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26 수요일
아무런 일정이 잡혀 있지 않던 Dummy 같은 날.
다들 10시까지 늦잠을 잤다. 아빠로서 이 한 몸 바쳐 준비한 두 개의 이벤트, 할레아칼라 일출과 Road to Hana를 무사히 마치고 간밤에 긴장이 풀렸는지, 아침에 눈을 떴는데 느낌이 왔다. 곧 목이 붓고 온 몸이 아플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출발 전부터 계속된 컨디션 저하를 아프면 안 된다는 주문을 외우고 내 몸의 비상 동력장치를 가동하며 버티고 있었으나, 순간 방심한 틈을 타서 몸살 기운이 내 몸 구석구석을 침투 중이었다. 만약 하루 정도는 꼭 아파야 한다면 일정이 없는 오늘이 제격이긴 한데, 그래도 마우이에서의 마지막 온전한 하루고 내일은 오하우로 산더미 짐을 안고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대로 무너질 순 없었다.
딱히 특정 부위가 아프건 아니고 대신 신체 모든 부위가 아플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선, 위나 장부터 잘 관리해야 한다. 어제 먹다 남은 고기 및 퍽퍽한 음식들을 아침으로 먹으면서, 엄마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음식을 꼭꼭 천천히 씹어 먹었다. '너 오늘 뒤졌어'라며 결전의 태세를 취하고 있던 위와 장에서 평소보다 잘게 부서진 음식들이 내려와서 많이 놀랬으리라.
오늘의 일정을 짜기 위해 지우에게 지금까지 마우이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였냐고 물었다. 마지막 날엔 가장 좋았던 곳을 다시 찾을 계획이었다. Hana를 제외한 어디건 갈 채비를 하고 있었는데, 지우의 대답은 힘 빠지게도 '콘도 수영장'. 그렇게 좋은 곳을 많이 데리고 다녔는데, 역시 숙소 수영장을 뛰어넘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아침을 먹고 다시 수영장으로 갔다. 세 번째 수영이다 보니 지우는 이제 깊은 물도 겁내지 않고 개구리처럼 수영하며 잘도 다녔다. 지아는 수영장으로 내려가는 첫 번째 계단에 누워서, 본인이 인어공주라고 하며 물장구치며 놀았다.
오늘은 새로운 사람들이 수영장을 많이 찾았다. 반갑게도 젊은 사람들과 아이들이 대거 수영장에 등장했다. 공동 책임은 무책임이다. 영어로 Everybody's business is nothing's business. 함께 물을 튀기며 정신줄 놓고 노는 아이들의 등장으로 드디어 독서하는 어르신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콘도 가이드 책에 튜브나 물놀이 도구를 가지고 수영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되어 있어서, 그런 규칙을 칼같이 지키는 지우가 그동안 일자 스펀지를 제대로 가지로 놀지 않았는데, 이날은 수영장에 물 반 튜브 반이다. 지아를 당당하게 튜브에 태웠고, 지우도 맘이 편해졌는지 일자 스펀지를 겨드랑이 사이에 끼우고 수심 2m 심해를 건너 풀장 반대편 끝까지 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잠시 후 따뜻한 스파로 자리를 옮겼다. 어릴 땐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것을 정말 싫어했는데, 지금은 온몸의 독소를 뜨거운 물에 익사시켜버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가끔씩 집에서도 반신욕을 한다. 지아도 겨우 4살짜리가 40세의 "으... 좋다..." 미소를 지으며 뜨거운 물에 함께 몸을 담갔다. 하지만 지우는 잠시 앉아 있더니 여기 오래 있으면 나중에 수영장 들어갈 때 다시 추워질 것 같다며, 차가운 풀로 다시 돌아갔다. 뜨거운 물에서 몸을 풀 때 혈관이 확장되는 그 좋은 느낌을 뿌리치고 다시 돌아가다니, 대단한 정신력이다. 이제 아빠가 풀장에 함께 들어가지 않아도 혼자서 잘 노는구나.
