랬는데, 전 그냥 제 나름대로 "난 이걸 한번 해보고 싶어"라고 생각하고 결정했어요. 무모한 도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과정을 겪었을 때 제가 얻고 배운 게 진짜 많았거든요. 그 이야기를 잘 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스토리가 대부분 그런 식으로 흘러가면서 인생의 챕터(chapter)를 옮겨갔던 것 같아요.
해외 근무는 좋은 기회이자 경험이라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 되냐?"라고 이야기했을까요?
- 제가 지맨스 헬스케어 연구소에서 상품 기획을 했어요. PM 업무를 하면서 제품을 잘 론칭하고 3년 차 되면서 인정을 받고 있었을 때였거든요. 그때는 제 아이도 초등학교 입학 전이기도 했었고요. 그렇지만 당시 제가 항상 생각했던 버킷리스트(bucket list) 중에서 해외에서 근무하기 그리고 아이를 외국 환경에서 공부를 시켜보기 등이 있었는데, 그에 맞는 곳에 지원을 하고 직군을 바꿔서 일본으로 가겠다고 한 거였어요.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계기가 있나요?
- 항상 그런 말을 하고 다녔거든요. "나는 해외 근무를 원해. 나는 그게 관심이 있어."라고 얘기를 하면서 조직 내부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었어요. 여러 길을 찾고 있다가 기회가 저한테 딱 걸린 거죠. 하하하. 그때 다들 만류 분위기였어요. 아이도 어렸었고, 남편도 갈 마음이 없었고요. 남편이 말하기를 자신은 독립군의 후손이라는 거예요. 남편의 뜬금없는 고백에 그 사실을 그때 알았네요. 하하하. 아무튼 남편을 설득해 차근차근 준비를 해서 아이만 데리고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어요. 책임감이 무척 크게 느껴졌지요.
일본에서의 경력이 궁금합니다.
- 네, 캐논 메디칼시스템즈에서 근무했어요. 입사 당시에는 클리닉 교육 매니저로 시작했는데, 얼마 후 글로벌 클리닉 마케팅 매니저로 근무했습니다. 그곳에서 8년 9개월을 다녔네요.
막상 바라왔던 해외 근무를 시작하니 어땠나요?
- 제가 생각했던 우선순위, '나는 여기서 이게 중요해'라고 기준을 잡고 있었던 것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보였어요. 다른 환경에다 저를 던지니 만나는 사람부터 달라지더군요. 그때 법인이랑 대리점이 한 60개 됐을 때였는데 만나는 사람이 정말 다양했어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 맞춰서 할 수 있는 마케팅 캠페인을 펼치고, 우리 제품을 홍보하는 스토리를 만들어 가면서 제 스스로 굉장히 많이 흡수가 되고 축적이 되는 걸 느꼈어요.
그런 경험을 한 번 하고 나니까 '내가 쥐고 있는 게 꼭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열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해. 그러니까 다음 뭔가를 결정할 때도 '이게 꼭 돼야 돼'라는 고정된 생각에서 많이 벗어나게 되고, '이게 좀 아니면 다른 게 올 수 있다'라는 식의 마음가짐이 생겼어요. 저를 좀 개방시켜 놓으니까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죠.
'내가 쥐고 있는 게 꼭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라고 생각했던 구체적인 예가 있을까요?
- 예를 들어서 제가 PM 업무를 하면서 이 제품은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는 구조, 체계가 있었어요.
이런 제품은 마케팅할 때 이렇게 만들어서 이렇게 론칭을 하고 몇 개월 후에는 이런 정도로 올라가야 되고 그다음에는 버전업이 이렇게 돼야 되고 등. 이런 식으로 제 나름대로 약간 굳혀진 것들이죠.
약간 매뉴얼처럼요?
- 네, 그렇죠.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경험을 하게 됐어요. 그 조직문화에 맞지 않는 것을 그대로 하려니까 일이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변화를 주어 일을 하니 조금 더 재미있는 결과가 나오더군요. 한 5개월 정도 경험을 하면서 내가 생각하거나 책에 나오는 대로 안 해도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구나라는 거를 좀 터득했지요.
예를 들어 그전에는 제품의 새 기능을 론칭할 때 증거나 입증, 전문가의 테스트모니얼(testimonial, 증명·추천) 등을 미리 준비해서 론칭을 했어요. 근데 일본 회사에 딱 갔는데 제가 가고 3개월 후에 새 기능 론칭이 있는 거예요. 아무 준비는 안되어 있지만 제품이 있으니 일단 론칭을 한대요. 그런데 이게 프리미엄 제품이래요. 해당 제품의 기존 고객이 있으니 그 고객들에게 접근할 거란 계획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게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일단 그 안에서 준비를 했어요.
