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효진 Jul 03. 2017

4.3. 일하지 않는 기간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까?

4.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기 위한 지침

공원의 오후 © 남효진

일을 하지 않는 기간은 일을 다시 시작하기 전 잠시 머무르는 임시의 시간이 아니다. 새로운 일을 찾고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간은 일과 상관없이 행복하게 살고 싶고 즐기고 싶은 평범한 날들이기도 하다. 일하지 않아 불안할 수도 있지만, 일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기대하고 싶은 시간이다. 그러나 독일의 과학 저널리스트 울리히 슈나벨 Ulrich Schnabel은 그의 책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에서 많은 사람들이 “여가 시간 중 많은 부분을 쉬지도 못하고 행복감을 키울 수도 없는 일에 매달린다”고 지적하며, “휴식을 누리는 기술은 자유 시간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에 달린 게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고 말한다.


불확실한 시간을 살며 즐거움을 찾기란 쉽지 않다. 리서치를 통해 만난 사람들은 진로로 고민하던 시기에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하고 즐기지 못했음을 아쉬워했다. 되돌아보면 즐기고 경험하기에 좋았을 시기인데, 그 시간을 사는 당시에는 알면서도 그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다양한 경험을 하는 일이 진로를 위한 고민과 별개로 또 하나의 계획이 되고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불확실하기에 새로운 일들을 시도해볼 수 있고, 가보지 않은 길이 줄 수 있는 가능성은 그 길을 가본 후에만 알 수 있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이전에 하루하루를 사는 과정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일상생활을 통해 얻는 만족감은 긴 과도기를 버티고 이뤄내는 힘이 되어 준다. 날마다 이어지는 평범한 시간이 흥미진진한 시간이 되고 특별한 과정이 될 수 있도록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하면 일을 쉬는 시간이 ‘빈’ 시간이 아니라 ‘가득 찬’ 시간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일을 쉬는 시간이 ‘멈춰있는’ 시간이 아니라 ‘계속 걸어가는’ 시간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신 있게 일을 쉬는 기간을 위한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일을 쉬는 기간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새롭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일을 쉬는 기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자신만의 프로젝트로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일을 쉬는 시간에 당당해지고 즐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일을 쉬는 사람을 가치 있는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좋은 하루’를 보내기 위해 필요한 계획을 준비하고 실행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일을 쉬는 동안 해온 일을 증명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해, 일을 쉬는 시간에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삶을 살기 위한 행동지침과 아이디어를 만들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일상을 다시 만들고 긴 시간을 계획하면서, 살고 싶은 삶의 방식을 회복하고 자신의 넓이와 깊이를 더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고자 했다.


지침 1. 하루의 시간을 운영하는 규칙과 틀 만들기


어니 젤린스키 Ernie J. Zelinski는 그의 책 <일하지 않아도 좋아>에서 “직장이라는 사회적 공간은 자연스럽게 생활의 틀을 제공하는데, 직장을 그만두면 행동을 잡아주는 틀이 사라지고 이로써 우리는 방황하게 된다”고 말한다. 장기간의 휴가를 가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지적이다. 출퇴근이 없어지면 일정하게 돌아가던 삶의 리듬이 같이 없어진다. 직장에 소속되지 않고 규칙적인 일정이 없고 꼭 해야만 하는 일도 없을 때, 시간은 이전보다 천천히 흐르고 규칙과 틀이 사라진 생활에서 사람들은 곧 무력감을 느낀다. 해외 이주의 경우, 새로운 도시의 집에 도착해 짐을 풀고 장을 보고 주변 환경을 탐색하는 초기의 시간은 바쁘다. 그러나 정착을 위해 바쁘게 보낸 시간 뒤에 마주하는 텅 빈 하루에는 규칙과 틀은 물론 자신이 열정적으로 움직일 일정도 없다. 빈 시간이 많으면 고립되기 쉽고 삶의 내용도 희미해진다.


어니 젤린스키는 일하지 않는 시간을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규칙과 틀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휴식을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시간이 생겨도 삶의 질은 높아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자신의 일상에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규칙과 틀을 만들어야 한다. 매일매일과 일주일의 시간을 어떻게 운영할지 구조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중에는 ‘영어수업 → 운동 → 공부와 독서 → 산책’과 같이 하루를 구성하는 활동의 틀을 만들 수 있다.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움직이면서 자신만의 시간도 갖는 또 다른 틀을 만들 수 있다. 하루의 균형을 잡아주는 틀을 만들고 규칙을 정하면, 그 안에서 안정감을 찾을 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이어갈 수 있다.


