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 표현에 대하여
고양이가 또 벽지를 뜯어먹었다.
이 녀석, 늘 제 멋대로다.
나의 컨디션에 상관없이 새벽 4시면 일어나 야옹야옹 밥을 요구한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모른척해보지만 귓가에 매달려 머리카락을 물어뜯는다.
그래도 안 통하면 바스락바스락 비닐 뜯는 소리를 낸다. 이마저 안 먹히면 책상 위 물건을 하나 둘 떨어트린다. 자, 이제부터는 고양이와 나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다.
쫘작-.두꺼운 벽지를 뜯어내 우걱우걱 먹기 시작하면, 항복
나는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고양이의 요구를 들어준다.
지금까지는 녀석의 귀여운 저지레였다.
돌아보면 심장 떨리는 순간이 많았는 데 한 번은 싱크대 유리컵을 후려쳐서 박살을 내고 그 위로 점프했다. 당일에는 상처를 못 찾았건만, 다음 날 보니 뼈가 보이도록 살이 다 찢어져있어 허둥지둥 병원에 다녀와야 했다. 밤 새 다친 걸 꽁꽁 숨기고 표현 안 한거다.
정말 누가 널 이기겠니.
새벽마다 매 시간 일어나기도 하고 혼을 내기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설득은 먹히지 않았다. 다만 점점 강도를 높여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반복한다. 결국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훈련 잘 된 집사 생활을 하고 있다.(웃음)
존재의 드러냄.
무언갈 표현하는 목적은 하나다.
나 좀 봐달라고.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내가 여기 있다고.
그래서 우리는 말로, 표정으로, 몸짓으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영화로, 글로 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사람 관계에 있어서 표현이 서툰 편이라 집에 돌아와 밤새 이불 킥을 하는 일이 많았다.
'그 말만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 데'
'그때 내가 시원하게 욕 한 바가지 했어야 하는 데'
당시에는 될 대로 돼라 하거나 감정을 꾹꾹 참다가
집으로 돌아와 완연한 내가 되면, 그때서야 저 혼자 나에게 표현하는 것이다.
소심한 마음이 밤새 뒤집어진 꽃게처럼 버둥거린다.
이왕 이렇게 후회한다면 그냥 지르자!
정제되지 않은 물에 부유물을 걸러내 듯 지금의 기분을 뱉어냈다. 상대의 상처에 대한 염려보다는 일단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어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생각을 해서 말하기보다는,
생각이 나는 대로 표현했던 날이 많다.
그리고 그건 스스로 솔직한 거라고, 너희들이 왜 처음부터 이해해 주지 않았냐고 에둘러 나를 보호했다.
어쩌면 ,
나는 누군가에게 한 마리의 고양이가 아니었을까?
사랑이라는 감정을 앞세워 타인을 괴롭게 하는 새벽 네 시의 고양이.
사랑에는 표현이 필요하지만, 표현에도 사랑이 필요하다.
사랑은 분명 어딘가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어서 조금씩 속살을 보이기도 한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천천히 채워지는 마음들이 있다. 그러니 서툴다고 재촉하지 말자.
다만,
나 여기 있어요, 그러니 사랑해주세요.라고 부드럽게 표현해보자.
@클레멘타인
ㅍ. 표현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