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사진집
{EP23}
성수동에서 살면서 기록한 사진들입니다.
주로 새삼스럽게 일상을 발견하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즐겁게 감상해 주세요 :)
5월의 서울숲에서 만난 푸르른 우정. 저 두 분을 보자, 사람들로 북적이던 서울숲이 갑자기 모네의 정원이 되었다.
기저귀 차던 시절에 부모님과 잔디밭에 놀러 가서 찍은 사진이 있다. 그 순간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종종 찾아보는 사진이다. 나를 향한 그들의 사랑에 영혼이 충만해진다.
저 아이도 언젠가 앨범에서 이날 사진을 보고 웃겠지? 누군가 인생에서 아름다운 한 순간이 될 장면을 목격했다.
아이스크림할인점에서 바밤바를 사서 나오는데, 느닷없이 어떤 민소매 차림의 아저씨가 강아지를 들쳐 엎고 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혹시 강아지 학대하는 건가 싶어 빠른 걸음으로 좇아갔는데, 세상에, 너무 귀여운 푸들이었다.
푸들을 보고 무장해제된 우리는 나지막이 귀여워를 외쳤고, 험악할 거라고 예상했던 아저씨는 반달 웃음을 지으시면서 ‘이 아이 이름은 행복이 이며, 겁이 많아서 걷질 않으려고 해서 들고 가는 중’이라고 말씀하셨다.
아저씨에게 업혀 집에 가던 행복이를 본 일은, 올해 성수동에서 생긴 일 중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기억에 남는 일이다.
따릉이는 훌륭한 장보기 수단이다.
바구니가 터져라 장 본 것들을 넣고 달리면, 부자라도 된 것 같다.
가끔 우연히 사랑을 마주치기도 했다.
성수 구길 사거리에 있는 동물병원에는 터줏대감인 뚱냥이가 있다. 시츄 친구의 눈빛이 압권이다.
성수동에는 포동포동 살찐 길냥이가 많다. 나는 동네 길거리에 뚱냥이가 많냐 적냐, 일명 뚱냥이 지수로 해당 동네의 정서를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이다.
동물들을 챙기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별다른 이유 없이 자신보다 작은 생명을 무섭다고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은 아직 잘 이해할 수 없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 나는, 항상 가방에 츄르를 들고 다닌다.
시장에서 키우는 고양이.
바야흐로 대 츄르 시대, 아직도 직접 물고기를 잡아 삶을 유지하는 이 시대의 낭만고양이.
성수 구길 ‘언니커피’에서 키우는 고양이들. 가끔 길냥이도 보호하시는 것 같다.
어느 날 나비가 배가 불러오더니 네 마리 새끼를 낳았다. 처음에는 꼬물꼬물 손바닥만 하던 것들이 어느새 기특하게도 성인 고양이가 되었다.
아마 주민들 대부분이 오며 가며 고양이들 크는 걸 보며 육아하는 기분을 느꼈을 거다. 나도 그렇고.
서울 버스도 자세히 보면 알록달록 예쁘다. 탑승하는 목적(출근)이 불순해서 그렇지..
운이 좋다면 한강에서 윈드 서핑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닻마다 색이 달라서, 마치 한강에 무지개가 뜬 것 같다.
한강을 멋지게 찍는 방법.
확대하고,
흔들고,
찍는다.
그럼 마치 반 고흐의 유화처럼 물결들이 살아난다.
시간이 묻어있는 성수 1.jpg
이발관엔 왜 항상 회전 간판이 있을까.
시간이 묻어있는 성수 2.jpg
동신맨숀과 빨간 장미가 어울린다.
시간이 묻어있는 성수 3.jpg
슈퍼마켙이라는 표기가, 얼마나 오래된 슈퍼인지 말해준다. 성수동에 덕지덕지 묻은 시간들.
슈퍼에서 만난 귀여운 배려.
처음엔 수박 사면 방울토마토 서비스를 하나 주는 건가 싶었는데, 수박 부서질까 봐 넣은 거였다.
열무가 한단에 1,980원
식자재 마트에서 방송하시는 아저씨가 말씀을 하도 재밌게 하셔서 한단 샀다. 내 돈 주고 처음 산 열무였다. 주로 청경채, 양배추, 치커리 등 익숙하고 손질이 쉬운 야채를 주로 사 먹었다. 열무처럼 마치 김치라도 담가야 할 것 같은 비주얼이라 손이 잘 가지 않았는데, 너무 충동적으로 한단 사버렸다.
샀으니 먹어야겠는데, 생각보다 열무는 따가웠다. 잘 씻어서 거친 부분을 없애고 먹으니 야들야들하니 맛있었다. 청경채와 비슷한 맛이었다. 새로운 야채를 개척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무척 좋았다.
한강산책로로 진입하기 전, 터널에서 한강을 바라보면 묘하다. 회색 터널이 마치 프레임처럼 한강을 감싸서, 멋진 그림 한 폭을 보고 있는 듯하달까.
믿고 맡길 수 있을까? 양심카센터.
꽤나 도발적인 간판을 만나볼 수도 있다.
뭐니 뭐니 해도 한강은 해 질 녘.
오리보트는 태어나서 한 번도 안 타봤다. 볼 때마다 오리보트 타보고 싶다! 를 연발하지만, 정작 타 볼 용기는 없다. 살면서 미지의 영역 한 군데 정도 남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지도.
한강에 갈 때마다 반성한다. 러닝 하고, 자전거를 타면서 자신의 인생을 가꾸는 사람들을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반성한다.
그래서 잘 안 가게 된다. 하하.
한강을 자세히 보면 미니 보트 같은 게 달리고 있다.
이 모습이 마치 우리네 인생 같다. 겁나 크고 넓은 한강에서,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저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이. 우리 인생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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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날것이 모여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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