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 확신에 대하여
길에서 아이는 울고 있고 엄마는 화난 얼굴로 아이를 혼내고 있었다.
"너 도대체 엄마가 왜 그럴 거라 생각해?"
"엄마는, 엄마는 안 해봤잖아!"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엄마에 대한 불신이었다. 아이의 기준에서 생각했을 때 무언가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결과를 낼 수 없다는 나름 논리(?)적인 대답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추론한다. 그중 계속 반복되는 일들은, 가령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온다는 사실과 한국에서는 봄이 가면 여름 , 가을 그리고 겨울이 차례로 오는 일은, 겪지 않아도 확신한다. 오랜 시간의 경험에서 오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서 경험이 꼭 정답은 아니다.
단순한 예로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봐도 그렇다.
완벽하게 자신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가. 누군가 50년 정도 살았으면 시간의 경험치에 의해 나에 대해 완벽히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 세상은 아무런 불안이나 의심 없이 자기 확신하는 사람으로 가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럴 수도 없다. 우리는 시시각각 계속 변화하고 때론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확신은 믿음에서 온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 경험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엄마는 자신을 믿어주는 아이를 기대하고 있지 않았을까?
연애를 할 때 나는 종종 확신의 문제에 빠졌다.
그때 날 가장 괴롭히던 건 '이대로 가면 평생 불행할지도 몰라.'라는 불안감이었다.
시작할 때는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을 느낄 때가 더 많았다. 그 짧은 경험 속에서도 나를 바라보는 상대의 눈빛을 보면 '아, 우리가 지금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고요하게 잠든 그의 얼굴,
좋아하는 음식을 급하게 먹는 모습,
초여름 밤 선선한 바람 속에 맞잡은 두 손.
그저 내 곁에 있어준다는 이유만으로도 모든 게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부분은 패이고 깎여 더 이상 꾸미지 못한 이야기들이 환부를 드러냈다.
내가 알고 있었거나, 내가 확신하고 있던 것들에 오류가 있을까 불안감이 들어 뭐든 서운해지고 자꾸만 눈물이 났다.
사람이 때로는 사랑이 변했다는
가시처럼 영악한 말들이 휴일 없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어쩌면 길에서 울고 있던 아이처럼 내 작은 경험만으로 상대방 마음에 확신의 잣대를 들이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에게 사랑은
시간의 경험이 쌓일수록 불안에게 진다. 그렇게 사랑의 유통 기한은 그 사람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확신의 오류에서 온다.
매일 새벽이 온다고 해도 그 날 하늘의 색이 다 다르듯, 아무리 오랜 시간을 살았다고 해도 내일 새벽의 색깔을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사랑은 오히려 색깔의 문제다.
확신은 질문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고 믿는 것이다.
생에서 단 한 번쯤, 단 한 명쯤은 질문이 필요하지 않은 그런 사람이 있어서, 당신이 불안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때, 당신은 그저 사랑만 생각했으면 좋겠다.
@클레멘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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