때마침 방 청소를 끝낸 와이프가 내려와서 애들을 잠시 맡긴 후, 콘도 앞 바닷가로 혼자 한 번 나가봤다. 우리 콘도 앞에는 Kihei Beach와 Wailea Beach 사이에 있는 Kamaole Beach가 펼쳐져 있었다. 걸어서 3분 거리인데 마지막 날에서야 나가보구나. 혼자 카메라를 가지고 나선 김에 책을 만들면 표지로 쓰고 싶은 풍경 사진을 찍겠다는 목표로 엄청나게 셔터를 눌러댔는데, 별로 건질 사진은 없었다. 역시 사진은 무심코 찍어야 한다.
너무 좋은 해변과 풍경을 많이 봐서인지, 적당히 훌륭한 Kamaole Beach에 도착했을 때 큰 울림은 없었다. 다대포에서도 "지기네~"를 외치던 내가 건방지게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졌구나. 강한 바람과 파도를 보며, 여기 일기예보는 참 정확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마치 트루먼쇼 연출자 크리스토프가 Sunny, Mostly clear, Cloudy, Windy, 50% chance of Rain 등 일주일치 일기예보를 만들어놓고 하루하루 아침마다 날씨를 세팅이라도 하는 것처럼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마지막 콘도 수영을 마치고 점심으로는 역시 라면과 햇반이었다. 내일 이동을 앞두고 부피가 큰 음식 재고들을 빨리 소진해야 했다. 냉장고 및 실온 보관 중인 음식들까지 대규모로 투입했다. 라면, 햇반, 김치, 장조림, 김, 계란 조합으론 과연 어떻게 엉망으로 요리해야 맛이 없을 수 있을까? 준비된 음식 재료 자체가 미슐랭 스타였다. 24시간 지속되었던 시나몬의 니글거림 여파로부터 이제야 오장육부가 균형을 찾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꿀 맛 점심의 여운도 잠시, 오후 들어 몸이 급속도로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질병 레이스에서 가장 먼저 내게 도착한 증세는 복통이었다. 그리고 까불면 두통과 몸살도 추가로 보내버리겠다는 몸의 신호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이럴 땐 몸의 애정 어린 경고에 순종해야 한다. 아직 여행이 5일이나 더 남았기에 이상 신호들은 오늘 다 털어내야 했다. 그래서 난 점심을 먹은 후, 여행지에서 유례가 없는 낮잠을 자기로 했다.
매일 밤잠은 그렇게 설쳤건만, 낮잠은 정말 꿀잠이었다. 결국 시차 적응을 못하는 몸뚱이의 문제였던가. 맘 같아선 낮잠 개인 기록 6시간도 충분히 깨버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여행 와서 그러면 양아치지. 두 시간쯤 자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방에 들어가 보니 와이프와 아이들은 빡세게 놀다 지쳐, 세 명 다 침대에 누워서 낮잠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만 자고 일어난 입장에서 미안하긴 하지만, 여행지에서 시간차 낮잠은 있을 수 없다. 아이들이 졸려하니 일단 차에 태워야 했다. 애들이 차 안에서 잠드는 시나리오가 가장 평화롭다. 그래서 애들이 잠을 그대로 머금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차에 옮긴 후 무작정 출발했다. 마우이 북쪽으론 여러 번 올라가 봤으니, 이번엔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리 콘도는 Kihei와 Wailea 사이였는데, 조금만 내려가면 나오는 Wailea라는 지역은 마우이의 또 다른 볼거리였다. Grand Wailea Hotel을 비롯한 럭셔리 호텔들, 명품 아울렛, 골프장, 고급 별장들이 이 지역에 몰려 있었다. 우린 왜 이 곳을 몰랐지? 이 곳에 머무르는 여유로운 사람들의 성향이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하지 않기 때문에 South Maui에 대한 정보를 거의 접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마지막 날 와본 것이 아까울 정도로 눈이 정화되는 풍경들의 연속이었다.
마우이에서는 운전을 할 때 속도를 낼 필요가 전혀 없었다. 예상대로 아이들이 곤히 잠드는 바람에 조금이라도 더 재우려고 천천히 운전했는데도 날 앞질러가는 차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차들은 픽업트럭들이었고, 일본 차와 미국 차만 다닐 뿐 유럽 차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마우이에서 산다고 해도, 아마 Ford의 F-150 픽업트럭을 몰고 다녔을 것 같다.
