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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서태지15 - 서태지 남팬들, 그 순수함(?!)

서태지 팬 이야기 302 - 서태지 팬덤에서 남팬들의 의미

by 지현

서태지의 팬이라면 어떤 사람들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93년쯤의 콘서트 비디오에 나오는 스테이디움을 가득 메운, 고주파 함성을 지르는 어린 여성팬, 은퇴 당시 연희동 집을 둘러싸고 낙서를 가득히 하는 여학생들이 대표로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서태지 본인에게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어서 96년 은퇴 전에는 오빠가 여동생 대하듯 팬들에게 말을 걸었고 7집쯤 다시 달달해졌을 때는 완전히 로맨스 중 연인 대하듯이 팬들을 대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남자팬이 있었다. 그것도 많이 있었다. 1집 난 알아요는 92년도 거의 모든 남중 남고 공학 중고등학교의 수학여행, 장기자랑을 평정했고 2집 하여가 때는 뮤직비디오 안에서 그는 '태지형, 좀 와줘야 되겠는데'하고 클럽에서 춤추다 밀린 남성에게 불림을 받았으며 4집의 컴백홈과 랩은 남성청년들의 최애곡이자 안무곡이던 역사가 이미 있다. 6집 이후에는 대장이라는, 어쩌면 딱 남자들 입맛인 별명까지 새로 얻으면서 남팬들과의 관계가 정점을 찍었었다. 그 이후에도 서태지 밴드를 이끌면서 슬램 가능한 강렬한 록들을 연주했고 그런 음악에 열광하는 남팬들을 몰고 다녔었다.


그때 태지 대장이 불러일으켰던 슬램 열풍은 참으로 역동적이었고 에너지가 넘쳤다. 2000년 이후의 사전녹화 영상을 보면 아무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저마다 헤드 뱅잉을 하고 펄쩍펄쩍 뛰고 월 오브 데스를 만들어 떼로 부딪히며 놀았다. 심지어는 보컬 서태지도 제대로 쳐다보지 않는다. 짧은 사전녹화가 끝나면 그 자리에나 근처에서 한참 더 팬들끼리 음악을 틀고 슬램하다가 집에 가곤 했다. 그걸 논다고 했고 서태지는 지금도 '너희들이랑 노는 게 제일 재미있어'라고 말한다. 6집 음악방송 사전녹화 중의 하나인 워커힐 수영장을 떠올려 보자. 전설적인 그 영상은 지금 봐도 그 에너지와 광기가 소름이 돋을 정도인데 그때 태지대장에게 얼마나 남팬이 많았는지 아래 사진처럼 전설적인 사진이 남기도 했다.


남자팬들이 커밍아웃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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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전자기기가 서태지의 프로모션으로 등장하면 남성들이 앞장서서 구매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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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가 모두 비슷한 시기이다. 아이들 시절보다 많아진 남자팬들이 두각을 나타나던 6, 7, 8집 앨범활동을 하던 때. 2009년 대전, 8집 콘서트 뫼비우스에 참석하여 스탠딩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뒤에서 끝없이 서태지의 음악과 업적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학생으로 보이던 두 소년도 생각이 난다. 아는 것도 많더라. 내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여전히 콘서트는 여성이 주로 예매했고 떼창은 여성들의 소프라노 목소리로 이뤄졌다.


그리고는 2011년. 서태지가 은퇴해 있는 동안 있었던 결혼과 이혼소식이 우연찮게 보도되었다.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팬들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충격은 엄청났다. 팬들 중 서태지를 연인과 같은 위치에 놓았던 많은 여성들은 실제로 서태지에게 실망했으면서도, 그런 실망이 너무나 익숙하지 않아 오히려 그의 과거 인연에게 실패의 책임을 물으며 '오빠 힘들게 하지 마!!'라며 스타를 보호하려고 에너지를 모으며 버텼었다. 그런데 2013년 서태지의 결혼소식이 전해졌을 때 남을 탓하던 버팀줄은 끊어졌고 스스로 실망을 인정하며 떠나갔고 팬층은 크게 물갈이가 되었다.


너에게 노래 마지막 '네 순수한 마음 난 변치 않길 바~~~래' 에서 '안변해, 안변해!'를 목이 쉬도록 외치던 광팬들이 떠나가고 '글쎄 변할 수도 있지' 하던 팬들이 오히려 남았다고 해야 하나. 나는 그 때 팬덤에 불던 광풍에 놀랐어서 누군가가 너무 좋아질 때 팬의 자세가 어때야 하는지 여전히 고민이 많다. 그 노래 후렴에 '세상은 분명히 변하겠지, 우리의 생각들도 달라지겠지'라는 부분을 들을 때면 지금도 쓴웃음이 난다. 영원한 맹세란 걸 없다는 걸 서태지는 21살에 이미 알았다.


