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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메이 Jan 13. 2019

You are so lucky

와이키키에서 매일 서핑을 하겠다는 다짐을 실천하고 있었다. 내가 보드를 맡겨놓는 모쿠 샵에서 와이키키 비치까지는 20미터 남짓. 비치 바로 앞에는 횡단보도가 있어 빨간불에 종종 긴 보드를 들고 멈춰 신호가 바뀌길 기다려야만 했다. 선셋 서핑을 하기 위해 나선 내게, 백발의 노인이 말을 걸었다.


"Nice board!"


내 보드에 대한 칭찬은 바다에서 만난 서퍼들에게 이미 하루에 한 번꼴로 들었던 터였다. 그 때문에 나는 당연히 보드에 대한 칭찬일 거라고, 내 보드의 노즈에 적힌 마카하라는 브랜드와 리처드라는 유명한 쉐이퍼에 대한 칭찬일 거라고 생각했다.


You are so lucky!


'그래, 이 보드가 참 좋은 보드지! 나는 행운이지'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노인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숨을 쉬며 더듬거리는 말투로 자기도 보드를 탔었다고 했다. 지금은 더 탈 수 없지만... 그는 20년 전 가슴을 다쳐 더 이상 서핑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오늘도 서핑하는 너는 행운이라고
앞으로도 서핑할 수 있다는 건 행복이라고
얼른 바다로 뛰어가 파도를 잡으라고


신호가 바뀌고 바다 전체로 붉은 노을이 물드는 바다를 향해 뛰어갔다. 내 마음 한구석에서 석양만큼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그래, 오늘도 나는 바다를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언젠가 나도 바다에서 보낸 시간을 기억하겠지. 바닷물에 빠져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 채 보드를 부여잡았던 날들을, 코와 입으로 짭짜름한 바닷물을 수도 없이 마시고 뱉었던 날들을.


내가 파도를 탈 수 없을 때, 아마도 나 역시 바다로 향하는 누군가를 만나 파도를 탈 수 있는 너는 행운을 가진 서퍼라고 이야기해 줄 수 있기를!


아침에 일어나서 바다를 보고
파도가 괜찮을 것 같으면
보드를 들고 나가는 거야

무라카미 하루키 – 기사단장 죽이기 中 -          





<하와이 로망일기, 와이키키 다이어리>                    

평범한 대한민국 30대가 사표를 던지고 무작정 떠났던 하와이 한량 생활기입니다.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하와이를 만나고 돌아온 85일간의 와이키키 다이어리가                    

궁금하시다면 링크를 눌러주세요! Aloha.                                    

1.Aloha from the Hawaii https://brunch.co.kr/@alohamay/1                

2.당신이 꿈꾸는 파라다이스의 주소, ALOHA STATE https://brunch.co.kr/@alohamay/4   

3.불시착, 그 순간의 기록 https://brunch.co.kr/@alohamay/5           

4.와이키키 가는 길(TO WAIKIKI) https://brunch.co.kr/@alohamay/6                

5.무지개의 나라에서 보내는 편지 https://brunch.co.kr/@alohamay/16                

6.홈리스, 그들에게도 천국 https://brunch.co.kr/@alohamay/8           

7.하와이의 스페셜게스트 https://brunch.co.kr/@alohamay/14           

8.여행자의 여행 https://brunch.co.kr/@alohamay/18           

9.바다가 놀이터 https://brunch.co.kr/@alohamay/15           

10.내 인생의 여름방학 https://brunch.co.kr/@alohamay/20       

11.하와이에서 집 구하기 https://brunch.co.kr/@alohamay/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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