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하와이 : 마지막 날

2016. 10. 30 일요일

by 손창우


드디어 두 번째 하와이 마지막 날이 밝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초점이 맞지 않고 앞이 뿌옇게 보였다. 뭐지? 아, 마지막 날이라 눈물이 고인 거구나. 그만큼 슬픈 아침이 밝았다. 호텔 방구석에서 현실을 부정하기에는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오후 2시 45분 비행기라 눈물을 닦고 오전이라도 꽉 채워 써야 했다. 기상!


간밤에 지우 열이 39도까지 올랐고 아침에도 37~38도를 오르내렸지만, 잠에서 깬 지우는 다행히 씩씩했다. 저 정도 열이면 집에선 축 늘어졌을 거 같은데, 어제부터 체온과 상관없이 컨디션이 괜찮았다. 이것도 피톤치드 효과 덕분인가. 오늘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라고 하자, 지우는 할머니 빨리 보고 싶다고 즐거워했고, 지아는 싫다며 호텔에서 살자고 했다. 난 지아에게 한 표, 나도 여기 호텔에서 살고 싶다.


마지막 식사를 말라비틀어진 베이컨과 빵이 준비되어 있는 호텔 조식으로 때울 순 없었다. 우린 서둘러 짐을 모두 싸놓고, Westin Hotel로 향했다. 정확한 이름은 Westin Resort & Spa. 걸어갈 수도 있는 거리였지만 장시간 비행을 앞둔 지우 지아의 컨디션 및 짜증지수 관리를 위해 차를 타고 나섰다. 그리고 내가 비록 어젠 맥도널드와 푸드코트에서 끼니를 때웠지만, 마지막 식사만큼은 우아하게 호텔 발레파킹 서비스도 한 번 받아봐야지.


우리의 목적지는 Westin Resort & Spa의 'Moana Surfrider'였다. 이 곳은 지난번에도 마지막 브런치를 먹었던 곳으로, 지우가 맛있었다고 자주 언급하던 장소였다. 모든 메뉴가 다 훌륭했지만 이곳 망고 팬케이크는 양손의 엄지를 치켜세울만했다. 전문용어로 투 썸즈 업. 팬케이크를 좋아하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최고의 팬케이크 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에도 망고 팬케이크를 포함 브런치 메뉴 3개를 시켰다. 지난번에 우리 테이블의 서빙을 맡으셨던 할아버지도 옆 옆 테이블의 서빙을 여전히 보고 계셨다. 할아버지, 기억 못 하시겠지만 저희 또 왔습니다.



종이랑 크레파스 주는 식당만 다녀야 겠다.


일단 지아부터 먹이자.


지아는 밥, 국, 계란, 김치만 있으면 된다.


지아야 미안, 우린 푸짐하게 먹는다.


두 번째 하와이, 마지막 만찬



도란도란 앉아서 아침을 먹으며, 우리 가족만의 하와의 여행 루틴 하나를 정했다. 이제 하와이에 오면 무조건 첫 번째 식사는 'Heavenly', 그리고 마지막 식사는 이 곳 'Moana Surfrider'에서 하기로 했다. 이 두 곳은 제각기 다른 나, 지영, 지우, 지아 입맛의 교집합에 위치해 있어서, 제대로 된 우리 가족 취향저격 레스토랑이었다. 또한 가격도 합리적이고, 무엇보다 와이키키의 기운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여긴 눈을 감아도 하와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이 정도면 여행의 시작과 끝으로는 제격다.



1482711171371.jpg Good-bye, Moana Surfrider



식사를 끝내고 와이키키 해변에서 마지막 가족사진을 찍었다. 셀카봉을 놔두고 와서 한계는 있었지만, 비정상적으로 큰 머리의 소유자가 없는 우리 가족사진 정도는 복싱으로 늘어난 아빠의 팔로도 충분했다.



와이키키 해변에서 가족 사진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와이프를 길가에 내려줬다. 마지막 쇼핑에 불태울 시간까진 부족했지만 와이키키 메인 도로를 산책하며 선물 두 어 개를 살 수 있는 여유는 있었다. 그동안 난 호텔방으로 돌아와 짐을 차에 모두 실었다. 3박이었지만 조식 뷔페를 제외하고는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던 호텔과 작별인사를 할 시간.