이 때다. 다시 서태지의 남팬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며 남녀를 아우리는 태지의 음악과 스타성을 다시 부각시킨 것은. 아무래도 남자들이다 보니 스타의 결혼이나 이혼 등 사생활에 상대적으로 초연했으리라. 오히려 서태지 첫 번째 결혼이 남자답게 책임을 지는 행동이었다는 평가도 심심치 않게 있었으니 세상사가 재미 있는 거다 싶다. 그래서 2014년 서태지의 9집 컴백쇼에서는 이런 모습이 보였다. 스탠딩석을 가득 메운 남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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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팬들이 보는 서태지의 매력은 뭘까. 물론 음악이 새롭고 저항정신이 있어 끌리고 초인기의 태지대장이었기에 믿고 따르기 시작했겠지만 남성들 사회를 흔히 묘사하듯 군대식 수직서열로 그 팬덤을 그려보는 것은 현실과는 약간 괴리가 있다. 디시 인사이드 서태지 갤러리처럼 남성의 참여 비율이 높은 웹사이트를 오래 눈팅해 온 나로서는, 창백하고 가녀린데, 하는 음악은 하나도 빈 데가 없는 출중한 능력의 음악가 서태지 아우라에는 남자들에게 무언가 보호본능을 끓어오르게 하는 게 있지는 않았나 추측해 본다. 사실 서태지가 일으키는 보호본능은 여팬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결국 그것은 그가 싱글일 때에 한정되는 거였다. 팬심이란 게 도대체 뭔지 너무나 헷갈리고 절망스러웠을 때 남자들이 순수하게 바치는 열정, 계산 안 하는 팬심, 이제 우리가 나설게요, 형 하는 적극적 자세에 내가 위로를 받았다는 것을 숨길 수 없다. 그건 당연히 서태지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2015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페미니즘은 한국 사회 전체에 가장 강력한 화두가 되었고 N번방 사건, 수없는 연예계 정치계 인사들의 여성 성착취 사건 등으로 왜곡된 성관념을 가진 수많은 남성들을 매일 마주하는 게 2025년의 현실임을 안다. '한남'이 멸칭이 된 시대, 젊은 남자들과 여자들의 사이는 단군 이래로 가장 냉랭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 개인적으로 내게 귀여웠던 10년 전 서태지 남팬들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팬들도, 사실 서태지 자신도 은연중 자신이 갖고 있는지도 모를 여성혐오적인 태도나 차별적인 습관에 대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단도리를 해야 하는 것이 작금의 시대정신이다. 그러나 가끔은 주로 남성들이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단순한 충성심'이 그립다. 보호가 남자의 일이라고 믿던 그 심플한 마인드들이 아쉽다.


여담으로 위의 워커힐 MBC 사전녹화 사진에 나온 서태지와 포효하는 남팬들의 모습을 진짜 애정하던 나는 2014년 태지가 클럽공연을 한다는 소문이 돌 때 '남자들만 모아서 공연을 하고 그것을 촬영해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팬사이트에서 제안한 바 있다. 내 길티 플레져로, 서태지를 숭배하는 낮은 목소리의 남성무리들을 보고 싶었다. 그들의 땀을 구경꾼으로 즐기고 싶었다. 결국 서태지의 전설적인 공연, 남녀차별 클럽 공연 '일겅' 남탕 편이 성사되었을 때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블루레이로 사서 몇 번을 돌려보았는데 결국 2021년에는 유튜브에 공연 전체가 올라왔다. 남팬들을 존중하고 경례하는 서태지, 요구대로 욕을 해주고 담배도 피워주는 서태지 그리고 그를 숭배하는 남자 팬들을 볼 수 있다. 짐승같은 슬램과 월오브데스 구경은 덤.

https://youtu.be/ceQp98oqu08


아무튼 서태지-서태지는 왜 10집을 내지 않는가

1부: 8집 수록곡으로 본 서태지의 음악

102: 서태지의 자연사랑과 방랑벽 - 프리스타일, 모아이, 숲속의 파이터

103: 서태지의 반항과 비판의식 - 교실이데아, 틱탁, 시대유감

104: 서태지의 고유성, 지키기 위한 싸움 - 레플리카, 수시아

105: 서태지의 플라토닉 러브 - 줄리엣, 10월 4일, 영원

106: 서태지의 이성애적 사랑 - 버뮤다[트라이앵글]

107: 서태지의 본업, 기계취미 - 휴먼드림, 로보트

108: 서태지의 절망, 고독, 비탄 - 코마, Take 3, Zero


2부: 서태지 이야기

201: 그가 이룬 것은...

202: 지극히 사적인,

203: 페미니스트 서태지

204: 세계속의 서태지(?)

205: 반전의 서태지


3부: 서태지 팬 이야기


301: 서태지와 응원봉

302: 서태지 남팬들 그 순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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