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27 목요일
마우이 7박을 끝내고 오하우로 건너가는 날.
다행히 어제보단 컨디션이 좀 살아났다. 짐 한 번 싸 볼까 주위를 둘러봤더니, 부지런한 와이프가 새벽에 짐을 거의 다 싸놓았다. 와이프는 이런 대목에서는 날 믿지 못해서 혼자 일을 다해 버린다. 그래도 이번 여행에선 나름 N분의 1 이상의 몫을 하고 있는지라 평소보단 덜 미안했다.
난 일어나자마자 모자 하나 눌러쓰고 와이프가 싸놓은 짐을 차로 옮기기 시작했다. 낑낑대며 세 번에 걸쳐 짐들을 차에 옮겨놓고 쓰레기들도 다 버렸다. 미국 사람들은 일회용품들도 훨씬 많이 쓰면서 무슨 배짱으로 분리수거를 하지 않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쓰레기봉투에서 내용물들을 다 꺼내서 분리를 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고 했다. 참, 고달픈 직업도 많네, 다들 억대 연봉 받으시길.
난 마지막으로 유모차와 내 배낭을 차로 옮기려 내려갔더니 헉, 차 키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내려와서 차 키로 문을 열어놨으니, 차 안이나 집 안에 있거나 혹은 이동 중에 흘렸으리라. 난 끓어오르는 짜증을 억누르며 차 트렁크에 테트리스 신공을 발휘하며 차곡차곡 넣어둔 그 많은 짐들을 전부 다시 꺼냈다. 구석구석 살펴봤는데 보이지 않았다. 차는 아니구나. 난 다시 짐으로 테트리스를 쌓았다. 아침부터 뭐하는 짓인가.
Buba Gump 유리컵을 땅바닥에 놓고 깨뜨린 예도 있어서, 내가 지나간 길 위를 유심히 살펴보았고 말도 안 되는 확률로 고양이나 몽구스가 바베큐 뼈인 줄 알고 물고 가다가 버렸을 수도 있으니 풀 숲까지 둘러보았다. 역시 없었다. 그래, 적어도 난 길거리에 물건 흘릴 정도로 칠칠맞지는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집 안이다. 방, 화장실, 소파, 식탁 등등 다 살펴봤는데도 보이지 않았다.
난 다시 내려가서 최후의 보루 쓰레기통도 뒤졌다. 쓰레기봉투를 던지면서 차 키도 함께 던졌을 확률이 고양이가 물고 간 확률보다는 높아 보였으니 마지막 희망이었다. 다행히 아침이라 쓰레기가 많지 않아서, 긴 나뭇가지를 주워다 여기저기를 들쑤셔 봤는데, 역시 그곳에도 없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등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은 섬 간 이동을 제외하곤 별다른 이야깃거리가 없을 날이라, 오늘을 '냉무'로 두지 말고 기억하라고 불친절한 에피소드 하나가 나오나 싶었다.
난 차분하게 20분 전 처음 짐을 옮길 때로 돌아가서, 사건 현장을 그대로 재연해봤다. '이 길로 걸어가서 차 문을 열었고, 캐리어 두 개를 실었고, 차에 실려져 있던 콘도 소유 스노클링 장비들을 가방에 담아 다시 콘도로 가져와 베란다에서 모래를 턴 후 창고에 넣었고…' 하는 대목에서 순간 멈췄다. 설마 하며 스노클링 장비 가방을 열어 봤더니, 오리발 안에 차 키가 들어 있었다.
아놔, 오리발이라니. 좋으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이건 뭐 잃어버린 핸드폰을 냉장고 안에서 발견한 수준이었다. 푹 자서 몸 컨디션은 돌아왔지만 머리 컨디션은 돌아오지 않을 걸로 치자. 나의 건망증을 탓하며, 건망증 관련 속담을 떠올리려고 했는데, 건망증 탓에 기억나지 않았다. 또다시 구글과 잠시 대화를 나눴고, 그 속담은 ‘허리춤에 찬 곰방대 한나절 찾는다’였다. 참 어려운 문장이다. 이 속담 일주일만 지나면 또 까먹는데 내 왼 손을 걸겠다.