잘 있어라, Halloween 해골아.


공항 가는 길에 Toys R Us에 들러서 지금 가지고 온 지아 카시트는 이제 작아졌으니 버려버리고, 디즈니 공주 카시트를 100불대에 하나 살까 생각도 했지만, 시간이 애매하여 바로 공항으로 직행했다. 지난번 여행에서 마지막 차 반납하는 장소와 공항 터미널을 제대로 찾지 못해 짐 잔뜩 짊어지고 아이들이랑 전력 질주하며 땀샘 폭발시켰던 경험 덕분에, 이번에는 시행착오 없이 한 방에 끝낼 수 있었다.



차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뒷짐지고 있는 지아



공항에 도착하여 5불짜리 유료 카트 두 개를 빼러 가는 길에, 구석에 버려져 있는 카트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이건 뭐지?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난 뜻밖의 행운 카테고리에선 최악의 플레이어인데, 공짜 카트 두 개가 내 시야에 들어오다니 순간 당황스러웠다. 입국할 때 공짜 카트 찾아본다고 공항 한 바퀴 돌았던 것이 불쌍했나 보다. 내 인생에서 극히 드문 10불짜리 TGIF 행운이었다. Thanks God! It's Free cart.


나와 와이프가 카트 하나씩 끌고, 지우는 지아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밀고, 여유롭게 공항 안으로 입장했다.


역시 Hawaiian Airline 수속 라인은 엄청나게 길었다. 비록 화장품 두 개를 포함 대규모 물품을 압수당했던 지난 비행이 옥의 티로 남아 있지만, 어느새 하와이 공항 전문가가 되어 있는 와이프가 아무도 없는 무인 check-in 기계 앞으로 가더니, 능숙하게 버튼을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화물 tag 5개까지 다 출력해서 수화물에 붙였다. 그리고 Information에 가서 스카치테이프를 빌려와 지아 카시트를 박스에 넣고 테이프로 돌돌 말았다. 이로써 Hawaiian Airline의 긴 수속 행렬을 뒤로하고 우리의 수속 준비는 끝.


면세점에서 양가 어른들 선물을 사고, Napa Valley 와인 한 병을 사는 것으로 두 번째 하와이에서의 모든 공식일정을 마쳤다.



마지막 면세점 쇼핑. 지아는 뭔가 삐져서 안들어오고 있다.


비행기 타러 가자


비행기 타기 직전 마지막 가족사진



돌아오는 비행기는 무난했다. 지우 지아가 적당히 잤고, 깨어있는 시간도 기내 만화에 집중했다. 지아는 미키마우스 만화를 보면서 조그만 귀에 이어폰이 들어가지 않아 한 손으로 이어폰을 계속 들고 있었지만, 짜증은 내지 않고 잘 버텨주었다. 이것이 디즈니의 힘인 듯.



각자 영화보며 라면 먹기



지우가 기습 질문으로 비행기가 어떻게 뜨는지 물었다. 그러게, 나도 아직 이 무거운 고철덩어리가 하늘을 어떻게 나는지, 배가 물 위에 어떻게 뜨는지 정확한 원리는 모른다. 사실 그것만 모르는 것이 아니다. 산을 통과하는 터널도 어떻게 설계해서 만드는지, 바다를 가로지르는 대교는 어떤 계산들을 통해 만드는지, 제2 롯데월드처럼 100층 이상 건물은 어떻게 건설되는지 잘 모른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이런 것들이 궁금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궁금해 미칠 지경은 아니었다. 그래서 문과에 갔다. 더 궁금하면 공대 나온 외삼촌한테 물어보자.



자고 있었는데, 지아가 창밖이 예쁘다며 날 깨웠다.



난 기내에서 영화 두 편을 보았다.


먼저 The Goonies. 영어로 제목을 써 놓으니 뭔가 신작스러우나, 1985년에 개봉했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전설적인 추억의 영화 ‘구니스’다. 내가 국제시장에서 정품 비디오테이프를 사 와서 필름 늘어날 때까지 본 영화가 두 개 있는데, 초등학교 땐 ‘구니스’, 중학교 땐 찰리 쉰 주연의 ‘메이저리그’였다. 그 시절 이후 30년 만에 이 영화를 봤다. 우리 집에서 친구들이랑 앉아서 귤을 까먹으며 영화를 본 게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무려 30년 전이라니.


