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키스트 던전 사태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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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외국어 공부에 좋은 드라마 : 결혼으로 배우는 일본어
원래 나갔어야 할 글은 '오역가가 왜 철밥통을 찰 수 있는가'에 대한 글이었는데 마침 왜 좋은 번역을 제공해야 돈이 되는지에 대한 적절한 예가 나와서 이에 관해서 다뤄볼까 한다.
바로 게임계를 뜨겁게 달구는 다키스트 던전 한글화 사태이다.
다키스트 던전은 던전을 탐험하는 게임으로 인상적인 그래픽, 훌륭한 사운드 미칠듯한 난이도와 개성 있는 게임성으로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린 게임이다. 저자도 게이머인 데다가 이 게임을 아주 좋아한다.
아시아지역에도 팬이 많다는 것을 알았는지 게임이 발매되기도 전 2015년에 한국지역 현지화가 발표되었지만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게임이 안정적으로 서비스된 2017년 다시 한글화 발표가 나왔고 햇수로 2년 뒤 게임이 발매되었지만 문제는 그 결과물이 상당히 처참했다는 데 있다.
참고로 원문의 번역은 Ruin has come to our Family (재앙이 우리 가족을 덮쳐왔다).
이 외에도 다채로운 오역으로 플레이어의 혼을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볼드체가 오역 부분)
토끼사육장 : Warrens, 게임 내에선 수인 종족인 스와인들도 사용한다. 그들은 토끼가 아니다.
놀랐어요! : Surprised 기습, 게임상에서 기습당할 때 뜨는 경고문.
말싸움 : Quarrel 해골, 석궁수의 쇠뇌 사격.
수신자 부담 : Collect call 수집품.
등으로 게임을 즐기기가 어려울 정도로 엉망진창인 번역이 나와버렸고
이 게임의 번역은 게임의 원문을 살리거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는 점을 벗어나서
소비자가 두 번 생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번역의 철칙조차 어겼다.
아예 두 번 번역이 아니라. 추리를 해야 이런 번역이 왜 나왔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대체 왜 이런 번역이 돈을 주고 구매한 소비자들에게 전달되게 된 것인가?
한국은 유저 번역이 굉장히 활발한 나라다. 우선 어학에 능한 사람들이 많아서 다른 나라에선 대기업에서 외국어 문서 번역할 사람 하나 찾기도 힘든 판에 한국에선 동시 통번역까지 가능한 사람들이 제법 되기도 한다. 이런 현황에서 유저 번역이라고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을 번역하는 사람들이 태어났고, 개중에는 이렇게 번역을 해서 업체에게 제안을 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는 아예 번역회사를 차린 번역유저팀인 '팀 왈도'는 처음에 이 번역을 무상으로 제공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어느 개발사든 자신의 게임을 멋대로 뜯어서 한글화 한 업체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갖기 마련이며 이건 당연하다.
결국 이 회사는 이 유저 번역 회사와 몇 번 접촉을 하려다가 아예 무시하는 길을 택하고 정식 번역업체를 찾은 모양이다. 문제는 이 과정 자체가 아주 비상식적이었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번역 의뢰를 한 중국 업체에게 넘긴 것이다.
저자가 추정하건대 이유인 즉 회사가 한국어 번역을 취급하고 단가가 싸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다키스트 던전의 워드(영어 번역 측정 단위)는 총 10만 워드. 한국통번역진흥원의 기준으로 측정하면 한화로 44,520,000 (참고 링크) 약 사천 오백만 원 정도의 돈이 들어간다. 물론 게임 번역계에선 이 기준대로 돈을 주지 않는다.
중국 업체의 경우 제안 올 때의 경우도 그렇고 영업하는 것도 그렇고, 인건비가 싼 나라임을 자랑이라도 하듯 저가경쟁, 저가 제안이 많다. 아마 저 가격의 반 이하로 받았을 수도 있고 제작사는 돈을 아끼려고 중국에 넘겼을 것이다.
그리고 이 회사는 파트너 협약을 맺은 러시아 번역업체에 이를 넘겼고, 이 러시아 회사는 결국 이를 한국의 모 회사에게 하청을 주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원래 글로벌 기업은 국내 회사와 잘 진행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한국지역에 안정된 형태의 지사가 있지 않는 한 현지에서 의뢰하기 쉽고, 보안 등의 계약을 관리하기 쉬운 현지 업체와 관리한다. 그래서 해외회사가 한국의 회사에 하청을 주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 해외사가 맡긴 한국업체의 실력, 능력 그리고 상도덕이었다. 이 업체는 1/2는 스스로 진행하고 1/2는 프리랜서 번역사에게 외주를 맡긴 모양이다.