안녕 Kamaole Sands! 이제 진짜 떠난다.
날적이에 멋들어진 필기체로 인사말을 못 적고 나온 것이 아쉬웠다. 사실 좀 오버스럽지만 날적이에 적을 시적인 표현을 몇 개 준비했었다. 예를 들면, Hana로 가는 길에선 너무 감동받아 가슴이 먹먹해졌다며 “I was so touched that my heart ached.”, 할레아칼라 일출을 보면서는 가슴이 북받쳐 숨이 막혔다며 “I almost choke with emotions”이란 표현을 쓰려했다. 날적이에 이런 글들을 적은 후, 와이프에게 남편 영어 죽이지 않냐고 자랑하려고 했었다. 너무 화려한 표현들이라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지만, 다 그런 거지 뭐. 하지만 건망증 탓에 아쉽지만 안녕.
우린 아침을 먹으로 kihei caffe로 갔다. 이 근방에서 가장 유명한 브런치카페였다. 역시 줄이 길게 서 있다. 미리 자리를 맡아놓지 마라고 'Don’t save table'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먼저 자리를 맡아 놓는 사람이 없으니, 메뉴 주문하고 나서 여유롭게 자리를 찾으면 꼭 한두 테이블은 일어났다. 훨씬 빠르면서도 혹시 기다리더라도 불만을 가질 수 없는 합리적인 방식이었다.
나와 아이들은 밖에서 놀고, 와이프가 주문 후 자리를 맡았다. 이 가게는 음식이 나오면 이름을 크게 불러서 손님을 찾을 후 자리로 갖다 준다. 서빙하는 분들이 앞다퉈 “Rachel? Petricia?” 등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이런 시스템은 항상 장난이 치고 싶어 진다. 친구들과 왔다면 예전에 삐삐 쓰던 시절로 돌아가서, "손님 중에 손주배(쭉빼) 씨, 손님 중에 손오이씨, 카운터에 전화와 있습니다” 하던 식으로 분명히 장난쳤으리라. 영어 이름을 써야 하니, 내 이름은 Tyson이나 Trump, 혹은 아예 Suzy 같은 여자 이름을 썼을 텐데.
잠시 후 심심한 Jeanie 이름으로 나온 브런치 음식들. 비주얼들은 나쁘지 않았으나 7일 전 오하우에서 들렀던 Heavenly보다 맛은 별로였다. 아이들도 잠이 덜 깨기도 했고 날아다니는 모기와 파리가 신경 쓰였던지, 많이 먹지는 않았다.
공항엔 12시 반까지 가면 되니,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 지우가 도넛을 먹고 싶다고 했는데, 공항 근처에 크리스피 크림 도넛 가게가 있었다. 나중에 점심도 먹어야 하니 우선 간단히 쇼핑을 좀 하고 공항 가기 전에 도넛을 먹기로 했다. 그래서 쇼핑을 위해 지우가 좋아하는 TJ Maxx로 가기로 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공장이 하나 나온다. 사실 첫날부터 이 공장이 너무 궁금했다. 이렇게 청정한 마우이에 굴뚝 공장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는데, 그 외관이 찰리와 초콜릿 공장처럼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검색을 해보니 이 공장은 Hawaiian Comercial & Sugar Co.라는 이름의 설탕공장이었다.
하지만 첫 링크에 슬픈 기사가 실려 있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이 공장은 올해 말 폐쇄된다고 했다. 이로써 한인 이주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하와이의 설탕 산업이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는구나. 마지막 사탕수수 추수가 모두 끝났으며, 지금은 직원들 해고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공장에 가봤을 때 사람은 보이지 않고 사탕수수 가루들만 날리고 있었다. 그래도 굴뚝으로 새하얀 연기는 계속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 마치 지난 100년을 되돌아보고 삶을 마무리하며 그동안 수고하신 분들에 대한 마지막 선물로 흰 구름들을 만들어 두둥실 올려 보내고 있는 듯 보였다. 다들 좋은 Job 찾으시길.
