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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처가 나으면 백신이 된다.

회장님은 여자들은 왜 그렇게 사연이 많냐고 하셨다.

by 라떼마마

50명이 가까운 여성들과 한 공간에 머물렀다. 내가 생각하는 경상도 아주머니 특유의 '정' 보다는 드세고 거친 입담에 상처를 받는 일이 더 많았다. 마음에 안 들면 아무리 관리자라도 쪼르르 오너에게 달려가 냅다 고자질하거나 면전에서 험담을 하거나 삼삼오오 모여서 말들을 전했다. 아침마다 계란 삶는 포트를 씻어놓으라고 하는 지점장님도 계셨고 하루가 멀다 하고 전단지를 디자인해달라고 부탁하는 분들도 있었다. 상조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시면서 화장품 방문판매를 같이 하시는 분은 대놓고 카탈로그를 들고 와서 하나 좀 해봐. 하며 강매를 부추기기도 했다. 거침없는 분위기 가운데 무심하게 툭툭 정을 내는 분들도 계셨다. 예쁜 과일 도시락 혹은 무더운 날 아이스크림을 갖다 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다양한 삶이 있었다. 월급을 500만 원이 넘게 수당으로 받아가시는 분도 계셨고 30만 원을 받아가시는 분들도 있었다. 누가 봐도 고급진 차림에 고객과 골프를 치고 크루즈 여행을 다녀오시는 분도 있었지만 개인 파산으로 인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있었다.


평생 엄마가 집에서 살림을 하는 모습만을 보다가 이 곳에서 엄마와 비슷한 연령대의 분들이 SUV를 거침없이 몰며 나보다 더 높은 힐에 칼 같은 정장을 입고 탱글탱글 한 컬로 잔뜩 힘을 준 헤어스타일은 적잖게 문화충격이었다.


엄마의 나이에도
이런 모습으로 일을 할 수 있구나.



대부분 남편의 은퇴시기를 지난 분들이기 때문에 어디 가서 밥값을 선뜻 내겠다고 말할 수 없는 세대지만 몇몇 분들은 대기업 직장인의 월급을 수당으로 받아가셨다.


내가 말라꼬 일하겠노?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일하지!
오늘 남편이랑 대판 했다! 짜증 나서 이혼하자 캤다!!!


불합리한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당당하게 '이혼'을 입에 올릴수 있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경제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견해다. 많은 여성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나의 50대, 60대의 모습을 상상했다. 편안하고 안정적이기보다는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서 영업을 하시는 분들 위주였다. 출근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 분위기 때문에 사원들이 결근을 하면 연락을 해서 일일이 확인을 해야 했다. 신인등록을 갓 끝낸 40대 초반, 나와 6-7살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 사원 분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사람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볼 수 없다고 한다.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무슨 일이 있구나.' 여성들이 출근하지 않는 이유는 90% 이상이 가정사와 연결되어 있다. 몸이 아프다고 가시적인 이유를 이야기 하지만 묻고 묻고 또 묻다 보면 궁극적인 이유는 가정사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자세히 알 필요도 없었지만 일하는 여성들끼리 돕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다.


여사님, 지금 제 옆에 아무도 없으니까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괜찮으세요...?


대낮에 전화를 걸었을 때 여자 사원들이 우는 이유는 십중팔구 남편과의 관계 아니면 돈문제다. 혹은 그 둘은 종합 선물세트처럼 항상 같이 따라다녔다. 남편이 술만 마시면 굉장히 폭력적이라 거친 행동을 한다고 했다. 생활비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고민이고 정리가 되면 출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며 생활비를 주지 않는 배우자와의 삶이 녹록지 않았을 것 같았다. 한이 느껴졌다.


OO님, 우선 어디 아픈 곳은 없으세요? 병원은 다녀오셨어요? 가장 중요한 건 OO님과 아이들의 안전인 것 같아요. 남편분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저도 10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했는데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을 때가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힘든 마음이 올라오곤 해요.. 그런데 아이가 걱정스러워서 이렇게 살고 있어요. 그래도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까 오히려 걱정과 두려움이 저는 많이 줄었던 것 같거든요...