출시하고 나니 아니나 다를까 엄청 컴플레인이 들어왔어요. 다행히 기본적인 하드웨어의 성장이 있었던 제품이어서 그 성장을 바탕으로 소프트웨어를 재빠르게 개선해 나갔어요. 기존에 해보지 않았던 방식이었지요. 한국에 있는 글로벌 기업에서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하려면 이사회 멤버 승인을 다 거쳐야 해요. 한 3개월 정도 걸리죠. 한국의 보고라인부터 미국의 각 부서마다 승인을 다 받다 보면 그런 과정으로는 일을 할 수가 없는데, 캐논 메디칼시스템즈에서는 한 거죠.
일본에서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보이네요.
- 그렇죠. 저도 신기했어요. 한 3개월 안에 론칭하고 소프트웨어는 계속 빌드업(build-up)하고 이런 과정을 하면서 안정화 찾는 데 6개월 이상 걸렸거든요. 그런데 그 6개월을 고객들이 기다려주더라고요. 왜냐면 처음에 선보였을 때, '이 기본적인 거는 패스, 이거 이거 이거는 바꿔야 될 것 같아'라고 하는 고객의 피드백을 반영해 빨리빨리 바꿔준 거예요. 그게 통하더라고요. 아마 의료기기라서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만약에 IT에서 소프트웨어를 론칭했는데 그런 식이었다면, 완전히 고객에게 외면당했을 거예요. 의료기기는 기본 바탕에 하드웨어가 있고 그 안에 소프트웨어가 붙는 개념이어서 가능했던 사례였던 것 같지만, 그래도 신선했어요. 그 제품은 지금도 판매하고 있고 거기에서 베스트셀러를 판매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걸 토대로 리서치도 했고 여러 가지 것들을 붙일 수가 있었죠.
어떻게 보면 운에 기인한 것도 있겠지만, 고객한테 빨리 선보이고 사실은 굉장히 매를 맞았다는 점, 그리고 빠르게 무엇을 해야 됐는지를 파악했다는 점. 그것이 제품 개선에 원동력이 되어준 거라 생각해요.
기업의 특성일 수도 있겠고, 일하는 사람들 혹은 고객의 특성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일본 기업으로서는 색다른 방식이었다고 느껴지네요. 요즘 스타트업의 방식과도 많이 닮아 있기도 하고요.
이후 그 경험을 업무에 적용해 성과가 났던 모범사례가 있나요?
- 현재 기업에 판권을 가지고 국내에서 판매하려던 미국 제품이 하나 있었는데, 제가 입사를 하고 보니 국내에서는 해당 제품의 시장이 다른 경쟁자에 의해 많이 점유된 상태였어요. 그래서 해외 판로를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일단 시장에 제품을 뿌린 상태더라고요.
입사 후 그다음 주에 저는 바로 출장을 갔어요. 그리고 간접 판매를 하고 있는 저희 대리점들을 만나서 그들이 접촉할 수 있는 주요 의사들한테 테스트모니얼을 하자고 제안했어요. 모든 대리점이 제 제안에 응해주진 않았지만, 여러 대리점이 많이 따라줬어요. 그 따라준 대리점들과 3개월 정도 계속해서 작업을 했어요. 들어오는 피드백을 개발에 넘기고 반영하고, 이 과정을 이제 매일 했죠.
물론 캐논에서 했던 방식과는 다른 점도 있어요. 여기는 개발 주체가 다른 회사이다 보니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엄청 필요한 상황이었고, 결과적으로는 많은 개선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지요. 하지만 미국 개발 회사의 CTO를 초대해서 직접 설명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어요. 포럼을 처음으로 개최하면서 의사들이 미국에서 쓰는 것과 자신이 쓰는 것의 차이, 그리고 ‘이렇게 했을 때에 이런 득과 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판매가 이루어질 수 있었어요. 모범사례라고까지 하기 어렵지만 단기간에 성과가 났던 사례입니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 해당 제품은 미국에서도 그에 딱 부합하는 시장이 있는 제품이었어요. 그 시장에 맞춰 팔 수 있는 제품을 한국에 잘못 포지셔닝한 사례이지 않나 싶어요. 현재는 조직과 제품에 변화가 있는 상태예요. 제가 지난 7월 합류하면서 진행했던 테스트모니얼을 가지고 시험한 것들을 활용해 해외 영업에 주력하고 있어요. 해외 주력 시장에 접목을 시키니 3개월 만에 매출이 많이 성장했습니다.
지금껏 다 인큐베이팅(incubating)을 한 거라고 저는 판단을 하고 있고, 그때 해보니까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배움이 있었어요. 완전히 신규 국가들은 이런 마케팅으로 접근을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 곳들은 이렇게 접근하자, 란 계획이 섰고요. 그게 이제 한국이 될 거예요. 이렇게 시장을 세분하고 접근하는 전략이 생기기까지 교훈이 있었더란 거라 생각해요.