잠시 후 TJ Maxx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도 몇 대 없었다. 와이프는 장난감 코너에서 나와 아이 둘을 남겨놓은 후, 혼자 유유히 사라졌다. 그리고 TJ Maxx를 헤집고 다니며 득템 후보군들을 잔뜩 모아서 나타났다. 그중 내 것도 있었는데, 무려 무하마드 알리 티셔츠였다. 이제 완전히 내 취향을 아는구나. 난 장난감 코너에서 지우, 지아에게 아무거나 하나씩 사 줄 테니 골라보라고 했더니, 여러 차례의 변심 끝에 지우는 워키토키를, 지아는 my little pony 장난감을 선택했다.
나와 아이들은 소파에 앉아 책을 봤고, 와이프는 다시 득템 투어를 떠났다. 손님이 거의 없는 한적한 TJ Maxx에서 너무 여유롭게 있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문득 시계를 보니 도넛은 건너뛰고 벌써 공항으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지우가 평소에 콕 찍어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정말 드물게 콕 찍어 요청한 도넛을 못 사주게 되다니, 쏘리.
렌터카를 반납하고, 다시 짐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기존 캐리어 세 개에, 가방 세 개, 그리고 카시트를 넣는 박스 하나에 유모차까지. 그래도 이 짐들은 적어도 투정은 부리지 않고, 가끔은 막 다뤄도 된다. 이동 시 가장 힘든 건 두 아이들이다. 항상 짐을 옮겨야 할 순간마다 잠이 든다. 잠든 아이 둘을 데리고 이동해야 할 때가 가장 난감하고 힘들다. 할 수 없이 잠든 지아는 유모차에 태우고 지우는 깨워서 걸어가자고 했는데, 왜 자긴 안태워주고 동생만 태워주냐고 짜증이 폭발했다. 그래도 우리 지우는 속이 깊고 착해서, 툴툴대긴 하지만 엄마 아빠에게 협조를 잘 해주는 편이다. 도넛도 못 사줬는데 계속 미안하네. "지아야, 네가 나중에 커서 이 글을 보면 언니에게 무조건 고맙다고 하고, 가장 아끼는 물건 하나 언니 줘라."
국제선 비행 전문가 와이프가 짐을 쌌기 때문에, 지금껏 여행을 다니는 동안 예약이나 수속 등에서 단 한 번도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 이번에도 내가 한 것이라곤 '어설프게 끼어들지 않고 와이프에게 전권 위임하기'였다. 원래 우린 수화물로 짐을 5개를 붙였는데, 시내 항공은 짐 하나에 25불씩 내야 해서 이번엔 짐을 네 개만 붙였다. 이 부분에서 착오가 생겼다.
수화물로 붙이지 않고 기내로 가지고 간 짐에서 물 두 통, 얼음박스 두 개, 용량 초과 화장품 두 개가 나왔다. 와이프도 검색대를 통과하고 나서야 떠올랐다고 했다. 물 정도만 나오면 "웁스~ 쏴리~"하며 그냥 버리고 가면 되는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위반 거리들이 나오자 검색대 직원이 “혹시 예전에 비행기 타봤어요?”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어이없게 쳐다봤다. 와이프는 구석으로 끌려가 여성 폴리스에게 별도의 신체검사까지 받아야 했다.
지우와 와이프는 둘 다 표정이 어두웠다. 경찰을 엄청 무서워하는 지우는 엄마가 잡혀갈까 봐 걱정하는 표정이었고, 와이프는 새로 산 화장품 두 개를 눈 앞에서 뺏긴 것이 너무 아깝다고 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구나. 국제선 전문가의 흔치 않은 실수였다. 저 사람들은 와이프가 지난 한 달간 브라질, 싱가포르, 하와이를 왕복하고 있는 사람이란 것을 알면 더 어이없어하겠지.