발번역으로 제작사가 곤혹스러워하고 소비자가 분노하자 번역회사는 이것은 외주를 준 번역사의 책임이며 자신들의 책임은 아니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이건 거짓말이었다. 이에 화가 난 (아니 그 이전에 커리어에 금이 가게 된) 번역사가 반박문을 올려서 이는 원청 번역사가 직접 진행한 것이 문제임을 주장했다. (반박문)
결국 자신의 잘못임이 명백히 드러나자 번역회사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의 홍보채널을 모두 폐쇄하고 잠적한 상태다. 아마 폐업 후 재 창업을 통해 다시 일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이 사태에는 번역 업계의 총체적인 문제는 물론 기업이 번역을 다루는 나쁜 태도 그리고 소비자를 다루는 악습까지 여실히 묻어나고 있다.
우선 제작사인 레드훅 스튜디오는 한글화 발표 후 유저들의 문의를 무시했다는 점, 한글 테스터가 한글 번역이 이상하다고 몇 번이나 경고했음에도 '그만 좀 하라'고 묵살한 정황이 드러났다. 일부 개발사들이 퍼블리서에 주로 납품을 하는지라 게임 비즈니스는 B2C가 아니라 B2B, 즉 소비자가 아닌 기업 대상이라 소비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투로 움직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 회사도 이런 회사임이 드러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정관리도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번역회사가 일부를 재하청 준 이유는 제작사인 레드훅 스튜디오가 제시한 일정이 맞지 않거나, 단가가 너무 낮아서 번역사를 찾느라 시간이 걸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회사는 구글 번역으로 일을 처리했는데 일정이 여유가 있었으면 구글 번역으로 처리하면 되니 굳이 하청을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소득세 및 기타 개인 사정 등의 변수는 무시하자).
번역회사의 책임도 크다. 많은 유저들은 이 번역이 구글 번역 중역일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정작 Ruin has come to our family를 영어 - 한국어로 돌리면
굳이 번거로운 일을 해서 오역을 만든 셈이다.
이런 번거로운 과정은 번역에 익숙한 사람들이기에 일어났을 것이다. 구글의 번역 DB는 주로 사용되는 번역 쪽으로 굳는다. 한 예로 의료 번역을 할 때 의약품의 경우 영한 번역을 해도 되지만 그것보다는 영어를 일어로 번역한 후 그 일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해당 제품이 영어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수요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게임이나 만화의 경우 희한하게도 일본어를 한국어로 바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중국어로 번역한 후 중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이 결과가 좋다. 아마 중국에서 일본의 만화, 게임을 번역하는 수요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그걸 아니까 여러 언어로 중역할 생각을 했을 것이다.
문제는 번역회사가 리뷰를 제대로 안 했다는 것이다. 낮은 비용 때문인지 일정이 짧아서인지 아니면 실력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저런 결과물을 낸다는, 프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실수를 했다.
결국 제작사는 전면 백기를 들었다. 이유인즉슨
예전에는 게임은 물론 영화, 만화에서 오역이 나와도 그렇게 매출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오역 투성이 콘텐츠의 PM이 '그래도 우리 회사 것이 제일 잘 팔린다'라고 아예 언론 인터뷰에서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영화에서 번역사의 이름을 숨겨도 집단 지성은 기존의 번역물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찾아 그 번역가가 누구인지 밝혀낸다. 실제로 어벤저스 3에서 번역가는 이름을 싣지 않았지만 관객들은 번역가가 누구인지 정확히 찾아냈다.
만화책은 아무리 번역사를 띠지로 가리고 뭔 수를 써도 피해자가 SNS에 올리면 바로 확산되어서 불매운동으로 퍼져나간다. 게임 쪽은 어떠냐고?
촛불집회를 봐서 알겠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부정과 비리에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그 추운 날에 집회 나가는 것도 감수하는데 저렇게 평가할 수 있는 수단에 최하점을 주는 것이 대수랴.
아무리 한국지역의 소비자만 저렇게 최하점을 줘도 저 평가는 다른 나라, 다른 언어권의 유저도 같이 공유하며 이후 소비자의 구매에 영향을 준다. 저런 사태를 놔뒀다가 매출에 악영향이 드러나자 결국 제작사는 백기를 들었다.
이제는 번역에 대한 평가가 매출에 영향을 주는 시대가 되었다. 한국에서 난 난리가 전 세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가. 세계인이 보는 리뷰사이트에 한국 사람 가입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즉, 콘텐츠사도 번역회사도 그리고 번역가도 좋은 번역을 제공하는 방법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구글트렌드를 보면 알겠지만 분명히 오역에 대한 피로감에 젖은 검색어의 빈도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비록 매출에 영향을 주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부정평가는 확실히 늘어나고 있으며 구글트렌드가 마케팅에 주는 영향을 생각하면 '퀄리티고 나발이고 번역은 해주면 감지덕지 아닌가'하는 마인드는 이제 지양할 때가 왔다고 본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이유는 다음에 이어질 글을 읽어보시면 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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