그렇군요. 전화위복이 되었네요. 조직과 전략 변화를 통해 제품의 재포지셔닝까지 이뤄낸 귀한 경험이 신규 사업을 기획할 때, 또는 기획하는 곳에 가이드를 해줄 수 있는 좋은 지적 자본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글로벌 경험이라 조직과 개인적 경력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조직, 전략, 제품의 포지셔닝까지. 하나의 변화만도 큰데,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겪으면서 올바른 방향을 찾아나가고 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사물이나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순전히 나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관점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디렉터님은 어려운 흐름도 나에게 좋은 기회로 만들 수 있는 힘, 관점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또 하나의 교훈을 얻으면 얻은데 그치지 않고 그 교훈을 발판 삼아 다음을 개선시키려는 의지와 행동력도 엿보입니다. 어렵거나 불리한 상황에 놓이면 쉽게 놓아버리고 원망하거나 핑계를 대기 쉬운데, 쉽게 깨지지 않는 정신력이 그러한 관점력과 행동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곤조곤 말하는 모습에서 우아함이 보이고 중심을 잡는 모습에서 단단함이 보입니다.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아직 연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여러 개를 부딪히고 부딪히고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단단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저는 내면이 단단하고 고요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부딪히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더 나아지고 싶어 하면서 이렇게 그 방향으로 계속 가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앞으로의 마케팅 전략이 궁금합니다.
- 기존 리서치는 한국을 기점으로 해서 진행되었어요. 한국 레퍼런스를 활용해 아시아 지역에 판매하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면, 피보팅(pivoting) 후에는 미국 기점의 리서치 내용을 가지고 아시아 지역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공략할 예정입니다. 우선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에서 주요 의사들과 협업해 레퍼런스를 구축하고 있어요. 이를 바탕으로 웨비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해 시장을 확장해 나갈 예정이에요.
현재 주요 목표 시장은?
- 아시아하고 아프리카로 확장 중인데, 현재는 주요 시장인 아시아 15개국에서 판매하고 있어요. 저희가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일본 시장도 곧 진입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 내년하고 한 3개년 계획 안에는 일본에서 성장하는 게 제일 큰 저희 목표입니다.
국가 시장별로 마케팅 전략을 세울 때 역점을 두는 요소라든가 고려하는 요소가 있다면?
- 미국에서 탄생한 제품을 가지고 여러 나라에서 판매를 하다 보니까 미국 레퍼런스가 좋은 기준이 되는 경우도 있고, 아닌 나라들도 있지요. 지난번에 론칭한 일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웨비나를 했는데 미국의 레퍼런스가 좋은 반응을 얻어 미국 사례를 많이 인용해 쓰고 있고요. 그 외에 CE마크와 같이 확실한 증명을 선호하는 아시아 국가들에는 이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어요.
레퍼런스를 선호하는 지역에는 그에 맞게 스토리를 준비해서 현지 상황에 맞추고, 증명을 강하게 선호하는 지역에는 그에 맞게 파고드는 스토리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어떤 스토리 전략을 가지고 접근 중인지?
- 일본은 다른 새로운 비즈니스 전략을 세우고 있어요. 일본 현지 파트너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일본 고객은 이미 가지고 있는 자신들의 하드웨어에 저희의 소프트웨어를 적용해 분석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일체형에서 소프트웨어를 분리해서 이용할 수 있는 SaaS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어요.
제품에 변화를 주는 것이니 쉽게 결정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데?
- 6개월 정도 내부 설득 과정을 거친 것 같아요. 지금은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는 긍정적인 상황입니다. 처음에는 제품의 본질을 고려했을 때 변화를 주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납득할 만한 근거가 내부에 필요했어요. 당연한 것이죠. 하지만 고객의 요청과 목소리를 듣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어요. 처음에는 제품 판매를 위해 1년 이상 커뮤니케이션해 오던 기업인데 비즈니스 미팅을 거듭하다 보니 그들의 니즈가 저희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고객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저희 CEO와 직접 일본을 방문했어요. 경험이 많은 대표님은 미팅을 통해 바로 여러 면면을 파악하시고는 의사결정을 하셨죠. 플랫폼이나 제반 시스템 구축, 모듈화 하는 방법 등 다각도로 고려했을 때 SaaS 방식으로 가는 것이 맞겠다는 판단을 내부적으로 내리고 방향에 맞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6개월 정도 마켓 테스트(market test)를 했고요. 저희 엔지니어들과 그쪽 엔지니어들이 샘플 데이터를 갖고 계속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좋은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 중입니다.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 유연한 사고리더십을 발휘해 제품의 기술 역량을 한층 더 발전시킨 기업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조직 내 설득 과정은 필연이라 할 수 있는데, 설득 노하우가 있다면?
