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net Family in Their Garden at Argenteuil, 1874
피를 나눈 가족 중심으로 협력은 진화했습니다. 한데 어느 날 타인을 기꺼이 돕는 현상이 발생했는데, 점차 협력의 규모가 커진겁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인간의 인지 능력이 사회적 인지 능력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하고, 기부는 그중 가장 대표적인 협력 행위입니다. ‘공감’과 ‘온정 효과’로도 설명이 가능하고(근접 설명), ’평판 이익’을 염두에 둔 진화한 인간 행위라는 주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궁극설명).
이 두 맥락을 아우른 것이 로버트 트리버스가 주창한 '호혜주의'입니다. 가족을 뛰어넘는 협력의 대원칙을 드디어 발견한 것입니다. '받는 만큼 갚으라!'라는 이 간단한 말 한마디가 협력을 끌어내는 상식이 된 것입니다.
한데 호혜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예를 들어, 음식점 계산대 앞에서 밥 값을 서로 내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번에는 내가 낼게!라는 말소리도 들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시쳇말로 1/N 앱을 쓰는 무리도 있으니까요.
"지난번에는 내가 얻어먹었으니 이번에는 내가 낼게!" 이 말은 분명 호혜주의입니다. 1/N 앱을 쓴 것 역시 협력의 합리적인 모습입니다. 하지만, 서로 밥 값을 내겠다고 아옹다옹하는 이 현상은 뭘까요? 심지어 밥 값을 낸 사람은 이전에도 몇 차례 값을 치른 적도 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밥 값을 낸 친구에게 ’잘 먹었다!‘라는 인사를 할 뿐 ’다음에는 내가 꼭 낼게!'라는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정말 다음에 밥 값을 낼지도 알 수 없습니다. 사정이 어떻든 어깨동무를 한 둘은 행복해 보입니다. 이 두 사람의 우정을 호혜주의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설명할 방법은 없을까요?
Boating, 1874
니컬라 라이하니 런던 대학교 진화 생물학과 교수는 이를 ’상호의존‘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를테면 상대방의 존재 그 자체가 내게 이익이 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두 사람이 노를 젓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 배의 바닥 틈으로 물이 스며들고 있었죠.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물이 고이면 퍼내거나 노를 뭣 빠지게 저어 무인도일지라도 육지에 도착을 하는 일입니다. 둘은 이 상황에서 서로를 의지하는 관계인 것입니다. 즉, 상대방의 존재가 내 목숨과 관련 있기 때문이죠. 상대방이 없으면 나 홀로 노를 젓다가 점점 가라앉는 배와 운명을 같이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초콜릿 바 한 개를 갖고 있다면 상대방과 기꺼이 나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육지를 코앞에 두고 배가 가라앉았고, 헤엄을 쳐야 할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상어 무리가 많은 곳을 지나야 한다면, 혼자일 때 보다 상대가 있음으로 해서 내가 살 확률이 적어도 50%는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또한 나는 이익입니다.
상호의존 관계는 이렇게 나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는 상대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이 상호 의존 관계가 호혜주의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니컬라 교수의 주장입니다. 케냐의 마사이 부족은 호혜주의와 상호 의존을 모두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실레 esile는 우리 말로 '빚'이란 뜻입니다. 서로 돕지만 이런 도움은 나중에 갚아야 할 채무라는 것인데요. 반면에 오소투아 osotua 즉, '탯줄'은 우리 말로 치면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기꺼이 돕는 것을 말합니다.
즉, 먹을거리가 언제 생길지 모르고 위험 또한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확실한 환경에서 이들 마사이 부족은 서로서로 마음을 의지하는 것이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지표로 진화한 흔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산업 발전이 덜 된 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협력 방식이고 생존 방식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