게이트 앞에 앉아서 탑승을 기다리는데, 크리스피 도넛을 두 박스씩 들고 가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지우한테 더 미안해지게 굳이 두 박스씩 사서 비행기를 타다니. 그런데 알고 보니 오하우에는 크리스피 도넛이 없었다. 사람 많은 오하우에는 매장이 없고 한적한 마우이에만 들어와 있는 이 출점 전략은 뭐지? 크리스피 도넛의 하와이 지점은 본사에서 매출실적에 크게 관심 없거나 사원 급이 관리하고 있나 보다.
지우에게 비행기를 타면 아이패드를 보여주겠고 했다. 이륙 이후 이제 아이패드를 보라고 하자, “봐도 된다는 방송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며 켜질 않았다. 지우는 이런 준법정신은 정말 투철하다.
잠시 후 안내 방송이 나왔다. 물론 기내방송 내용은 “승객 여러분, 안전을 위해 좌석 벨트를 매주시고 좌석 등받이와 테이블을 제자리로 해 주십시오. 저희 하와이안 에어라인은 전 노선에 금연을 실시하고 있으며…” 등이었지만, 지우에게는 “승객 여러분, 이륙을 하였으니 이제 아이패드로 만화를 봐도 됩니다.”라는 방송이 나온다고 해줬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패드를 켰다. 아직 영어 못하고 아빠 말은 다 믿는 순진한 우리 딸이 참 좋다.
그리고 난 지우에게 이어폰을 건네었는데, 자그마치 이어폰 세 개가 미친 듯이 꼬여있었다. 이어폰 줄들은 왜 이렇게 잘 꼬이는 걸까. 일부러 저렇게 복잡하게 꼬아놓기도 힘들 텐데, 주머니 속에만 들어가면 지들끼리 좋다고 몸을 막 비비고 꼬아버리나 보다. 세 개의 이어폰에 나온 여섯 줄이 제대로 꼬여 떡져 있으니, 정말 대책이 없었다.
난 무책임하게 이어폰 묶음을 지우에게 툭 던져주고 실 웃었다. 그런데 지우는 실망하기는커녕 또 다른 놀이거리를 받은 양 재미있어했다. 마치 3D 퍼즐을 푸는 듯 몰입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 지우의 집중력은 내가 봐도 뛰어난 것 같다. 반면 지아는 정반대다. 아마 이런 이어폰 묶음을 전해줬으면 “나 아빠 안 좋아해”하면서 그대로 버렸을 듯.
아무튼 지우는 5분 만에 이어폰 하나를 살려냈다. 그걸 귀에 꽂고 아이패드를 보려는 지우에게 나머지 두 개의 이어폰 줄도 풀어달라고 하자, "에휴~ 아빠도 참~"하며 아이패드를 덮더니 다시 퍼즐을 시작했다. 신기했다. 아이패드 '안녕, 자두야' 만화보다 꼬인 줄을 푸는 게 더 재밌단 말인가. 결국 나머지 두 개도 성공적으로 분리시킨 후, 만화를 보기 시작했다. 브라보.
창공에서 바라본 마우이와 오하우는 느낌이 정말 달랐다. 마우이는 비행기에서조차 선명한 무지개가 보이던 시골 마을이었는데, 오하우는 도시 속 건물들과 앞바다에 떠 있는 군함, 전투기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불과 20분 거리지만 남양주 있다가 잠실 나왔을 때 이런 느낌이다.
창공에서의 풍경을 색깔로 표현하면, 마우이는 녹색이고 오하우는 흙색이었다. 학창 시절 사회과부도 지도에도 농촌은 녹색, 도시는 흙색이었다. 물론 오하우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Forest National Wildlife Refuge가 있어 수풀이 우거져 있고, 마우이의 내륙은 의외로 사탕수수밭이 황량하게 펼쳐져 있긴 한데, 전체적으로는 마우이가 오하우에 비해서는 훨씬 시골임은 분명했다.
