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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_뜻밖의 좋은 일

by 영진

70

사랑과 우정이 있는 한 삶을 고마운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가 힘들다. 사랑과 우정은

‘너 말고도 사람 많아!’라는 말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심지어 자기 스스로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버릴 지경인 세상에서−

대체 불가능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당신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정혜윤, 뜻밖의 좋은 일]



71

“우리는 우리일 때 최고일 수 있었다.”

“너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내가 아닐 거야.”

이런 순간 사랑과 우정은 가장 진실한 존재방식이다.

사랑과 우정에 다른 목적은 없다. 서로 친밀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 외에는.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뭘 더 바라겠는가?

[정혜윤, 뜻밖의 좋은 일]



72

우리는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종종 초인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인간이 되기 위해 인간을 견뎌야

한다. 삶은 상상만큼 빛나지 않는다.

이렇게 편안하지 않은 마음으로 노동을 하고

아침을 맞고 바쁘게 일상을 유지하고 살아내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할 때도 있다. 삶이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힘을 내는 인간들이 신비롭다.

[정혜윤, 뜻밖의 좋은 일]



73

이제는 안다. 말은 깊숙한 내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기준에 맞춰져 있기

마련이라서 내적 태도가 없는 말들은 공허할

뿐이라는 것을 안다. 질문이 없다면 대답도 없고

질문이 있다면 더 나은 대답은 가능하다는 것

또한 안다. 그리고 또 아는 것이 조금 더 있다.

내가 하는 말들이 공허할수록 내 삶도 그렇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정혜윤, 뜻밖의 좋은 일]



74

‘너 자신이 되어라’라는 말은 매사에 너 자신의

뜻과 주장을 관철하라는 말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고 자신의 운명에 잘 개입하는 법을

알아내는 것과 관련이 있다.

[정혜윤, 뜻밖의 좋은 일]



75

다른 사람이 비참하게 거리에 내몰리고 쫓겨나도

유지되어야 하는 원래 그런 세상은 없다.

장애물은 우리의 선택이 세우는 것이지 운명이

세우는 것이 아니다. 베토벤의 말을 따르자면,

아름다움을 위해서 파괴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혜윤, 뜻밖의 좋은 일]



76

세상에 슬픔이 너무 많아서 단 한번의 기쁨이라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단 한번만 기뻐도 하루 종일

기뻐할 수 있다. 덜 요구하고 더 기뻐할 수 있다.

기쁨은 희귀하므로 웃음과 기쁨을 줄 줄 아는 사람이

가장 관대하고 친절한 사람이다.

기쁨은 오래가는 감사의 마음과 관련이 있다.

[정혜윤, 뜻밖의 좋은 일]



77

나 역시 많은 사람들 덕분에 살아왔음을 깨달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좋은 면을

알아보게 되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어?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곤 했다. 사람들의 좋은

면을 알아보는 것은 좀더 나은 나를 찾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 더 나은

사람을 믿고 본보기로 삼고 살아보고 싶었다.

[정혜윤, 뜻밖의 좋은 일]



78

나의 선배 송경동 시인 덕분에 지옥 같은 세상에서

천국같이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인간의 온갖 시시함과 추함을 누구보다 더 잘

알면서도 인간의 다른 면, 드높고 깨끗한 면을

절대로 무시하지 않았다. 그는 악을 잘 알지만 깊게

순수했다. 그는 인간 삶에 드리워진 고통스러운 면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덜 고통스러운 상황을

만드는 데 온 힘을 다 썼고, 그 일을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생색도

짜증도 내지 않고 해냈다. 그 과정에 자신이

겪은 가난과 궁핍함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나는 그 덕분에 체호프가 단편 「굴」에서

한 말, ‘나는 그의 옷이 낡을수록 그를 더

사랑했다‘는 말을 직접 몸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나도 그의 옷이 낡을수록 그를 더 사랑했다.

그는 온갖 방법으로 적들을 귀찮게 했고 지치게

했지만 친구들에게는 한없는 관대함과 다정함을

보였다. 삶이 고통스러울수록 즐겁고 기쁘고

성스러운 순간을 세상에서 만들어내길 바랐다.

그런 순간을 함께 사는 누구나 가리지 않고

친구로 삼을 줄 알았다. 그렇게 얻은 친구들을

평생에 걸쳐 귀하게 여길 줄 알았다. 까뮈는

세상은 부조리하지만 부조리는 사랑할 대상을

준다고 했다. 그는 우리 각자에게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사랑할 만한 대상이 되어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주었고 그 자신이 먼저 사랑할

만한 사람의 삶을 살고 있다.



79

인생엔 사건도 많지만 평범함 또한 가득하다.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별일 없는

습관과 반복도 가득하다. 고상한 가치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익숙한 애정의 몸짓과 농담과

말장난도 필요하다. 작은 미덕을 더 크게

키울 수 있는 것도 일상이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일이 좋게도 나쁘게도 되는 것 또한

일상이다.

[정혜윤, 뜻밖의 좋은 일]



80

일상에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는 수천가지 ‘사소한’

골칫거리와 수천가지 ‘사소한’ 해법이 많은 ‘사소한’

기쁨들이 모여 있다. 삶의 본질은 사소한 사건들에서

더 잘 드러나고, 우리 인생의 어떤 순간이 특별한

이유, 어느 평범한 날이 빛나는 날로 바뀌는 것,

진실한 마음으로 사소하게라도 뭔가를 변화시켜서이다.

[정혜윤, 뜻밖의 좋은 일]



81

무엇인가를 가까이 둔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멀리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뭔가를 하고 있다면 다른 것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무관심도 힘이고 무엇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힘이다. 어떤 때는 남들의 말을

듣지 않아야 자기 삶을 살 수 있다. 자기창조는

무엇을 가까이 두는 것과 가까이 두지 않으려 하는

힘 사이의 긴장관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정혜윤, 뜻밖의 좋은 일]



82

우리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자신을

맞춰가면서 자신을 창조한다. 어떤 것도 다른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아무것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때부터 권태와 추락은 시작된다.

그때 우리 마음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머무를 수

없다. 반대로 무엇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온갖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지켜낸다면 우리 마음은

현재와 미래에 동시에 머무를 수 있다.

[정혜윤, 뜻밖의 좋은 일]



2024.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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