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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ys Nov 02. 2019

미래사회와 포스트휴머니즘

시론 / 신상규_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문명의 출현이래, 인간은 언제나 기술적 존재였으며, 기술은 단순히 인간의 결여된 부분을 보충하는 도구나 보철이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기술은 우리에게 특정한 유형의 사고, 행동, 가치를 유도(afford)할 뿐 아니라, 특정한 종류의 행동이나 상상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제약 조건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인공지능을 위시한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외부 환경뿐 아니라, 인간의 본성 및 삶의 구조로서의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과학기술의 변화와 발전은 단순히 산업 성장이나 경제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활동과 그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근본적인 조건이나 구조를 새롭게 상상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생명기술이나 인공지능 기술과 같은 신흥 기술들이 과거의 과학기술과 구분되는 지점은, 이 기술들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수준에서 인간의 본성을 포함한 자연 세계에 대해 인간의 개입이나 통제력을 급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물질뿐 아니라 생명이나 정신마저도 우리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시대를 살게 되었습니다. 인류세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지금 우리의 선택에 따라 비단 현재의 인류뿐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 그리고 인간과 더불어 지구를 공유하고 있는 수많은 다른 종의 운명에 불가역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변화와 도전을 진단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한 유망한 프레임 중의 하나가 ‘포스트휴먼’의 개념입니다. ‘포스트휴먼’은 휴머니즘(Humanism)으로 규정되는 사회발전의 시기가 끝났으며, 우리가 ‘휴머니즘 이후’의 시대로 진입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핵심은 ‘인간(human being)’이란 존재를 과거(지금)와 동일한 방식으로 더 이상 생각할 수 없기에 인간과 그 삶의 의미를 새롭게 재정의 혹은 재발명해야 함에 대한 요구입니다. 철학자 루치아노 플로리디(L. Floridi)는 이를 코페르니쿠스, 다윈, 프로이트의 혁명을 잇는 인간학의 ‘4차 혁명’이라 명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의 밑바탕에는 생명기술이나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의 기계화, 그리고 인공지능으로 상징되는 기계의 인간화라는 현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유전자조작, 인공장기나 로봇 팔다리와 같은 인공보철(프로스테시스), 두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등은 인간을 점점 더 사이보그적인 존재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율적으로 추론, 판단, 선택을 수행하는 인공행위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은 디지털/물리/생물 사이의 경계를 해체하고 그 범주적 구분의 타당성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합니다. 앞으로의 미래는 생명이나 정신의 활동이 기술과 상호수렴하여 이것들을 서로 구분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생물-이후(post-biological)의 시대가 될 것이며, 이를 포스트휴먼의 시대라고 명명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 종족중심주의가 갖는 문제에 주목하면서, ‘인간’, ‘기계‘,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패러다임이나 언어 문법을 모색합니다. 포스트휴머니즘의 핵심은 인간/비인간-존재의 위계에 대한 비판과 이에 입각한 차별과 배제의 정치학에 대한 극복입니다. 휴머니즘의 전통적인 인간 개념은 차이(다름)에 입각하여 인간/동물, 인간/기계, 인간/인간-아닌-존재, 인간/비인간의 위계를 정초하고, 이로부터 다른 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인간의 착취적 태도를 ‘정상화’하는 기제로 작동하였습니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의 경계를 재정의함으로써 인간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위계를 해체하는 동시에 식물이나 동물과 같은 생명체는 물론이고 새로운 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해진 변형된 인간이나 사이보그,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적 존재들과의 조화로운 공생을 모색합니다. 포스트휴먼의 관점에서, 인간은 환경과 기술에 얽혀 있으면서 다른 형태의 생명과 함께 상호 의존하면서 살아가고 공진화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다른 존재와 분리되어 자족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생명 및 기술적 존재와 연결되어 상호작용과 교차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관계적 체계(relational system)의 노드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포스트휴먼적 관점은 인간을 다른 형태의 생명이나 존재와 분리하여 예외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인간이 그것들을 일방적으로 지배하거나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부정합니다. 


 교육의 가장 오랜 역할 중의 하나는 미래 세대로 하여금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세상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조직하고 의미화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일입니다. 오늘날의 급격한 기술/사회적 변화는 교육이 실행되는 기술적 조건의 변화를 동반하면서 교육의 목표와 내용,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요구합니다. 오늘날의 학생들은 특히 미래를 형성할 새로운 기술의 습득이나 이해뿐 아니라, 세상과 인간 그리고 기술적 환경과의 관계를 새롭게 개념화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때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역량 중의 하나가 바로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조직하고 심미적으로 향유하는 능력으로서의 규범적 역량입니다. 학생들은 새롭게 출현하는 기술이 우리의 생활 세계에 끼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거기에 내재된 규범적 가치를 숙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오늘날, 과학이나 기술 전문가들이 미래를 전망할 때, 그들은 기술을 통하여 만들어진 기계장치나 그것들의 내재적인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상상해야 하는 기술의 미래에 대한 비전은 단순히 미래에 등장할 기계장치의 모습이 아니라, 그러한 장치들이 그와 공진화하는 사회적 실천, 가치, 제도에 뿌리내리고(embedded) 있는 모습, 그리고 이 장치들과 더불어 특정한 삶의 형태(forms of life)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포함하는 기술사회적(technosocial)인 미래에 대한 비전이어야 합니다. 기술사회적 미래를 규범적으로 상상하는 일은, 변화된 기술적 조건 속에서 노동, 여가, 사랑, 우정, 연대, 문학, 음악, 미술과 같은 것들이 인간의 삶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상상하는 문제입니다. 이는 종국적으로 좋은 삶(good life)이란 어떤 것이며, 인간이나 그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인문학의 오랜 물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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