비행기에서 나무숲을 내려다보며, 단어가 하나를 떠올리려 머리를 쥐어짰는데 끝까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피스톤 썸띵이었는데 뭐였지? 뭔가 피자 토핑 같은 이름이었는데. 기억이 날 듯 말 듯한 이런 상황이 요즘 부쩍 잦아져서 괴롭다. 원래도 카메라 같은 기억력의 소유자는 아니었지만, 부쩍 사람 이름도 잘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면 이제 정말 견과류 씹어먹어야겠다. 앞으로 머리 좋은 사람이 되겠다.
결국 착륙과 동시에 핸드폰을 켜서 검색했다. 아, 이거였지. 피톤치드.
피스톤 썸띵이 아닌 피톤치드는 나무가 해충과 병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자연 항균 물질이다. 스트레스 해소, 심폐 기능 강화, 살균 작용이 효과가 있어서, 사람들이 아침고요 수목원 같은 곳에서 삼림욕을 하면 힐링되는 기분을 느끼는 원인 물질이기도 하다. 또한 피톤치드는 숙면 효과도 있다고 한다. 피톤치드의 대표 성분이 진정작용을 해서 숲에선 훨씬 빨리 잠들고 더 오래 잠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수풀의 끝판왕인 할레아칼라와 Hana를 다녀올 때마다 그렇게 졸렸구나.
콘도 날적이에 글 남기는 것도 실패했기에, 7박의 여행을 마치며 마우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싶었다. 좀 억지스럽지만 '마우이는 영혼의 새집증후군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감정의 피톤치드를 선물해주는 곳'. 미국이니 영어로도 하나 남기자. 'All I can say about Maui is WOW!'
안녕, 마우이.
다시 도착한 오하우, 고향처럼 푸근했다. 오하우를 고향이라 생각하다니, 좀 멋지다. 렌터카를 찾으러 가는데 또 셔틀을 타야 했다. 조금 더 싼 2nd tier 렌터카 회사에 예약하면 이런 점이 불편하다. 이 짐들을 가지고 셔틀을 타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다음엔 공항과 붙어 있는 Hertz나 Avis로 가자.
렌터카 사무실에 도착해서 난 상담 대기하고 있었고, 지우 지아 와이프는 화장실에 갔는데 거기서 작은 소란이 있었다. 일단 애들 둘 다 지쳐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서로 쉬를 먼저 하겠다고 다투다가 지아가 홧김에 옷을 입은 채로 쉬를 해버렸다. 오 마이 갓! 개구쟁이 지아는 피곤하거나 배가 고프거나 졸릴 때, 날카로워진다. 근데 이 순간은 셋 다 해당되었다. 그래서 옷 입은 채로 쉬 테러를 친 것이다. 물론 엄마한테 엄청 혼났다.
차는 마우이에서 너무 큰 차를 타서 여기선 Midsize SUV를 신청했다. 쉐보레나 포드 SUV는 좀 더 컸지만, 크기는 좀 작더라도 JEEP SUV를 타고 싶었다. 그래서 렌트 가능한 3대의 JEEP 중 디자인은 가장 맘에 들지 않았지만 짐 수납공간이 제일 큰 놈으로 골랐다.
휴~ 아직 우리 가족 구성으로는 섬 간 이동은 힘들었다. 아침 일어나서 짐 옮기고 체크아웃하고 렌트 반납하고 비행기 타고 도착해서 다시 렌터카 찾으니 저녁 다섯 시다. 이동만으로 하루를 꼬박 쓰다 보니 온 가족이 지칠 대로 지쳤다. 또한 이미 마우이에서 짐을 쌀 때 여행을 마감하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에, 오하우에 대한 기대나 설렘도 많이 약해졌다.
