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SH Jun 01. 2023

우리들 중에 대통령이 나올까?

#PSH독서브런치203

사진 = Pixabay


1.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에는 주인공 라비가 자신의 딸 에스터를 대하는 생각이 드러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냉소적인 천성의 그도 이제 에스터에게 세상을 보여줄 때에는 완전히 희망적인 편에 선다. 정치인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고, 과학자들은 지금 이 순간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열심히라고. ... 차를 타고 허름한 동네를 지날 때에는 국빈을 태우고 도시를 안내하는 겸연쩍은 공무원이 된 느낌이다. 낙서는 곧 말끔히 지울 예정이고, 후드를 눌러쓴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는 것은 행복해서이며, 나무는 이맘때에 아름답고. 어린 승객과 동행할 때 그는 다른 어른들이 몹시 부끄럽다." 그리고 이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이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은 에스터의 유년기 동안 일종의 안정성을 획득한다. 나중에 그녀는 그 안정성을 잃어버린 게 분명하다고 느낄 테지만, 사실 부모의 확고하고 현명한 편집 덕분이었을 뿐이다. 세상의 견고함과 지속성이란 것은 인생이 얼마나 제멋대로이고 변화와 파괴가 얼마나 상시적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만이 믿을 수 있는 환상이다." 저의 초, 중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라비처럼 학교 선생님들도 세상을 '편집'해 전달해 주시는 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너희들 중에 대통령이 나올 수 있고, UN 사무총장, 김연아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다"와 같은 '완전히 희망적인' 말들이 그에 해당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러한 편집이 선의에서 비롯되었으며, 긍정적인 효과를 가진다는 데 동의합니다.


2. 부모님,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할 때 세상을 '편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이들이 커서 실제로 마주칠 세상은 어린 시절 생각했던 것처럼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에서 현대 사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노동사회, 성과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며 계속 새로운 강제를 만들어낸다. ... 그것은 오히려 주인 스스로 노동하는 노예가 되는 노동사회를 낳는다. 이러한 강제사회에서는 모두가 저마다의 노동수용소를 달고 다닌다. 그리고 그 노동수용소의 특징은 한 사람이 동시에 포로이자 감독관이며 희생자이자 가해자라는 점에 있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이로써 지배 없는 착취가 가능해진다." 에스콰이어 17년 11월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직장인의 회사는 퇴사 이후 거의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다. 그다지 어려운 판단도 아니다. 버티고 버텨도 50대 중반인데, 그 이후의 수입을 퇴직금이나 연금에 마냥 기댈 수 있는 시대도 아니라는 뜻이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야말로 공포스럽다. 이제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살아 있어야 한다." 강세형 작가는 『나를, 의심한다』에서 어른의 삶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아무리 친한 친구에게라도 비밀과 거짓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에겐 각자의 다른 삶과 다른 사정이 생겼고, 그사이 우리에겐 각자의 비밀과 자격지심과 허세와 거짓말이 생겼다. 아무리 친한 관계라 해도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선이 생겼다. 눈에 보이는 선명한 경계선이 아닌, 보일 듯 말 듯 어렴풋한 경계선 위의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우리는 종종 미끄러져 떨어지기도 했다."


1+2. 하지현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과 의사의 서재』에서 "어릴 때 주입받는 이상적인 세상에 대한 순진한 믿음을 유지하다가, 큰일을 겪고 난 후 정신적으로 한 번에 무너져버리는 사례를 보게 된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잊지 않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말해요. 그러면서 따끔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도 꼭 있어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서점을 둘러보면 아픈 마음과 힘든 세상에 지친 사람을 어루만져주는 책은 많지만 따끔하게 듣기 싫어도 알아둬야 할 이야기를 해주는 책은 찾기 힘들다. 중•고교 시절을 돌이켜 보면 기억나는 선생님이나 선배 중에 이런 사람들 한 명은 꼭 떠오르지만, 좋은 말만 해주던 사람은 이상하게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는 싫었지만 분명히 영향을 준 것이다."

.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속담이 꼭 맞는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입에 쓰지 않은 약'이 선의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더라도 때에 따라 큰 독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thepsh-brunch/34

https://brunch.co.kr/@thepsh-brunch/63

https://brunch.co.kr/@thepsh-brunch/71

https://brunch.co.kr/@thepsh-brunch/149

https://brunch.co.kr/@thepsh-brunch/159

https://brunch.co.kr/@thepsh-brunch/171

https://brunch.co.kr/@thepsh-brunch/173

https://brunch.co.kr/@thepsh-brunch/200


작가의 이전글 나쁜 질문은 없을까? - <오징어 게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