와이프가 미국엔 왜 이렇게 픽업트럭이 많냐고 물었다. 내가 좀 선진국스럽게 생기긴 했지만, 가끔 이런 질문을 받을 땐, 마치 날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교포 유학생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나 부산 대신동 문화아파트 출신인데. 그래도 이런 질문은 나중에 검색을 해서라도 답을 해준다. 구글과 대화를 좀 해보니,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 종류 1~3위가 각 Ford, Chevrolet, Dodge의 픽업트럭이었다. 4위가 베스트셀러 도요타 캠리였으니 픽업트럭이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 알 수 있었다.
픽업트럭에 대한 미국인들의 사랑은 과거 서쪽으로 이동하며 American Dream의 쫓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지금은 애국심을 자극하는 향수 같은 존재라고 했다. 하지만 전통만으로는 설명에 한계가 있다. 인건비가 비싸서 모든 것들을 스스로 만들고 고쳐 쓰는 DIY(Do it yourself) 생활습관들을 가지고 있을 테고, 우리처럼 빡센 회사생활 및 술 문화를 가지지 않았을 테니 자연스럽게 가족 중심 문화가 정착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DIY, 레저 및 캠핑을 위해 픽업트럭이 필요성이 증가했을 것 같고, 부담스럽지 않은 기름값도 큰 차들의 보급에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 중 내가 픽업트럭을 타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 - It looks cool. 픽업트럭 짐칸에 아무것도 싣지 않으면 어때. 전성기의 마이크 타이슨을 보는 것처럼 서 있기만 해도 멋있다. 엄청난 덩치에도 매끈하게 빠져 있는 Ford의 F-150이나 Dodge의 RAM 1500 시리즈를 보면, 마치 복싱 체육관에서 5만 원짜리 Garmy나 SINDO 글러브를 끼고 운동하다가, 메이웨더나 골로프킨이 쓰는 황금색 GRANT 글러브를 봤을 때처럼 가슴이 뛰었다. 저런 차들을 몰고 다닐 날이 올까.
드라이브 도중 예쁜 바다가 보이면 차를 세웠다. 지우는 항상 발만 담근다고 해놓고 물에 들어가서 놀다가 최소 치마를 젖어서 나왔다. 지우는 어릴 때부터 바다에 들어가면 웅크리고 앉아 예쁜 조개를 찾아다녔다. 저렇게 예쁜 조개를 찾다가 혐오스러운 갯강구 따위를 만나면 바다에 대한 환상이 좀 빠질 텐데, 다행히 하와이에선 그런 흉측한 녀석들은 나오지 않았다.
남쪽 해안도로는 길이 조금 험했지만 차도 거의 다니지 않고 오른쪽으론 바다, 왼쪽으론 고급 별장들이 들어서 있어, 내가 재벌이면 이런 곳에 별장 하나 지어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와이프가 이런 바닷가 별장들의 가격을 확인해보니 약 20억 정도 하는 것 같았다. 반포 자이나 압구정 현대 큰 평수 아파트를 팔면 이런 멋진 해안가 대저택을 살 수 있구나. 우리가 묶고 있는 콘도의 가격도 확인해보니 6억쯤 했다. 20억이 있으면 집사 한 명 고용하여 콘도 세 개 에어비앤비로 돌리면서 수익도 올리고 우리도 한 번씩 와서 쉬다가는 그림이 그려졌다. 상상만 해도 물개 박수가 나오는 플랜이다.
이렇게 혼자 하와이 집도 사보는 상상을 해볼 수 있는, 참으로 마음이 풍족해지는 남부해안도로 드라이브 길이었다. 하지만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갔더니 골프장을 개발하는지 땅을 전부 파 뒤집어 놓은 황량한 도로가 길게 이어졌다. 와이프가 이쯤에서 돌아가자고 했다. 난 이런 비포장도로 운전에 최적화된 차도 몰고 있으니, 조금 더 내려가 보고 싶었다. 왠지 이 길의 끝자락엔 가슴이 뻥 뚫리는 멋진 뷰가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와이프는 광활한 초원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 싫다고 했다. 평소와 다른 시적인 표현까지 동원하는 걸 보면 정말 가기 싫었나 보다. 그래서 아쉽지만 이쯤에도 돌아가는 걸로 양보했다. 유턴하는 지점에서 한 아저씨가 혼자 드론을 날리고 있었다. 골프장 건설업자이거나, 앨런 머스크 같은 IT 거물이거나, 친구 없는 아재 중 하나일 것 같았다.
