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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Aug 18. 2024

22. 휘날리는 버들개지인가, 춤을 추는 백학인가

소동파, <진씨陳氏의 초당> 감상

오늘은 날씨도 더우니, 짧고 시원한 글 한 편을 감상해 보자. 제목은 <진씨의 초당 陳氏草堂>.

지은이는 중국문학사 최고의 천재 문인, 동파東坡 소식蘇軾(1037~1101)이다.




먼저 참고 삼아 이 매거진부터 잠깐 소개하겠다. 매거진 이름은 [동아시아의 고전과 글쓰기]. 현재 우리나라에서 추구하는 대부분의 '글쓰기'와는 상당히 결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글을 추구할까? 두 가지 사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1) 세칭 일류 대학에서는 수험생의 글쓰기 능력으로 입학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서구식 문학 이론은 다분히 기계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 학원에서는 그 방법론을 요약하여 속성으로 가르친다.


(2) 브런치 작가님들도 비슷한 경향이 있다. 그 어떤 곳에서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감각적인 글재주를 선호하고, 출간을 목적으로 하며,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꾼다. 서구의 분리 패러다임에서 비롯된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인식이다.


소오생의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인식과는 상당히 다르다. 하지만 굳이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여러 작가님들이 우리 동아시아 전통 글쓰기의 정신과 멋스러움도 함께 익히신다면 참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이 [동아시아의 고전과 글쓰기]라는 매거진을 시작했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고전은 그 범위가 너무나 넓으니 소오생이 죽는 그날까지 이 매거진은 끝없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각설! 동아시아 문학사에서 가장 멋진 글, 가장 재미있는 글, 가장 맛있는 글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명청 시대의 학자와 문인들은 입을 모아 서한西漢 시대의 사마천司馬遷과 당송唐宋 시대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를 꼽는다. 하지만 굳이 한 번 더 묻는다면 그중에서도 단연코 소동파를 첫 손에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매거진은 먼저 소동파 산문 감상부터 시작했다. 현재까지 감상한 글은 모두 8편. 산문이니만큼 분량이 있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11편의 글로 나누어 소개했다. 행유여력行有餘力, 짬이 나시면 꼭 감상해 보시길 감히 강추한다. 인생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백 권 천 권의 철학책을 읽는 것보다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노라고 옛 선인들이 입을 모아 칭송했다는 사실을 꼭 말씀드리고 싶다.


<02. 스승이 일러준 글 잘 쓰는 비결> : <육일거사의 비결 記六一語>

<03. 맛있는 글은 숙성이 필요하다> : <문여가의 '운당곡 언죽' 화기 文與可畵篔簹谷偃竹記>

<04. 선장은 멀미를 하지 않는다> : 〈초연대기超然臺記〉

<05. 바람과 달은 임자가 없는 법> : 〈임고정의 한가함 臨皐閑題〉

<06. 그 어느 날 밤에 달이 없겠는가> : 〈밤에 승천사를 거닐다 記承天寺夜遊〉

<07. 맑은 바람 솔솔 부니> : 〈적벽부赤壁賦〉(1)

<08.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 〈적벽부〉감상 (2)

<09. 이선균과 아득히 먼 곳> : 양자물리학과 〈전적벽부〉

<10. 그대, 인생이 즐거우셨소이까?> : 후적벽부後赤壁賦〉(1)

<11. 삶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 후적벽부〉감상 (2)

<13. 애써 쓴 글이 사라져 버렸다> : 〈합포 가는 길 記過合浦〉




휘날리는 버들개지인가, 춤을 추는 백학인가



【해제】


자, 그럼 오늘의 글 <진씨의 초당 陳氏草堂> 이야기를 해보자.


'진씨'는 누구일까?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진씨의 초당'은 어디 있는 걸까? 본문을 보면 자호慈湖라는 호숫가에 있는 모양이다. 이것도 중요하지 않다. 언제 쓴 글일까? 아마도 동파가 53세 무렵 항주태수로 있을 때 쓴 글로 추정된다. 이것 역시 중요하지 않다.


그럼 뭐가 중요할까? 동파는 무엇을 쓰려고 한 것일까? 이 글의 주제는 무엇일까? 주제를 부각하기 위해 동파는 어떻게 묘사하고 어떻게 표현하였을까? 본문은 아주 짧다. 어서 읽어보자.


【본문】


자호慈湖에 있는 진씨 초당의 뒤에는 산봉우리 사이에서 거세게 쏟아져 나오는 폭포가 있다.


하얀 천白布이 걸린 걸까,

하얀 눈白雪이 무너지나!

바람에 휘날리는 버들개지인가,

더불어 춤을 추는 한 무리의 백학白鶴인가!