인생 영화 중 하나인데 지금껏 제목이 왜 구니스인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찾아보니 'Goonies'는 폭력배라는 뜻이 있는데, 아이들이 주연이다 보니 좀 귀엽게 ‘악동들’ 정도의 뜻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 당시 얼마나 많이 봤던지, 30년 만에 다시 보는 영화인데도 장면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어린 시절 친구들을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지금 이 친구들이 어떻게 컸을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어른이 된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어색했다. 괜히 동심 파괴를 한 것 같아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한 시대를 호령한 구니스들답게 잘 성장해있다. 뚱뚱한 Chunk 캐릭터로 나오며 몸개그를 담당했던 아이는 무려 변호사가 되었고, 유일한 아시아계로 가제트처럼 다재다능했던 키호이콴은 무술감독이 되어 엑스맨 영화 제작에도 참여를 했었다. 다른 아역 배우들도 아직까지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다만, 얼굴이 무서울 만큼 일그러져 있고 가족들에게 왕따를 당하던 슈퍼맨 역할이었던 John Matuszak이란 배우는, 실제론 미식축구 선수였는데 진통제 처방 실수로 사망했다고 한다.


감독이 구니스 멤버들을 모두 모아서 구니스 속편을 만들겠다고 인터뷰도 했던데, 감독님의 나이가 83세고 아이들 모두 비주얼 평범한 아재가 되어 있어서 과연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구니스에 열광했던 당시의 아이들 중 하나로서, 우뢰매 수준의 영화로도 좋으니 다시 모인 구니스들을 꼭 보고 싶다.


두 번째 영화는 Chasing Mavericks였다.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재미없으면 당장 끊어버린다는 생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듣보잡 영화인 줄 알았는데, 주연 배우로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 왕으로 나온 제라드 버틀러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이 영화 뭐지?’하며 비스듬했던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이어폰도 기내 일회용에서 애플 이어폰으로 바꿔 꽂고 영화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두 시간을 빠져 들었다. Wow!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영화였다.


22세의 어린 나이로 몰디브에서 다이빙 사고로 목숨을 잃은 제이 모리아티라는 천재 서퍼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였다. 배경이 하와이가 아닌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 해변인 것만 빼면, Hawaiian Airline에서 꼭 봐야 하는 영화였다. 서핑을 주제로 한 다른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파도타기 장면들이 예술이었다. 서퍼가 되기 위한 연습 과정의 디테일도 살아 있어, 서핑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보면 피가 끓어오를 영화였다. 하와이까지 가서 얕은 바다에 둥둥 떠서 스노클링 하고, 어르신들처럼 스탠드업 패들링이나 해볼까 했던 내 심장에 불을 지폈다.


사실 난 어린 시절 빌어먹을 ‘죠스’ 영화를 본 이후 깊은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그래서 파도 앞에선 한없이 겸손해진다. 여전히 그런 두려움은 남아 있어, 파도가 세서 전 세계 서퍼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North Shore까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지만, 파도마저 착한 Waikiki에선 서핑을 제대로 한 번 배워보고 싶어 졌다.


이 글을 읽고 있을 와이프에게. 다음 여행에선 Hans Hedermann Surf School 같은 곳에서 3~5일 정도 Private Lesson을 꼭 받아보고 싶으니 재가 바랍니다. 참고로 많은 Surf School 중 Hans Hedermann을 택한 이유는, 이름이 가장 멋있어서임.


자, 이렇게 두 번째 하와이 여행이 끝이 났다.


우리 4인 가족 모두 몸 컨디션도 좋지 않고, 날씨도 별로였고, 섬 두 개를 옮겨 다니는 강행군 속에서 힘도 들었지만, 우리 가족 평생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을 하나 더 얻었구나. 화폐 따위로 물물 교환되지 않는 것이 여행의 추억이여라.


지영, 지우, 지아의 환하게 웃는 얼굴들을 다시 떠올리며

2016년 크리스마스날, 사랑하는 우리 가족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두 번째 하와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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