- 시기를 잘 살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일본 사업 모델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는 이미 다 정리된 상태였기 때문에 더는 말을 꺼낼 시도를 못하고 있었어요. 조직 변화가 있었고, 제가 전략 기획을 맡으면서 전체 비즈니스 계획을 하게 되었어요. 그 계기를 바탕으로 대표님과 미팅을 하면서 기회를 엿보았죠. 그때도 아젠다를 잘 정리해서 보고를 했는데, 세 번 정도 반려당했어요. 하하하. 그러다 사업 전략에 변화가 생겨서 이때다 싶어 다시 매출 성장 전략으로 큰 그림을 제시하면서 일본 시장 공략과 접근법에 대해 피력했어요. 그러면서 대표님께 일본 방문을 제안드렸고, 대표님께서 직접 일본 고객을 만나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셨던 것이죠.
우와, 세 번이나 반려되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엿보아 관철시킨 결단과 추진력이 대단하시네요!
그래서 설득할 수 있는 환경적인 운도 따라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함께 설득해 주신 협업자가 계셨어요. 소통도 잘 되고 의견도 잘 맞는 분이세요. 해외 영업대표이신데 함께해 주셔서 계속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생각해요. 동료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격려하고, 공정한 경쟁도 하는 사이라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동료입니다.
마음 잘 맞는 동료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죠.
보통 조직 내의 협업을 잘 이끌어내는 나만의 방법 같은 게 있나요?
- 일을 하면서 스스로 찾았던 것 같아요. 일상이든 협업할 때든 서로 윈윈(win-win)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잖아요. 내가 어떤 사안의 결과를 가져가면 동료는 뭔가를 양보해야 되는 상황 같이. 그런 경우에 저는 먼저 제 주장을 하지 않는 편이에요. 동료가 자기 얘기를 다 꺼내게끔 일단 만들어요. 힘든 부분부터 안 되는 이유까지 쭉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랬을 때 우리가 공동의 목표가 있어서 논의하고 있다는 것과 논의할 사안에 대해 막판에 얘기를 꺼냅니다.
제가 원하는 게 A면 이제 A+까지를 공동의 목표로 참여시켜요. 그렇게 한 다음에 제가 원하는 것을 가져갈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요. 물론 동료도 원하는 것을 가져갈 수 있도록 노력하죠. 제가 예전 기업에서 제품 기획을 하면서 연구소와 함께 제품을 만들다 보니까 연구소 분들은 더 성취를 했을 때도 얻는 게 별로 없어 보일 때가 많았어요. 작업량이 많아지기만 하지. 연구소 동료들이 더 성취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할 뭔가가 필요해 보였죠.
그래서 상사에게 연구소의 노력이 두드러지게 보이게 해 준다든지, 판매가 잘 되는 제품을 만들었을 때 어떤 형태로든 팀이나 구성원이 뭔가를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들려고 최대한 노력을 했었어요.
제품기획이든 마케팅이든 하려면 조직 전 부서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 텐데요. 지금까지 조직에 계시면서 커뮤니케이션하기가 가장 힘들었던 부서가 있었다면?
- 개발 부서. 기획에서 원하는 제품이 불가능한 제품이라고 한다거나, 요청한 사항과 다른 제품을 만들어 내놓거나 할 때가 있어요. 해당 부서의 입장이 있으니 이해는 됩니다. 그래서 개발부서의 협력을 최대한 끌어내어 기획과 일치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능력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하하하. 물론 보람도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결과를 만들어 냈을 때 무척 기쁘거든요.
하하하.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많은 마케터들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요. 개발부서의 입장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 제품을 론칭하고 마케팅을 하고 이런 일련의 과정이나 전체적인 흐름에는 언제나 기대 지점이 있잖아요. 언제 론칭을 해야 되고, 거기에 맞춰서 일정을 정하고, 그 일정에 맞춰 들어가야 할 요소들이 있죠. 개발 기능이라든지, 개발 일정이라든지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매 순간 그것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 아닌가 해요.
예를 들어, 12월에 어떤 제품을 론칭하기로 했다 치면, 그건 모두에게 다 동일한 전제가 되죠. 론칭 계획에 의해 모두 12월에 론칭이 된다는 걸 알고, 그에 맞춰 개발도 하고 준비도 하죠. 그런데 개발이라는 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보니 차질이 생길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그때그때마다 론칭에 맞춰 어떤 것은 빼야 하고 어떤 것은 유지하거나 변경해야 한다는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제품 기획자 입장에서는 기능도 일정도 포기할 수가 없을 때가 많아요.
예전에 한 번은 제가 이런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해서 개발자로부터 항의를 받은 적도 있어요. "이거 조그만 더, 조금만 더 하면 안 돼?" 이렇게 접근을 했다가 "일정은 정해져 있는데 이거 하나 때문에 전체 일정을 다 미룰 거냐?"면서 혼이 났었죠. 하하하.
그럴 경우 어떤 식으로 해결하나요?