삼료자參寥子가 초당의 주인에게 그곳에서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간청을 하니, 그 주인이 허락을 하였다. 동파거사도 명첩을 보내어 공양주 되기를 간청하고, 용구자龍邱子도 창고지기가 되고자 하였다. 삼료자가 거절하며 말했다. “자네들이 저 폭포 물을 한 입에 다 마셔버린다면 그렇게 해줌세.”


【원문】


慈湖陳氏草堂, 瀑流出兩山間, 落於堂後, 如懸布崩雪, 如風中絮, 如羣鶴舞。 參寥子問主人乞此地養老, 主人許之。 東坡居士投名作供養主, 龍邱子欲作庫頭。 參寥不納, 云: "待汝一口吸盡此水, 令汝作。"

▪자호慈湖 : 절강성 항주杭州와 영파寧波 사이에 위치한 호수
▪서絮 : 솜. 버들개지, 눈송이 같은 것
▪삼료자參寥子 : 송나라 때의 승려 도잠道潛. 시가詩歌에 뛰어나 동파와 자주 어울렸음.
▪걸차지양로乞此地養老 : '이곳(此地)'에서 '노년을 보낼 수 있(養老)'도록 '간청하다(乞)'.
▪투명投名 : 명첩名帖을 건네고 만나기를 청하다.
▪욕欲 : 조동사. ~을 하려고 하다.


【감상】


동파의 귀신같은 글 솜씨가 빛을 발하는 멋진 소품이다. 그림 같이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허물없이 함께 늙어가는 벗들의 훈훈한 우정이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자호慈湖 주변의 풍광이 어디 폭포 하나뿐이겠는가? 그러나 동파는 오직 폭포가 쏟아지는 모습만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얀 천白布이 걸린 걸까,

하얀 눈白雪이 무너지나!

바람에 휘날리는 버들개지인가,

더불어 춤을 추는 한 무리의 백학白鶴인가!


간결하기 그지없는 묘사로 독자들을 폭포 앞으로 인도한다. 휘날리는 폭포수에 우리 읽는 이들의 온몸이 흠뻑 젖어버린 느낌이다. 빠르고 느린 셔터 스피드로 찍은 네 장의 조금씩 다른 폭포 사진만 보았을 뿐인데, 자호를 에워싼 주변의 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벗들의 허물없는 모습들이 어디 한 순간뿐이겠는가? 그러나 동파는 오직 에피소드 하나만을 소개한다.


아니, 이렇게 멋진 곳에서 자네 혼자 살겠다는 말인가?

예끼, 몹쓸 사람! 밥은 내가 먹여줄 테니 나도 좀 끼어주게.

하하, 나는 창고지기 노릇을 해줄 테니, 나도 좀 끼어주게나.


부러움에 가득 찬 벗들의 청원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목소리, “어흠, 흠. 자네들이 저 폭포 물을 한 입에 다 마셔버린다면 그렇게 해줌세.” 동파의 스님 친구 삼료자의 그 얼굴에 개구진 미소가 가득 피어나는 그 모습. 독자들은 눈에 선하지 않으신가? 이토록 짧은 글 속에 이토록 풍성한 삶의 정취를 가득 담아내는 동파!


“글이란 이렇게 쓰는 거야.”


삼료자, 용구자와 함께 앉아 있던 동파가 문득 뒤돌아보며, 입을 쩍 벌린 채 그저 감탄만 하고 있는 소오생을 향해 힐끔 윙크하며 빙긋 미소를 던지는 것 같다.


【사족】


이 글의 주제는 무엇일까? 글쎄, 읽는 이에 따라서, 또는 그 시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산수와 하나 되어 살아가는 은자隱者의 소박한 삶일 수도 있겠고, 허물없이 함께 늙어가는 벗들의 훈훈한 우정일 수도 있겠다. 부지불식 간에 글쓰기의 키포인트를 전하고 있는 작문의 비급祕笈일 수도 있다. 동아시아의 글쓰기에는 형식상의 정답은 없다.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여백의 공간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내면을 충일하게 채우는 일이므로.


지금 이 시점 소오생에게 다가오고 있는 이 글의 주제는... '아름다운 인간 관계'다. 그것이 공자로부터 비롯된 중국 음식문화의 정신이요, 중국 문학의 전통이다. 그게 어디 중국만의 것일까. 우리나라 선비 문화, 우리 조상의 정신이기도 하다. 우리 작가님들과 같은 지성인들이 이어나가야 할 아름다운 전통이요 아름다운 인간 관계 아닐까. 소오생이 꿈꾸삶이다.




[ 대문 그림 ]

《산수이정, 山水二幀 남송南, 하규夏圭(생졸년 미상)


# 소식, 소동파

# 중국 산문

# <진씨의 초당 陳氏草堂>, <진씨초당 陳氏草堂>

#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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