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키키에서 매일 서핑을 하겠다는 다짐을 실천하고 있었다. 내가 보드를 맡겨놓는 모쿠 샵에서 와이키키 비치까지는 20미터 남짓. 비치 바로 앞에는 횡단보도가 있어 빨간불에 종종 긴 보드를 들고 멈춰 신호가 바뀌길 기다려야만 했다. 선셋 서핑을 하기 위해 나선 내게, 백발의 노인이 말을 걸었다.
"Nice board!"
내 보드에 대한 칭찬은 바다에서 만난 서퍼들에게 이미 하루에 한 번꼴로 들었던 터였다. 그 때문에 나는 당연히 보드에 대한 칭찬일 거라고, 내 보드의 노즈에 적힌 마카하라는 브랜드와 리처드라는 유명한 쉐이퍼에 대한 칭찬일 거라고 생각했다.
You are so lucky!
'그래, 이 보드가 참 좋은 보드지! 나는 행운이지'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노인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숨을 쉬며 더듬거리는 말투로 자기도 보드를 탔었다고 했다. 지금은 더 탈 수 없지만... 그는 20년 전 가슴을 다쳐 더 이상 서핑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오늘도 서핑하는 너는 행운이라고
앞으로도 서핑할 수 있다는 건 행복이라고
얼른 바다로 뛰어가 파도를 잡으라고
신호가 바뀌고 바다 전체로 붉은 노을이 물드는 바다를 향해 뛰어갔다. 내 마음 한구석에서 석양만큼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그래, 오늘도 나는 바다를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언젠가 나도 바다에서 보낸 시간을 기억하겠지. 바닷물에 빠져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 채 보드를 부여잡았던 날들을, 코와 입으로 짭짜름한 바닷물을 수도 없이 마시고 뱉었던 날들을.
내가 파도를 탈 수 없을 때, 아마도 나 역시 바다로 향하는 누군가를 만나 파도를 탈 수 있는 너는 행운을 가진 서퍼라고 이야기해 줄 수 있기를!
아침에 일어나서 바다를 보고
파도가 괜찮을 것 같으면
보드를 들고 나가는 거야
무라카미 하루키 – 기사단장 죽이기 中 -
<하와이 로망일기, 와이키키 다이어리>
평범한 대한민국 30대가 사표를 던지고 무작정 떠났던 하와이 한량 생활기입니다.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하와이를 만나고 돌아온 85일간의 와이키키 다이어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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