- 기본적으로 제가 그렇게 하는 방향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계속 알려드리려 노력해요. 개발하는 분들도 결국에는 본인이 만든 제품이 잘 팔리기를 원하는 건 동일하거든요. 만약 이 기능을 뺐을 때 이 제품이 팔리지 못하는 게 확실하단 것을 제가 데이터나 업무 감각으로 알겠다면, 그 내용을 바탕으로 최대한 설득을 해보자고 마음먹는 편이에요.
그러면 설득이 되나요?
-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아요. 하하하. 안 되는 경우가 더 많고 그럴 때는 하나를 놔야 되는 것 같아요. 론칭 시점을 미룬다든지 아니면 완전하지 않은 제품을 일단 먼저 내놓고 거기에서 완벽을 추구해 가는 과정을 뒤에 밟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죠.
어쨌든 나의 문제가 아니라 협업자들의 어떤 문제로 내가 정한 목표가 달성되지 못했다는 스트레스를 좀 받지 않을까 싶은데, 업무 KPI에도 영향을 받을 것 같고요. 어떤가요?
- 스스로 계속 극복의 연속인 것 같아요. 제대로 된 제품을 완성해 론칭하고 마케팅을 하는 것이 목적에 더 가깝다면 제 KPI는 그다음이라고 생각하며 일하고 있어요. 좋은 제품을 론칭하는 것이 우선이니까요. 론칭 시점을 맞추는 것이 진짜 목숨보다 중요했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게 제 경력상 첫 번째 프로젝트였죠. 일정이 밀리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던 때였죠. 이제는 항상 예상 가능한 버퍼를 두는 것이 능력인 것 같아요. 어떤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까, 대비를 해야 되는 것들을 준비하고, 그래서 개발이나 영업 부서와 소통할 때도 일정을 조금 다르게 가져가면서 하려고 하고 있어요.
마케터가 그런 솔루션이 있는 조직에서 일을 잘하기 위해서 갖추면 좋을 역량이 있다면?
- 대부분 마케터들은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능력은 다 개발이 되는 거 같아요. 개발 부서나 협업을 많이 하는 마케터들은 일단 듣는 귀가 좀 있으면 결과적으로 더 많은 결과를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케터 중에 말을 정말 잘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말도 잘하고 듣는 귀가 같이 있으면 더 좋은 거죠. 간혹 말을 하는데 조금 더 집중돼 있는 분들은 '어차피 들어봤자 상대 말이 틀리니까 내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 않아'라는 것이 말을 하지 않아도 드러나 다 느낄 수 있거든요.
우리의 일이란 것이 한 번 해서 내가 이기고 마는 게임이 아니거든요. 길고 크게 봐야 해요. 그래서 저는 '재능 귀'라고 말할 수도 있는 '듣기'가 조직에서 통용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사람이 결국은 큰 뭔가에 시동을 걸어서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봐요.
자신의 강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 앞서 언급을 잠깐 해주셔서 속으로 놀랐었는데요. 조곤조곤 얘기하는 데 강단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생존 방식이기도 하죠. 20대 무렵에 제 외모가 좀 강한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차분하게 말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일단 어려워하고 제가 주장하는 것을 너무 세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죠. 그래서 말하는 방식을 나름 훈련했어요. 내 주장의 날카로운 부분이 상쇄되면서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을 얻고 싶었는데, 그게 이렇게 조곤조곤 차분히 말하는 것이었죠. 이렇게 전 제가 잘할 수 있는 것과 부족한 두 면을 다 드러낼 수 있는 게 강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조직에서 부족한 점을 드러내도 괜찮을까요?
-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에 비추어 보면, 팀이든 조직이든 리더가 언제나 옳다는 관점을 가지면 발전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리더를 하는 이유는 각각에 있는 구성 요소를 끌어내서 잘 구성하고, 좋은 점을 끌어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함이라고 봐요. 따라서 혼자 너무 특출 난 사람이 리더가 되기보다는 이런 것들을 잘 끌어낼 수 있는 것을 함양하는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성장이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틀린 부분을 고쳐나가는 것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 중에 하나잖아요.
예를 들어, 의사결정을 잘못한 것에 대해서도 드러낼 수 있어야 하죠. 그것이 주변으로부터 공격받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러내서 해결할 수 있는 팀워크를 발휘하는 장을 만들 수 있다면, 저는 제가 틀린 부분을 드러내고 함께 풀어나가려고 하는 편이에요.
제품기획부터 마케팅, 그리고 전략기획까지 직무에 변화 또는 확장이 있었는데 가장 잘 맞고 잘하는 일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 직무를 떠나서 제일 자신 있고 잘하는 분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고객을 직접 만나서 우리가 판매하는 솔루션을 설득시키는 작업 같아요. 협업하는 사람들, 최종 고객 등 제가 만나야 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해서 잘 전달하는 일이 잘 맞고 자신 있어요.
지금껏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 사례가 있다면?