지침 2.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추진하기


울리히 슈나벨은 행복을 가꾸고 자유 시간을 즐기기 위해 ‘일’과 같이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역설적이게도 행복을 가꾸는 일은 여가시간보다 일을 할 때 더 하기 쉽다. 거의 모든 일은 ‘몰입’의 전형적인 특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설정한 목표, 중간중간 확인하는 적절한 성과, 규칙에 충실한 도전은 처리해야 하는 과제에 온전히 집중하게 만든다. 반대로 자유 시간은 어떤 정리된 형태로 주어지는 게 아닌 탓에 스스로 꾸미기가 훨씬 어렵다. 그래서 어서 근무를 마치고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으면서도, 정작 집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원한다면, 무엇을 경험하고 싶고 이를 어떻게 시도할지 자세하게 계획하고 추진해야 한다. 혼자가 아니라 배우자와 함께 있어 자신만을 위한 계획에 주저하거나 소극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함께 하는 주말을 특별하게 보내기 위한 계획만큼, 혼자 있는 주중에 자신을 바쁘고 즐겁게 하기 위한 '나를 위한 계획'도 필요하다.


지침 3. 이 시간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결과물 만들기


일을 떠나 지낸 시간이 자신에게 어떤 배움과 가치를 주었는지 본인 외에 다른 사람들은 알기 어렵다. 싱가포르 출신의 디자이너 친구가 말했다. “사람들은 우리 같은 유학생 와이프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몰라.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이 시간을 살며 세운 목표들이 구체적인 결과물로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있으면 좋을 텐데..”


디자이너들은 결과물을 만들고 차곡차곡 쌓는 일에 능숙하다. ‘디자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프로젝트들에는 ‘결과물’이 나온다. 시각적으로 완성되어 쌓인 결과물들은 한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가 되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의 발자국이자 다음 길을 열어가는 열쇠가 된다. 꼭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자신이 걸어온 시간을 보여주는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다. 일에서 떠나 있던 시간을 통해 배우고 얻은 특별한 결과와 그 과정을 보기 좋게 정리해두면, 다른 사람들이 증명해줄 수 없는 혼자만의 시간을 자신만 알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서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설명해줄 수 있다.   


조지아텍에서는 해외에서 온 학생들의 배우자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배우자 모임 Spouse Group을 운영한다. 1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강의를 듣기도 하고 크리스마스나 할로윈 같은 행사에 앞서 다양한 장식품들을 같이 만들기도 한다. 배우자 모임에 참석하는 절대다수가 와이프들인데, 이들은 출신국만큼이나 직업 또한 다양하다. 그러나 많은 수가 신분의 한계로 인해 미국에서 직업을 이어가지 못한다. 이들 중 3명의 배우자들이 작년부터 의기투합해 'Potluck of Cultures'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미국에서 배우자 Spouse라는 신분으로 살고 있던 '인도에서 온 사진가', '브라질에서 온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네덜란드에서 온 교사' 이렇게 3명이 Spouse Group 사람들의 사진과 이야기를 기록해 페이스북 앨범에 공유했다. 이들의 의도는 세계 곳곳으로부터 남편을 따라 배우자 Spouse라는 이름으로 조지아텍에 와있는 사람들의 본래의 다채롭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3명이 뜻을 모아 일을 추진하면서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이 만들어졌다. 이들 외에도, 미국에 사는 동안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주제로 여행을 하며 여행기를 만든 친구도 있고, 프로젝트를 만들어 글을 쓰는 나와 같은 사람도 있다. 자신의 직업과 연결된 일이든 이전에 해보지 못한 새로운 도전이든, 기록된 과정과 수집된 결과물은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추가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조각이 될 수 있다.