길 양 옆으로 들어서 있는 고급 별장들로부터 나온 멋진 나무들이 아치형으로 뻗어 나와 길 위를 뒤덮고 있었다. 이 길을 운전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마치 동화책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와이프에게 나도 문학적으로 느낌을 전했다.
“이 길,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길 같지 않아? 아기자기한 게 너무 멋있다”
“오즈의 마법사? 오즈의 마법사 배경은 캔자스인데. 아주 황량한 초원 배경. 여긴 바다. 전혀 다른 느낌인데?”
난 오즈의 마법사의 허수아비처럼 뇌가 없고, 와이프는 양철통처럼 심장이 없는 대화였다. 그냥 그런 느낌이라고. 엄마 아빠는 허수아비와 양철통이지만, 우리 딸들에게는 도로시의 빨간 구두나 하나씩 사줘야겠다. 그래서 오는 길에 명품 아울렛에 잠시 들렀다.
지아가 여전히 코~ 자고 있어서 와이프와 지우만 내리고 난 차에서 기다렸다. 한가롭게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명품 쇼핑백을 잔뜩 들고 나오시고 있었다. 그 할머니가 자동차 자동 키를 눌렀는데, 우리 차 바로 옆의 오픈카가 헤드라이트를 번쩍거리며 할머니를 맞이한다. 와, 멋지다. 저 나이에 오픈카를 몰고 와서 명품 쇼핑을 하시다니. 나중에 우리 와이프도 저렇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눈은 부러운 마음에 할머니를 계속 쫓았다. 할머니는 여유롭게 시동을 걸고 고개를 뒤로 돌리시고 후진해서 차를 빼는 자세를 잡으시고 액셀레이터를 밟으셨는데, 쿵! 차는 전진해서 앞 화단과 나무를 받으셨다. 할머니가 D를 놓고 후진을 하셨나 보다. 이어 끼이이익! 구슬픈 오픈카 바닥 긁히는 소리. 괜히 내가 바로 옆 차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을 알면 무안하실까 봐 난 숨도 안 쉬고 부동자세로 있었지만, 더 나쁘게 몰래 사진을 찍었다.
와이프와 지우는 예상외로 20분 만에 돌아왔다. 프리미엄 아울렛은 뭔가 어중간하긴 했다. 아예 가격이 저렴하여 득템 하는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명품을 산다고 하면 우린 내일 명품 천국 와이키키로 가는데 여기서 애매하게 기웃거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지우는 지아 없이 혼자 엄마 따라 나가서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 왔다며 신나서 자랑을 했다. 아빠도 아이스크림 먹고 싶었는데.
마지막 마우이에서의 저녁은 Kihei 지역의 Sansei Seafood Restaurant & Sushi로 갔다. 마지막 저녁 만찬 장소를 찾아보다가, 클래스를 한 번 높여볼까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Ruth’s Chris Steak House나 Wolfgang’s Steak House처럼 이름에 House가 들어가 있으면서 와인 잔을 좀 돌려야 할 것처럼 보이는 곳도 후보지에 넣었으나 우리 여행 컨셉과 맞지 않아 패스했다. 그리고 나름 맛 평가를 휩쓴 고급 레스토랑이면서도 매우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우고 있는 Sansei Seafood로 최종 선택했다. 이곳도 예약 없이 갔다가 들어가지 못한 Mama’s Fish House처럼 예약이 힘든 곳이라고 했지만, 다행히 4인 좌석이 하나 남아 있었다.
초밥, 돈가스, 튀김요리와 메인 요리로 스테이크를 하나 시켰는데, 괜히 맛 평가가 높은 게 아니었다. 난 아침부터 시작된 복통 때문에 저녁을 건너뛸까 생각도 했지만, 살짝 음식 맛을 본 이후엔 복통이고 뭐고 그냥 먹고 죽자는 생각으로 와사비도 듬뿍듬뿍 찍어가며 폭식을 했다.
레스토랑 내 대형 TV에서는 시카고 컵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대망의 월드시리즈가 중계되고 있었다. 시카고 컵스가 108년 된 염소의 저주를 깨는 스토리라 국내에서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시리즈였는데, 이 곳 사람들은 야구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만 tv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듯했다. Come on, Guys. 가장 오랫동안 우승하지 못한 두 팀이 붙은 월드시리즈라고!
