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두려운 오드아이에게 : 마주하지 못한 눈동자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17편

by 옫아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콘텐츠 속 오드아이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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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짝눈? 네 맞아요!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너의 눈을 기다리며


명절이나 경조사로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이는 친척 모임은 내게 늘 이중적인 공간이야. 겉으로는 아이의 재롱에 웃음꽃이 피고 어른들의 덕담 속에 따뜻한 온기가 흐르지만, 내 안의 안테나는 늘 한쪽을 향해 팽팽하게 곤두서 있거든. 이제 겨우 15개월이 된 내 아이를 품에 안고 평온한 척 소란함 속에 섞여 있다가도, 문득 등 뒤가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껴. 그건 바로 인지 능력이 부쩍 발달해 세상의 모든 '다름'을 수집하고 분류하기 시작한 작은 관찰자들이 내 주위를 맴돌기 시작할 때지.


그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예의라는 가면 뒤에 호기심을 숨길 줄 모르잖아. 그래서 내 머릿속에선 늘 예행연습 같은 상상 극장 하나가 가동되곤 해.


[나의 상상 극장]


아이 중 한 명이 내 무릎 근처까지 다가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어. "이모, 그런데 이모 눈은 왜 그래요? 왜 한쪽만 색깔이 달라요?"


그 순간, 왁자지껄하던 거실의 소음이 내 귓가에서 일시에 사라져. 찰나의 정적이 흐르고, 나는 서른이 넘은 어른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비겁한 도망자가 되고 말지. 아이의 눈은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질문은 더없이 무구해. 그 안에는 어떠한 악의도, 폄하하려는 의도도 없지. 그저 세상에 존재하는 신기한 것 중 하나를 발견한 생명체의 본능적인 호기심일 뿐이야. 하지만 나는 그 순수한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어. 아이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한 채, 짐짓 바쁜 척 기저귀 가방을 뒤적이거나 등을 돌려 먼 곳을 응시하며 대화의 흐름을 뚝 끊어버려.


오드아이로 살아온 지난 30여 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시선을 견뎌왔고, 이제 웬만한 질문에는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자부해왔어. 하지만 아이들의 질문은 늘 예외였지. 성인들의 무례함은 침묵으로 응수하거나 날카롭게 받아치면 그만이지만, "왜?"라고 묻는 조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앞에서는 내가 쌓아온 모든 방어 기제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곤 했거든.


내가 머뭇거리는 그 짧은 침묵이, 혹은 당황해서 일그러지는 내 표정이 아이들에게 '이건 물어봐선 안 될 이상한 것' 혹은 '숨겨야 할 부끄러운 결점'이라는 오답을 줄까 봐 겁이 났어. 아이들은 백지 같아서 어른의 언어보다 그 분위기를 먼저 읽어내잖아. 나의 망설임이 자칫 '다름'을 '부끄러움'으로 번역해버리는 낙인이 될까 봐, 그게 무엇보다 두려웠던 거지.


비록 내 아이는 나와 달리 두 눈의 색이 같아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나의 해소되지 못한 상처가 아이의 깨끗한 세계관에 감정적으로 전염될까 봐 무서웠어. 아이에게 신체적인 오드아이는 물려주지 않았지만, 정작 내가 세상을 대할 때 멈칫거리는 이 위축된 태도만큼은 나도 모르게 유전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마음이 시렸거든. 내가 평생을 싸워온 그 외로운 마음의 짐을, 굳이 겪지 않아도 될 내 아이에게 내 뒷모습으로 전해주고 싶지 않았던 거야. 혹은, 여전히 나에게 이 눈이 극복하지 못한 서글픈 상처라는 사실을 조카들의 무구한 질문을 통해 재확인하게 될까 봐, 그 거울 같은 시선이 두려웠는지도 몰라.


무엇보다 나를 괴롭히는 건 미래의 내 아이가 하게 될 의문이야.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러나 반드시 언젠가는 기어코 마주할 일. 지금은 내 품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까르르 웃기만 하는 이 아이도, 머지않아 내 눈을 빤히 보며 "엄마 눈은 왜 달라?"라고 물어올 거야. 그때도 나는 지금처럼 비겁하게 눈을 피할 것인가.

내 아이가 처음으로 마주할 '다름'이라는 세계가, 엄마의 회피나 수치심으로 얼룩진 채 정의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 간절함이 내 안에서 뜨거운 질문이 되어 나를 두드린다.

나는 왜 아직도 이 작은 관찰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나를 설명하지 못할까. 깊은 곳의 상처를 들킬까 봐 아이들과의 눈 맞춤을 거부하는 이 비릿하고 고독한 고충을, 나는 언제쯤 마침표 찍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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