- 캐논 메디컬에서 근무할 때 3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비즈니스 유닛(Unit)을 대표해서 발표할 때였어요. 저를 바라보던 선배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네가 하는 말이 옳아'라고 하는 신뢰의 눈빛이었거든요. 신제품이라든가 다른 특별한 사항이 없는 상황에서 다음 해 사업계획과 제품을 설명할 때 제가 생각하는 논리로 전달을 했는데 청중에게 신뢰를 받았던 사례죠.
저희가 기존 제품에서 전통적으로 진행하던 마케팅 캠페인이 아닌 다른 방식의 마케팅을 제안했어요. 저희는 의사분들이 사용하는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었는데 스포츠 마케팅을 펼치자고 했죠. 같은 제품으로 애플리케이션을 확장하는 논리였어요. 의사가 아닌 스포츠 선수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아해 할 수 있는데, 스포츠 팀에도 근골격계 영역의 팀닥터가 있어요.
그 당시 저희가 FC 바르셀로나와 협업을 했는데요, 팀닥터가 제품을 사용하는 시연 내용과 후기 같은 것을 교육 콘텐츠로 접목해 제품 안에 포함시켰더랬어요. 그래서 그 애플리케이션을 구매하면 그분의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는 비디오가 같이 전달되었죠. 기존 고객들은 저희 제품을 잘 쓸 줄 알았어요. 근데 근골격계 의사들은 저희 제품을 쓸 줄 잘 모르시는 거죠.
그래서 이 제품을 이렇게 했을 때 진단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두고, 어떤 식으로 쓰는지 한 단계 한 단계 차례로 비디오로 만든 거예요. 일종의 교육 콘텐츠가 된 거죠. 그래서 제품을 사면 바로 트레이닝받을 수 있도록 안에 넣었어요. 신제품도 아니고 새로운 기능도 아니었지만 이런 방식으로 고객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것을 설득하고 잘 보여주었던 사례였다고 생각해요.
이후 축구 말고도 배구, 농구 등으로 확장되었고, 다른 지역 법인으로도 확대되었어요. 미국 MBA 등, 그 당시 한국에서는 동물병원으로 확장되었지요. 제가 직접 한국으로 들어와 마사회에 가서 발표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정관념을 깨고 사용자의 영역을 넓힌 사례네요. 마케터들은 의외성을 많이 가져야 된다라고 얘기를 하는데, 사실 기존의 프레임을 깨는 게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하던 것에서 더 좀 할 수 있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니즈가 사실 제일 많았죠. 하던 것을 잘하니까 계속 똑같이 하면 되니까요.
그런 프레임을 깨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발표를 했으니 청중이 신뢰의 눈빛을 보냈거네요. 일본에서 대단한 경력을 쌓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에서 7년 정도 계셨다고 했는데, 해외 노동자로서의 삶은 어땠나요?
- 계약을 기반으로 근로를 했던 터라 팍팍한 부분도 있고 안정감도 없었지만 워라밸을 찾을 수 있었고, 한국에도 들어오고, 출장도 많이 다녔고, 아이와 충분히 생활할 수 있었어요. 장단점이 있었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까 경력적으로는 계속 같은 포지션으로 정년을 맞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내부에서 길을 모색해 봤어요. R&R을 좀 더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과 MBA를 하고 있다고 피력하기도 했었죠.
경력상 어떤 목표가 있었던 건가요?
- 결국에는 조직에서 의사결정권자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했었어요. 제가 하고 있는 업무에서 일과 조직을 관리하는 것은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만큼 충분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제가 계속 확장을 하고 싶다고 의사를 전달했었어요. 그래서 그곳에 계속 있었다면 뭔가 기회가 있었을 것 같긴 해요. 하지만 모든 것이 타이밍과 선택이기 때문에 당시에 제가 귀국해서 이쪽에서 일하는 것을 선택한 것에는 뭔가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경력을 되돌아보았을 때 교훈이 컸던 사례가 있다면?
- 의사결정을 할 때 잃게 되는 부분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사람의 감정 같은 거요. 이 잃게 되는 부분은 다 저의 의사결정에 따르는 부작용 같은 것이라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마저도 제가 관리를 하려고 했던 적이 있어요. 마케팅할 때도 모두에게 다 사랑받는 마케팅 캠페인을 하고 싶어 하잖아요. 제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거랑 똑같은 이치죠. 하지만 타깃을 명확히 한 다음에는 반대급부적으로 웃지 못하는 그룹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상대를 배려해서 어떤 감정적 케어(care)까지 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역효과를 냈다?
- 네, 맞아요. 의사 결정에서 내가 가져가야 할 목표나아니면 제품에서 가져가야 되는 마케팅 성과가 중심이 되면, 어떤 부분은 버려야 되고, 그와 같은 결정을 같이 하는 것이란 걸 잊어버린 경우였죠.