우리 딸들은 역시 테이블 매너가 조금 부족했다. 일반 음식점을 갈 땐 별로 느껴지지 않았지만, 고급진 곳에 오면 금세 티가 났다. 귀족처럼 폴로 옷을 입고 얌전히 앉아서 먹는 외국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 딸들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질 못했다. 계속 엄마 옆에 앉았다 아빠 옆에 앉았다, 쫑알종알 둘이서 대화하다가, 갑자기 소리 지르고 싸우다가, 결국 휴대폰으로 재미있는 거 하나 틀어줘야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캐리 언니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면서, 입만 뻥끗뻥끗 벌리며 주는 음식 잘 받아먹었다. 애들 다 먹여놓고 이제 엄마 아빠가 먹으려고 하면, “엄마쉬” “아빠 쉬” “집에 가자”등으로 흐름을 끊어 놓았다. 내가 Why책 ‘글로벌 매너’ 편도 사 줬는데 소용없었다. 이번에 한국 돌아가면 다음번 여행까지 애들 밥 몇 번 굶기더라도 테이블 매너를 확실히 가르쳐야겠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내고 콘도에 다시 도착해서 내리려 하는데, 차 와이퍼 밑에 흰 봉투가 하나 꽂혀 있다. 저게 행운의 편지는 아닐 테고, 본능적으로 예감이 안 좋았다. 얼핏 보니, 뭔가 주차위반 딱지 같아보였고, 기간 내 지불하면 40불, 기간을 넘기면 70불이라고 적혀 있다. 아놔. 집에 들어와서 밝은 곳에서 다시 읽어보니, 뭔가 이상했다. 제목이 주차 위반도 아니고 Thank you for parking with us였다. 그리고 40불 보내라는 곳 주소도 시애틀이다. 이건 뭐 신종 스팸인가.
이런 일에 대한 사실 확인 혹은 클레임은 와이프의 고급 영어 영역이다. 초밥집에 전화를 했더니, 그래도 고급 레스토랑이라 상당히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줬다. 매니저가 이야기를 다 듣더니 본인도 잘 모르겠다며, 사진을 찍어서 자신의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우리 내일 마우이를 떠나는데 어느 세월에 이메일 보내고, 답장 기다리랴. 우린 다시 차를 몰고 주차를 했던 그 장소로 가봤다.
Foodland라는 마트 주차장에 주차를 했었는데, 우리 주차 구역의 차들에 모두 그 봉투가 꽂혀 있었다. 우리만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구역에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건지 찾아봤더니, 눈에 띄지도 않는 구석자리에 ‘One hour free’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초밥집 매니저가 나와서 상황을 보더니, 그 구역만 One Hour Free라서 우리가 1시간이 넘었기 때문에 주차비를 내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아주 교과서적인 답변이었다. 또한 주소에 적혀 있는 시애틀 회사는 하와이 전역의 주차관리를 대행해주는 회사 같다고 했다. 이런 젠장. 그러면 잘 보이게 표시를 해놓던가.
지역 주민들은 이 룰을 알 테고, 마우이가 여행객들의 호주머니에서만 40불씩 삥 뜯는 것 같아 불쾌했다. 마지막으로 초밥집 매니저는 들어가기 전에, 이건 주정부 딱지가 아니고 사설기관에 지불하는 거라 그냥 무시해버리라고 했다. 그래, 난 이런 개인적인 의견을 원했던 거다. 행운의 편지 따위는 일단 무시하자. 일을 제대로 하는 사설기관이면 나중에 렌터카 회사로 다시 청구할 테고, 렌터카 회사는 우리 카드번호를 알고 있으니 알아서 빼가겠지. 어떻게 일처리 하는지 한 번 보자. 우린 결국 우린 그 돈을 내지 않았다.
다시 콘도로 돌아와서 짐을 쌌다. 두 섬을 다니니 이 과정이 별로구나. 짐을 싸고 있으니 여행이 마무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정신 차리자, 우울해하기엔 아직 5일이나 남았다.
그리고 내일은 다시 컨디션이 좋아지길.
Good-bye 7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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