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달팽이씨. 지금도 너는 이렇게 내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답니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 제가 연재할 제 실제 이야기들입니다.
본 글은 오드아이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기 위해 쓰여진 글들 중 열두 번째 편에 해당합니다.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내 친구 민달팽이1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방어책과 직진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아, 맞다 내 눈!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나의 연두색에게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나를 알아주는 사람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글을 쓸래요, 난.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근데 그게 뭐라고?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안녕, 오드아이.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다른 눈으로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같음과 다름의 사이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나의 일부이자 전부 (brunch.co.kr)
종종 렌즈 착용을 통해 제 눈 색을 감추고 싶어했던 초등학생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오드아이인, 남들과 다른 눈 색을 지닌 제 자신이 싫어서, 그래서 눈 색을 억지로 감추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함께 지내는 이들에게서 원치 않는 질문을 받는다는 게 불편해서, 다름으로부터 오는 여러 이야기들을 듣기 싫어서 그리고 그 무엇보다 상처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린 선택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만 불과했고, 글을 쓰고 책을 가까이하기 시작하면서 제 자신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덕분에 고학년으로 올라갔을 땐 렌즈를 착용하는 일이 정말 드물어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중학생이 되었고, 어느 날 믿지 못할 일이 제게 일어났습니다.
바로 저희 반에 제 첫 번째 친구, 민달팽이가 전학을 왔습니다!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내 친구 민달팽이1 (brunch.co.kr)
사실, 지금까지도 정말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저는 민달팽이를 단 한 번에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민달팽이는 제 이름을 찾아 저희 반까지 왔고(심지어 같은 학년에 동명이인이 있어서 어느 반으로 갈지 고민하다가 내린 선택에 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저를 알아봐주었습니다.
민달팽이를 알아보지 못해서 (지금도 미안하고) 정말 미안했지만, 민달팽이가 다시 내 삶 속으로 와주었다는 사실이 큰 기적처럼 느껴졌습니다.
민달팽이와 함께하는 일상은 재밌게 정신없이 잘 흘러갔던 것 같습니다.
같은 반에서 추억을 나누고, 같은 도서관도 종종 가고 서로의 집을 놀러가고 우리의 친구를 새롭게 사귀면서 평범해서 더 소중한 학창시절을 만들어 갔습니다.
제 눈이 색이 다른 건 조금도 문제될 거 없는 일상에 젖어가면서 ‘내가 오드아이인가’라는 사실을 자주 잊었고, 일상생활 속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그리 이질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민달팽이가 준 안정감은, 유치원 때 민달팽이가 제게 준 용기에 이어서 두 번째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치원 때 민달팽이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제 곁을 떠났다면, 고등학교 때는 여러 사정으로 제가 민달팽이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거주지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했기 때문입니다. 헤어짐은 언제나 아쉬운 법이지만 민달팽이가 제게 주었던 소중한 추억과 멋진 영향력을 품고 저는 또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로 기꺼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민달팽이가 저를 다시 찾아왔습니다, 중요한 영감으로요!
고등학교 때 꽤 큰 백일장 대회에 산문 및 소설 분야로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때 저는 제 이야기를 하나의 소설로 만들었고 제 소설 속 중요한 핵심인물은 다른 누구도 아닌 민달팽이였습니다. 민달팽이가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처럼, 소설 속의 또 다른 나에게도 민달팽이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 소설은 민달팽이가 만들어 준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다른 눈으로 (brunch.co.kr)
민달팽이만이 내게 줄 수 있었던 것 -다름으로 차별하고 놀리는 이들에게 휘둘리지 말 것-을 잘 전달 받았기에 저는 제가 될 수 있었고, 무엇보다 하나의 글(소설)을 완성함으로써 일정 시기의 제 자신과 화해하고 스스로를 품을 수 있었습니다. 유치원 시절, 중학교 시절 그리고 그 친구를 직접 마주하지 않았던 고등학교 시절까지 민달팽이는 제게 특별한 무언가를 안겨준 소중한 친구입니다. 민달팽이가 제게 주었던 힘은 제 시기마다 제게 잘 도착하고 닿았습니다. 언젠간 제가 대한민국 오드아이 대표로서 어느 프로그램이든(이왕이면 ㅇㅋㅈ이면 좋겠네요) 나가게 된다면 꼭 그녀의 이름을 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 시기에 도착했을 때 어떤 말을 할지 미리 준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저 제 마음 속에서 몇 번이고 되뇌었던 그 말을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네가 있어서 나는 힘들었던 시기를 누구보다 외롭지 않게, 너 덕분에 따뜻하게 맞이하고 잘 보내며, 소중한 기억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어.
있잖아, 나는 종종 "왜 하필 난 오드아이여야만 했는지" 의문을 던지고 괴로워할 때가 있었는데 말이야.
만약 그 답들 중 하나가 ‘너를 만나 내가 성장할 기회를 얻어야 했기 때문이고, 또한 언젠간 내가 너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해야했기 때문’이라면 말야, 충분히 그 답이 될 것 같아.
저는 이제 꽤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민달팽이를 생각하는 시간이 현저히 적어졌고, 그 말은 곧 오드아이라는 사실이 더 이상 저에게 큰 상처거나 콤플렉스가 아님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 모습을 민달팽이는 서운하다고 생각할까요?
제 친구 민달팽이는 유치원 선생님을 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많이 안도했고 기뻤습니다.
저마다의 오드아이를 안고 사는 친구들에게 민달팽이는 누구보다도 최고의 친구가 되어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민달팽이가 있는 한, 그 친구들은 강한 마음으로 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민달팽이가 손 내밀어 주었던 그 시절이 있어서 저는 조금 덜 외롭고 더 밝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민달팽이 같은 존재가 단 한 번이라도 된 적이 있었을까? 혹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고 그리 될 수 있을까?
브런치스토리에 대한민국 오드아이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풀어놓게 된 이유들 중 하나가 바로 내가 누군가에게 민달팽이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서,라면 이제 믿을 수 있으신가요?
맞아요. 저는 제 이야기를 함과 동시에 조금이라도 민달팽이 같은 역할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눈 색이 다른 거? 그거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고.
누군가가 당신의 다름을 놀림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거? 그거 그들이 잘못한 거라고. 당신은 그저 당신일뿐이라고. 그렇게 작은 위안을 전할 수 있는 글을 앞으로도 꾸준히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봐 봐요. 민달팽이씨. 지금도 너는 이렇게 내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