퇴근을 하고 밤에도 1시간가량 통화를 했다. 친분이 없어서 오히려 내가 안전한 사람이라고 느껴졌으리라. 우울함에서 그녀를 꺼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일을 통해서 극복을 했던 것처럼 사람들과 부대끼며 회장님의 호통치는 소리를 들으며 삶의 현장으로 걸어 나오길 바랐다.


문자가 왔다.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고 이틀 후에 출근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결국 출근하지 않았다. 우리 회사가 아니라도 괜찮으니 다른 곳이라도 마음을 붙이고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울음소리였지만 열 사람이 울고 있는 것 같았다.




50년생, 우리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의 영업사원이 아직도 시어머니를 모신다는 이야기를 했다. 실적이 한 달에 많이 해야 3건 정도라 사무실만 들어오면 위축이 된다고 하셨다. 본업도 있고 몇십 년 동안 90이 넘는 시어머니를 목욕탕이며 치과에 모시고 다니며 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회사에만 오면 늘 꼴찌 언저리를 맴도는 것 같아서 마음이 쫄린다고 하셨다. 아이를 키우고 이제 두 다리를 좀 뻗어 보려고 하면 부모님 혹은 시부모님을 보살펴 드려야 하는 세대. 여성들의 삶의 애환이 끝이 없었다. 대학원을 다니며 한 편의 아티클을 소개하신 교수님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일과 일이 아닌 일 사이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나의 커리어를 Out 하도록 만드는 것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2년 반을 여성 커리어를 전공하니 내겐 이곳에서의 경험이 더 크게 다가왔다.


82년생 김지영을 모티브로 '62년생 숙이'라는 주제로 강의안을 만들었다. 비록 모셔야 할 노모가 계시고 취업 못한 자식들을 뒷바라지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시간을 철벽같이 사수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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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가족들이 우리 시간을 헐값에 삽니다.
일관된 태도로 활동시간을 지키면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그날 우리는 하나 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이 구절은 읽을 때마다 저자의 말처럼 자존감이 10g 정도는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묘한 사명감도 생긴다.




나는 이 땅에서 최초로 지원받은 딸이다.
우리 할머니가 노예처럼 뿌린 땀 위에,
우리 어머니가 쌈닭처럼 고등어 값 깎은 뒤에,
제대로 배운 내가 탄생했으니,
나는 그렇게나 귀한 사람이니
내가 오늘 일어나 보람찬 하루를 보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 엄마의 20년(오소희) -



만약 나의 상처가 없었다면 나는 그녀의 울음소리에 반응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흐느껴 우는 침묵을 기다리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는 만큼 보인다. 연결된 가족으로부터 받은 아픔의 깊이와 무게를 알고 있기 때문에 내 눈과 귀가 더 빨리 반응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것. 손잡고 우리 같이 가자고 이야기라도 건네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이미 내 몸에 항체가 형성이 되었음을 의미했다.


몇몇 사람들은 나를 보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너는 힐러야.
사람들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어.


무조건적으로 나 자신을 사랑할 용기는 없지만 그럼에도 어제보다 쓸모 있어진 내 모습은 마음에 들었다. 출근율이 저조한 나날이 계속 되었다. 회장님은 무슨 사연들이 그렇게 많아서 출근을 안하냐고 다그치셨다. 이야기 하고 싶었다.




세상에 사연 하나 없는 사람 있나요?



<경력단절 엄마의 성장기록 에세이>


01화 살고싶으면 타이타닉호에서 내릴 것

02화 드라마 속 강단이보다 처절한 리얼리티버전

03화 합격입니다.

04화 여직원과 총무, 유니폼의 상관관계

05화 딸이란 엄마의 시간을 싼 값에 후려치는 사람

06화 엄마의 "고마 때리치아라"는 갑질

07화 회장님 '차' 준비와 코로나 무급휴직의 상관관계

08화 여행OP가 밥벌이를 지켜내는 방법

09화 오너의 눈에 밥 값 제대로 하는 직원

10화 샤넬가방은 써니를 지킬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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