사람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진짜 사람마다 너무 다르니까 이게 맞다 틀리다고 판단하기는 좀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어떤 의사결정을 내릴 때 모든 조건을 다 충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겸허히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크게 공감합니다. 그것 역시 의사결정에 포함되는 것이란 걸 깨달을 필요가 있다는 것도요.
근데 이게 참 겸허히 받아들이기가 안 되죠. 받아들일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았나요?
- 몸을 쓰면서 그 생각을 잠깐 멈추는 것을 시도하려고 해요. 달리기를 한다든지 수영 연습을 한다든지 좀 벗어나는 환경에 두어 잠깐 동안 생각을 멈추는 거죠. 안 그러면 집요하게 계속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은 남 탓으로 가는 확률이 높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잠깐 멈춤을 할 수 있는 장치를 많이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 일하세요?
- 저는 일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 온도 차이가 꽤 커요. 일을 할 때의 제 모습을 스스로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랫동안 계속 나이 들어서도 일을 하고 싶은 게 제 목표예요.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돈을 모아놓는 게 오히려 낫지 않냐거나 빨리 그만두는 게 좋지 않나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일할 때 제 자신을 좋아하니까 그 모습으로서의 저를 좀 더 유지하고 싶어요.
일할 때 어떤 모습인가요?
- 일할 때 저는 ‘이거를 할까 말까?‘하는 고민은 별로 안 해요. 개인적인 일을 할 때는 후회하거나 조금 더 아마추어적인 모습이 있는데, 일을 할 때는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이쪽으로 가는 게 맞아'라는 결정을 조금 더 빨리 하는 것 같아요.
일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 저는 약간 게임처럼 생각해요. 퀘스트(quest)를 깨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오늘의 퀘스트-단기-장기 퀘스트, 이런 식으로 다음 퀘스트로 넘어가면서 계속 움직이고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일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뭔가요?
- 일단 주 수입원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겠죠. 맞벌이 가정에서 상황이 잘 돌아가게 되는 과정에서 제가 제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하지만, 그보다는 제 개인적인 성취에 조금 더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일을 대하는 마음, 일을 바라보는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제가 생동감 있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일인 것 같아요.
일할 때 가치관이나 중요하게 바라보는 요소가 있나요?
- 팀워크 가능성이에요. 혼자 일을 잘하는 사람이 예전에는 능력자처럼 보여 되게 멋있어 보였거든요. 근데 조직을 잘 이끌어가는 사람이 대부분 팀에서 나오는 성과를 더 크게 만드는 사람이더군요. 팀워크를 잘 끌어내서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추구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제가 그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팀워크를 중심으로 시너지를 내고 저의 성장 목표와 저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저를 만나기 전보다 성장할 수 있는 순간을 맞기를 바라고 있어요.
일 외적으로는 어떤 생각을 많이 하나요?
- 북클럽에서 영어 원서를 읽는 팀 리드(lead)를 하고 있어요. 생산성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고 있지요. 이걸 토대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키워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요. 제 자신에 대한 생각 추구인데, 제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나 저와 비슷한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싶고, 가이드를 제시하고 싶기도 합니다. 어떤 형태인지는 정확하게 규정을 하지 않았지만 그런 방향으로 확장을 하고 싶어요.
요새 눈여겨보는 시장 혹은 마케팅 트렌드가 있다면?
- 우리 회사 제품이 속한 산업군이 디지털 마케팅 측면에서 소비재보다는 조금 약하거든요. 요즘 디지털 마케팅이 굉장히 빠르게 들어오는 것이 느껴져서 조금 더 빨리 접목을 시키는 곳이 시장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좀 많이 하고 있어요. 소비재 제품들이 하는 디지털 마케팅 방법을 지켜보면서 우리 제품에 어떻게 접목시키면 폭발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인사이트는 어디서 어떻게 얻나요?
- 일단은 책하고 사람하고 대화하는 것. 다른 분야의 다양한 주제에 대한 관점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전에는 의도적으로 책을 읽었는데 지금은 자연스레 독서가 취미가 된 것 같아요. 마케터 후배들한테도 관심을 안 가져 본 여러 것들에 접근해 보라는 이야기를 종종 합니다.
인상 깊었던 책이 있다면?
- 파울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처럼>이란 책이에요. 한때 함께 일했던 동료가 준 책인데, 함께 하는 동안 기억과 교훈을 선사해 준 책이죠. 제가 남긴 발자국들을 잘 돌아보고 배우고 가야지, 하는 여운을 깊게 주었어요. 그 동료와 서로 나눈 말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해주는 책이라 올해 가장 인상 깊은 책이에요. 기억나는 구절들이 있는데 소개하고 싶어요.
소년은 의아한 표정으로 연필을 주시했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었다.
“하지만 늘 보던 거랑 다를 게 하나도 없는데요!”
“그건 어떻게 보느냐에 달린 문제란다. 연필에는 다섯 가지 특징이 있어. 그걸 네 것으로 할 수 있다면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게야.
