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하나의 세계였지만, 어느 순간 굿즈가 되었다. 부정적인 의미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책을 굿즈로 소비한다. 굿즈를 번역하자면, 소장품이다.
책 한권으로 소장 가치를 충분히 확보한 경우도 있다. 책 표지가 어떻든 출판사가 어디든 상관없이 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작품, 그런 책은 예외다. 일반적으로는 세트로 구성해야 소장 욕구를 자극한다. 인테리어 소품이 되는 거다.
전집
우리가 알고 있는 세트는 대부분 고전이다. 을유, 민음사, 열린책들, 문학동네 등이 유명하다. 을유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세계문학전집을 만들었다. 민음사 전집은 길어서 손에 잡기 편하다. 번역 논란이 종종 있다. 러시아 문학과 SF가 많은 열린책들 전집은 화려한 표지를 자랑한다. 리커버를 자주 하는 문학동네 전집은 후발주자인만큼 20세기 작품이 많이 포함된다. 소설가가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팽귄클래식은 비소설 인문학도 전집에 포함한다. 소설 뒤에는 방대한 해설이 실린다. 덕후들은 주로 을유와 문학동네에 좋은 점수를 주는 것 같으나, 대중적인 인기는 민음사가 압도적이다. 이유가 뭘까. 마케팅의 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 책장에 꽂아놓을 때 민음사 전집이 가장 그럴듯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역시 책은 인테리어라는 생각이 더 확고해진다. 내 마음대로 가정하고 마음에 드는 예시만 보면서 확신을 강화하는 건, 오래된 내 습관이다.
나는 고전은 읽지 않는다. 재미가 없다. 오래된 작품인 만큼, 당대에는 공감가는 이야기였겠지만, 지금은 아무런 울림을 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이건 내가 억지로 지어낸 핑계고, 담백하게 말하자면, 지루해서 읽지 않는 거다. 책을 고를 때도, 가능하면 죽은 저자의 책은 고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죽었지만 좋아하는 작가는 다자이 오사무가 유일하다.
서재
그러면 우리집 인테리어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으로 책장을 꾸미기에는 서재가 너무 크다. 물론 실제 서재는 아주 좁고 아늑하다. 내가 과시하고 싶은 부분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건, 오래된 내 습관이다.
활어회만 고집하는 한국인처럼, 팔딱팔딱 살아숨쉬는 생존 작가의 책만 고집하는 나를 위해, 민음사에서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내고 있다. 역시 민음사다. 정갈하게 만든 책등과 현대적인 느낌의 표지를 보면, 까막눈도 소장 욕구가 생길 정도다. 양장본인데 촉감도 고급스럽다.
그래서 사들였다.
소장 가치도 있고, 인터리어 역할도 충분히 수행하는데다, 내용도 재미있다. 첫 책은 「한국이 싫어서」였고,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거의 모든 거짓말」이다. 앞으로도 한국 문학은 오로지 이 시리즈로만 소비할 예정이다. 아무리 내용이 좋다고 해도 「오늘의 젊은 작가」에 나온 게 아니면 소장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좋아하는 출판사2 : 오늘의 젊은 작가
최근에 읽은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와 독후감
_전석순 「거의 모든 거짓말」
★★★★★ 현대소설이 역시 좋다. 단어 하나하나에서 작가가 원하는 뉘앙스가 그대로 전달되어 온다. 마치 거짓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