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이 지배한다
거버넌스(Governance)
다양한 의미로 쓰이지만 국가의 통치 체제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권력구조와 의사결정 절차를 의미한다. 국가를 포함한 모든 조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조직의 거버넌스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한 개인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하고 있는지, 아니면 몇몇의 소수가 권력을 분점하여 결정을 위해 소수의 권력자가 협의를 해야하는지, 또 아니면 권력이 여러 기관으로 분산되어 있고, 상호 견제하게 되어 있어 각 기관은 맡은 범위 내의 결정만 할 수 경우가 있다. 이러한 거버넌스에 의해 그 조직의 판단 결과, 속도, 궁극적으로는 조직의 운명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서구언론과 그에 영향을 받은 우리는 특정 개인이나 기구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을수록 권위주의, 권력이 분산되어 있을수록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는 이와 다르다. 관련 글 : 중국의 민주, 민주집중제)
대한민국, 삼권분립
대한민국의 정치 체제는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 이론을 따른다. 입법, 행정, 사법 세 헌법기관이 국가 권력을 분점하고 상호 견제하는 구조이다. 입법부는 국정 감사를 통해 행정부를 감시하고, 대법원장의 임명 동의권으로 사법부를 견제한다. 행정부는 법률안 거부권으로 입법부의 법률 입안을 막을 수 있으며, 대법관 임명권으로 사법부에 영향을 미친다. 사법부는 위헌 법률 심판을 통해 입법된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사법부의 행정부 견제는 박근혜 탄핵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최종적으로 대통령 파면을 결정한 것은 헌법재판소, 즉 사법부였다. 대한민국은 서양, 주로 미국의 시스템을 받아들여 권력 분점, 민주 시스템을 정치 체계의 근간으로 삼았다. 견제 시스템으로 국가 권력의 전횡을 막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군사 독재 시대를 살아가며 독재의 폐해와 부작용을 목격했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군의 권력기관으로서의 역할은 완전히 끝났다. 군은 행정부 산하 국방부 소속이며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이다. 그리고 그 대통령은 직접 선거를 통해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투표로 뽑는다.
중화인민공화국, 인민민주주의 독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 체제는 완전히 다르다.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1조 1항은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 계급이 지도하고 노농동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주의 독재의 사회주의 국가이다', 2항은 '사회주의 제도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근본 제도이다. 중국공산당의 지도는 중국특색사회주의의 본질적 특징이다. 어떠한 조직이나 개인이 사회주의 제도를 파괴하는 것을 금지한다'이다. 중국은 계급사상에 기초한 '인민민주주의 독재'를 지향한다.
한국말로 독재라고 번역하기는 했지만 우리가 쓰는 독재와 중국인이 인식하는 독재는 다르다. 한국 사람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독재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현 정부는 너무 독재적이야", "부장님은 너무 독재 스타일이야"라고 한다면 이는 당연히 정부, 부장을 욕하는 말이다. 하지만 중국어에서는 독재(独裁), 전정(专政)을 구분한다. 중국 헌법 중국어 원문은 독재가 아닌 전정이란 단어가 사용됐다. 독재는 개인이 권력이 사유화하여 남용하는 것이라면, 전정은 전제정치의 줄임말로 한 계급이 권력을 장악하여 국가를 통치한다는 말로 부정적인 뜻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언제나 한 계급이 국가, 사회를 지도(领导)하는 전정 체제를 벗어난 적이 없다. 그리고 전정에는 자산계급의 전정과 무자산계급의 전정이 있다. 그리고 중국은 무자산계급이 지도하는 전정 체제이다. 그래서 무자산계급을 대표하는 공산당이 국가를 지도하고 누구도 이를 파괴할 수 없다. 이것이 중국 헌법에 쓰인 중국 정치체제에 대한 정의이다. 프로레탈리아 독재(전정)를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본 마르크스의 사상을 따랐다.
중국 공산당
그래서 중국의 정치를 이해하려면 중국공산당을 이해해야 한다.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그럼 중국공산당은 무엇인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권력을 점유하고 행사하는가?
중국공산당의 구성만 간략히 보자면 일단 중국 공산당원은 대략 9,000만 명이다. 이중 3천 명 이하가 선별되어 5년에 한 번 전국대표대회를 진행한다. 여기서 200여명의 중앙위원회를 뽑고 중앙위원회는 중앙정치국 위원,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선거로 뽑는다. 마오쩌둥과 같은 한 개인이 아닌 여러 명이 협의를 통해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통치체제를 구상해낸 것이 덩샤오핑이다. 이를 집단지도체제라고 부른다. 집단지도체제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덩샤오핑은 상무위원 간 역할을 구분하고 국가의 중요한 결정은 상무위원 간 협의를 통해 결정하는 구조를 고안해냈다. 장쩌민까지는 1인 우위 집단지도체제였지만 후진타오 시절에 이르러서는 상무위원 모두가 동등한 발언권을 가지는 집단지도체제가 완성되는 듯 했다. 하지만 현재는 다시 시진핑의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있다는 평이 많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인
한국이 삼권분립에 기반한 권력 분산 체제라면 중국은 공산당 주도의 권력 집중 체제이다. 중국 헌법에 입법 기관(전국인민대표회의 의결, 정치협상회의 자문), 행정 기관(국무원, 지방 정부), 사법 기관(최고인민법원)이 명시되어 있지만 모두 중국공산당이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짧게 줄여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 간에는 엄격한 서열이 있다. 당 총서기인 시진핑이 서열 1위이고, 국무원 총리인 리커창이 서열 2위이다.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회 위원장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서열 3위가 맡는다. 입법 자문기구인 정치협상회의 주석은 서열 4위가 담당한다. 그리고 군의 수장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서열 1위인 시진핑이 맡는다. 최고 사법 기관인 최고인민법원 원장은 상무위원이 아닌, 그리고 중앙정치국 위원도 아닌 중앙위원회 위원이 맡는다. 한국에 비해 사법기관이 실질적으로 다른 권력기관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가지고 있지 못해 상대적으로 권력 순위가 떨어진다.
권력의 핵심, 당 총서기 시진핑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가르침을 따라 군은 서열 1위 시진핑이 직접 장악한다. 중국은 군을 국가가 아닌 당이 지배한다는 말이 있는데 형식상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중국 헌법 상 군은 국가중앙군사위원회가 이끌게 되어 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 규약 상 당에는 당중앙군사위원회가 있다. 당중앙군사위원회와 국가중앙군사위원회는 같은 인물, 같은 조직이다. 중국의 전형적인 중첩조직 구조이다. (관련 글 : 중국 공산당의 영도 메커니즘) 중앙군사위원회는 실질적으로 하나의 조직인데 명함만 당, 국가로 두 개 있는 셈이다. 당 조직이면서 국가 조직이라면 이는 누가 실질적으로 지배한다고 볼 수 있는가. 당연히 당이다. 그래서 인민해방군은 국군이 아니고 당군이라는 말이 나온다. 시진핑은 당 서열 1위인 총서기이며, 국가 주석이자,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다. 반부패 운동으로 요직에서 이전 사람들을 몰아내고 그의 사람으로 채우고 있다는 평이다. 그에게 권력이 더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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