일단 다들 너무 배가 고파서 식당부터 찾았다. 난 여행지에서 한국 식당을 가는 것을 정말 싫어하지만, 지친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려면 한식만 한 게 없었다. 그래서 와이키키 근처의 한식당을 찾아서 갔는데, 막상 도착하니 정말 여기서 먹어야 하나 회의감이 몰려왔다. 난 다른 옵션을 찾아보려 했으나, 배 고픈 걸 참지 못하는 와이프가 그냥 들어가자고 했다.
와이프가 80년대 독일에 있던 한국 식당 분위기라고 할 정도로 첫인상은 별로였다. 우린 별 기대 없이 된장찌개, 김치찌개, 갈비를 시켰는데, 애들은 하와이 온 이후 최고로 맛있게 먹어 치웠다. 그리고 한국 식당에 온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나조차 김치찌개에 오뎅 및 사라다 반찬을 싹 비워 놓고 있었다. 이렇게 여행 가서 한식을 만족스럽게 먹으며 아재가 되어 가나보다.
긴 하루를 보내고 저녁 7시 30분이 되어서야 호텔에 도착했다. 이 호텔은 진짜 이름이 외워지질 않았다. 그만큼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Embassy Suites by HILTON. 화려한 와이키키 중심가에 위치해 있었다. 우린 워낙 만족스러웠던 콘도에서 머물다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실망할 각오를 하고 왔는데, 우리 맘을 읽었는지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방을 업그레이드해줬다.
방 두 개에 더블베드만 3개인 큰 객실이었다. 물론 바다가 보이진 않았지만, 바다는 실컷 보고 왔으니 굳이 객실에서까지 바다가 안 보여도 전혀 상관없었다. 기대하지 않고 들어온 호텔이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러워, 축 처져있던 4인 가족 모두 활기가 되살아 났다. 그리고 호텔에선 콘도에서처럼 계속 요리, 설거지, 청소를 안 해도 된다는 당연한 사실도 떠올라 더 기분이 좋아졌다. 이 맛에 호텔도 오는 거지.
우린 짐을 대충 풀어놓고 호텔 앞을 산책했다. Waikiki beach walk라는 떠오르는 길이라고 하는데, 정말 화려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조용한 시골마을 마우이에 있다가 오니, 피톤치드는 다소 부족해도 대놓고 이렇게 화려한 장소도 나쁘지 않았다. 긴 산책을 원했으나 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ABC Store로 피신했다. 거기서 저녁 간식, 내일 도시락 및 간식을 샀다. 난 Original Cola와 Special 마운틴듀 두 개만 골랐을 뿐, 역시 맥주는 사지 않았다.
짐 풀고 내일을 준비하고 애들을 재우니 거의 12시였다. 내일은 지우가 가장 기다리는 하나우마베이 가는 날. 사실 지우만큼 나도 기대가 크다. 이 날을 위해 Red Sands Beach에서 스노클링 연습도 했고, 액션캠도 준비하지 않았던가. 다만 오하우조차 날씨가 별로라서 걱정이긴 했다. 하나우마베이는 일찍 가야 주차 공간이 있다고 하니,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서 조식을 먹고 7시 30분에 출발하기로 했다.
과연 우리가 그 시간에 일어날 수 있을까.
Good-bye 8일 차
https://brunch.co.kr/@boxerstyle/55
https://brunch.co.kr/@boxerstyle/56
https://brunch.co.kr/@boxerstyle/57
https://brunch.co.kr/@boxerstyle/58
https://brunch.co.kr/@boxerstyle/59
https://brunch.co.kr/@boxerstyle/60
https://brunch.co.kr/@boxerstyle/61
https://brunch.co.kr/@boxerstyle/62
https://brunch.co.kr/@boxerstyle/63
https://brunch.co.kr/@boxerstyle/64
https://brunch.co.kr/@boxerstyle/65
https://brunch.co.kr/@boxerstyle/66
https://brunch.co.kr/@boxerstyle/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