일하지 않는 기간 동안 잘 살기 위한 아이디어

1. 하고 싶은 일들을 시도하는 나만의 모험

나만의 모험 예 © 남효진

주어진 시간과 우선순위에 따라 구체적으로 계획을 준비해야 그 일들을 추진하며 몰입할 수 있다. 내가 이 시간에 경험하고 싶은 것, 시도하고 싶은 일, 배우고 싶은 것, 방문해보고 싶은 곳 등을 버킷리스트처럼 모으고 주제 별로 나누어 나를 위한 모험을 계획할 수 있다. 가능한 시기 별로 구체적인 계획을 준비하고 프로젝트처럼 멋진 이름도 덧붙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남부에 사는 사람은 음악이나 음식과 같은 주제를 잡아 시간이 날 때마다 남부 도시들을 여행하며 자신의 주제에 맞는 장소들을 방문해 독특한 여행기를 만들 수 있다. 그림 실력을 키우고 싶은 사람은 특정 기간 동안 그림에 집중하는 기간을 정해 자신만을 위한 특별훈련 프로그램을 추진할 수 있다.   


일하지 않는 기간 동안 잘 살기 위한 아이디어

2. 일하지 않는 기간을 위한 내 타이틀과 소개말


소속과 상관없이 자신에게 붙일 수 있는 타이틀과 소개말 예 © 남효진

새로운 사람과 인사를 하는 경우, 우리는 짧은 시간에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 하고 있는 일과 분야, 관심사, 취미 등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이런 정보를 통해 그 사람의 세계와 삶에 대한 이해를 시작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자신에 대해 보여주지 않는 사람, 밝히기를 꺼려하는 사람과는 대화를 이어가기 어렵다. 그런데 해외에 있으면서 직업이 없는 경우, 면허 등을 이유로 한국에서의 직업을 당장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 자신을 소개할 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애써 자신을 소개하고 싶지 않거나,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일 수 있다. 소속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 부담이 되기도 한다. 회사에서의 역할이 자신의 분야와 직업을 정의했던 경우, 더 이상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의 자신의 일은 모호하다. 이전 회사에서의 직업, 현재의 내 역할, 미래의 계획 중 어느 것이 나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지 확신이 서지 않을 수도 있다.


회사에 고용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지에 대해 Linkedin에 여러 조언들이 있는 것을 보면, 회사가 나에게 직책을 주지 않을 때 나를 어떻게 표현할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민거리인 것 같다. Linkedin에 나온 조언들에 따르면, 지금 당장 구직 중이라면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와 자신이 원하는 다음의 역할’로 자신을 소개할 수 있고, 자신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일, 참여하고 있는 활동으로도 자신을 소개할 수 있다. 또 글쓰기 코치 송숙희 씨는 그녀의 책 <인포프래너>에서 “당신이 가장 잘할 수 있고 당신이 누구보다 돋보이는" 영역을 찾아 자신만의 컨셉을 새로 만들라고 조언한다. 과도기에 있는 만큼,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타이틀은 계속 진화할 것이다. 그렇지만, 자기가 서있는 영역과 자신이 만들어 가고 있는 역할의 컨셉을 정리된 단어로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명확해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해 소개할 때 주저하지 않아도 된다.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는 참고서' 목차 및 이전 글 보기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는 참고서' 소개
1. 배경

    1.1. 우리 안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

    1.2. 기대와 다른 현실

    1.3. 이상한 나라를 만드는 요인들
2. 다양한 경로와 이슈들

    2.1. 새로운 진로를 찾는 거대한 고민

    2.2. 현재 직장과 새로운 가능성 사이에서 고민과 저울질

    2.3. 나의 일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격동기

    2.4. 정해진 계획 안에서 살며 여유를 즐기는 시간

    2.5. 육아에 집중하며 향후 진로의 방향성 고민

3. 11명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들에게서 찾은 인사이트

    3.1. 준비와 실행

        3.1.1.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결심

        3.1.2. 좋은 하루를 위한 노력

    3.2. 진로

        3.2.1. 진로 재설정        

        3.2.2. 진로에 대한 불안

        3.2.3. 해외에서의 신분, 면허, 언어의 제한

        3.2.4. 비우고 채우는 시간

    3.3. 가족

        3.3.1. 부부, 동반자 혹은 희생자

        3.3.2. 가족, 후원자 또는 상사

    3.4. 주위 사람들

        3.4.1. 친구, 선배, 선무당

        3.4.2. 편견과 나
4.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기 위한 지침

        4.1.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4.2. 진로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4.3. 일하지 않는 기간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까?


월요일, 목요일마다 업로드 예정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인터뷰 참가자들의 이름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대체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4.2. 진로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