첫 번째 특징은 말이다, 네가 장차 커서 큰일을 하게 될 수도 있겠지? 그때 연필을 이끄는 손과 같은 존재가 네게 있음을 알려주는 거란다. 명심하렴. 우리는 그 존재를 신이라고 부르지. 그분은 언제나 너를 당신 뜻대로 인도하신단다.
두 번째는 가끔은 쓰던 걸 멈추고 연필을 깎아야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이야. 당장은 좀 아파도 심을 더 예리하게 쓸 수 있지. 너도 그렇게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는 법을 배워야 해. 그래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게야.
세 번째는 실수를 지울 수 있도록 지우개가 달려 있다는 점이란다. 잘못된 걸 바로잡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오히려 우리가 옳은 길을 걷도록 이끌어주지.
네 번째는 연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외피를 감싼 나무가 아니라 그 안에 든 심이라는 거야. 그러니 늘 네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렴.
마지막 다섯 번째는 연필이 항상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이야. 마찬가지로 네가 살면서 행하는 모든 일 역시 흔적을 남긴다는 걸 명심하렴. 우리는 스스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늘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란다.”
- 파울로 코엘료, <흐르는 강물처럼> 중 '연필 같은 사람' 중에서
인터뷰 내내 이야기하신 내용들이 함축된 구절들 같습니다. 연필 같은 삶과 일을 추구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드네요.
개인적인 비전이 있다면?
- 저의 비전은 지금 하고 있는, 추진하고 있는 일들에서 성과뿐만 아니라서 교훈을 얻어서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에요. 어떤 면이든 제 일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나 미래로 갈 기회가 있다면?
- 미래로 갈 것 같아요.
가까운 미래, 한 3년 후에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3년 후에 저 한 테라... 네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해도 괜찮다고 지지해 줄 것 같아요. "그게 뭐가 됐든 어디에 있든 어떤 환경에서든 다른 업무를 추진하고 있든 네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하라"고 말이죠.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느껴집니다. 그런 믿음이 생기기까지 깎고 깎이는 시간을 거치며 부단히 연마를 해오셨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자신을 믿고 지지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건 매일의 퀘스트를 깰 수 있는 특별한 능력치가 있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제나 생각하는 방향이 곧고, 또 그 방향으로 굳세게 나아가시길 응원하겠습니다! 행운 같은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가 그럴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는 말은 '너는 항상 옳다'는 말의 본뜻이다. 그것은 확실한 '내 편 인증이다' 이것이 심리적 생명줄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산소공급이다.
- 정혜신, <당신이 옳다> 중에서
앞으로 김현진 디렉터가 그럴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은 예감? 이 듭니다. 확실한 '그녀의 편'이 될 것 같은 예감이지요. 이 예감이 산소공급까지야 안 되겠지만, 앞으로 나아가는데 힘이 되기라도 한다면 좋겠습니다. 연필 같은 사람은 보기 드문데, 그녀가 연필의 다섯 가지 특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조화로운 삶을 사는 것뿐만 아니라, 그녀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연필 같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요.
세상에 연필 같은 사람이 많으면 좋잖아요. 그러려면 기꺼이 나누고 함께 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하겠지요. 그런 사람이 김현진 디렉터가 아닐까 대놓고 부담 주는 추측을 해봅니다. 그녀가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는 왠지 연필 같은 삶과 나눔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겨서 말이지요. 한 마디로 정리하면, '당신이 옳다'입니다. 부족함에서 발전을 모색하고 실패에서 배우고 부정에서 긍정을 찾는 노력으로 자신을 훈련시키고 있는 그녀가 적어도 타인과 호혜적 관계를 이끌어 갈 사람이 아닐까 해서 말입니다.
"당신이 옳다."
온 체중을 실은 그 짧은 문장만큼 누군가를 강력하게 변화시키는 말은 세상에 또 없다.
- 정혜신, <당신이 옳다> 중에서
그래서 온 체중을 실어 김현진 디렉터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연필 같은 사람, 당신이 옳습니다."
이상 친절한 마녀였습니다!
[더 토크뷰]는 홍보마케터, 그리고 협업하는 대내외 여러 직군의 사람들을 만나 슬기롭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친절한 마녀의 B2B 마케팅] 매거진 속 코너입니다. 사람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각각의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통찰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또, 다른 기업에서 일하는 홍보마케터, 개발자, 기획자, 그리고 CEO 등의 이야기를 통해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도 있겠구나’ 이해하며 소통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이 글은 어때요?
[더 토크뷰 시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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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편] 잇프피 마케터의 불편한 마케팅
열두 번째. [더 토크뷰_CEO 편] 시를 사랑한 청년 CEO-파트 1
[더 토크뷰_CEO 편] 시를 사랑한 청년 CEO-파트 2
열한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편] 서울 강남에 외국계 기업 다니는 마케터 전 과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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