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꺼풀을 당기는 지구의 힘을 이겨내야 하는 아침이 왔다. 중력과 싸우며 눈을 뜨려고 아등바등하자, 누군가 방문을 열어젖힌다. “출근해야지~” 그 말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생각한다. 아~ 내가 결혼했구나. 저 남자는 나의 남편이고, 나에겐 딸이 하나 있구나.
전쟁이 일어나도 아침은 챙길듯한 전투력으로 그는 물과 계란을 뚝배기에 넣고 끓는점에 도달할 때까지 열을 가한다. 그렇게 계란이 계란찜으로 바뀌는 동안 내가 여자이며, 한 남자의 아내이고, 한 아이의 엄마이고, 이제 20분 안에 돈을 벌러 가야 한다는 사실을 힘겹게 인정하고 식탁에 자리를 잡는다. 남편은 삶의 무게를 이겨내느라 애쓰는 나를 위해 뚝배기 안에서 춤추는 계란찜을 내놓는다.
그 계란찜을 보니, 남편의 손길로 그것이 만들어진 것처럼 나도 이 남자의 아내, 이 아이의 엄마가 된 데에는 어떤 원인과 과정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고, 팔자소관이라 말할 수도 있고, 유전자의 작용이라고 우길 수도 있다. 무엇으로 이해하든 나의 자유 일터. 나는 행복한 중년을 위해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애처롭게 바들바들 떠는 남편의 피조물인 계란찜을 손으로 파괴하며, 머리로는 엄마라는 존재, 딸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생성될까를 떠올렸다.
기독교적 사유
성경의 창세기에는 신이 총 7일간의 작업으로 세상을 창조했다고 나온다. 그 7일간의 작업은 이렇다. 1일 차에 빛과 어둠을, 2일 차에 하늘을, 3일 차에 바다와 육지를, 4일 차에 해와 달 그리고 별을, 5일 차에 물고기와 새를, 6일 차에 동물과 인간을 만들었다. 마지막 7일 차에는 쉬었다. 창세기 1장 28절을 보면 6일 차에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고 피조물인 인간에게 이런 첫 번째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
그러므로, 나는 신의 명령으로 이 땅에 태어났고 그 받은 복으로 남편을 만나 딸을 낳은 것이다.
플라톤의 원인론
플라톤은 데미우르고스(제작자), 형상(설계도), 그리고 질료(재료)의 3가지 원인으로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말은 어렵지만, 알고 보면 기독교와 비슷한 듯, 다른 듯하다. 제작자가 설계도를 보고 재료로 만들었다는 거다. 제작자가 아기의 형상, 그러니까 아기의 설계도를 보고 나의 난자와 남편의 정자를 질료(재료)로 써서 만든 것이 내 딸이라 할 수 있겠다.
나의 공부가 짧은 탓에 데미우르고스가 신인지, 이기적 유전자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뼛속에 크리스천의 흔적이 남아 있는 나는 플라톤의 원인론이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다.
참고로 강신주 선생님의 철학VS철학에 보면, 이 데미우르고스, 형상, 질료라는 세 가지 원인은 이후 칸트의 이성, 오성, 감성의 세 가지 계기로 변주되고 라캉의 상상적인 것, 상징적인 것, 실재적인 것의 세 요소에도 대응된다고 설명되어 있다. 강신주 선생님의 워딩에 따르면, 서양철학이 플라톤 철학의 각주에 불과하다는 화이트헤드의 말은 과장된 게 아니었다.
생성의 철학
기독교적 사유를 생각하고 있으니 아침에 먹은 계란찜이 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위산을 타고 역류할 것 같았다. 어럴 적부터 쟁겨두었던 크리스천 감각이 요즘 사라졌기 때문이리라. 두 주먹 불끈 쥐고 가슴을 두들기니 아까 그 계란찜이 살짝 내려갔다. 그러나 플라톤의 원인론을 생각하려고 안 돌아가는 두뇌를 풀가동 하고 있자니, 위에 머물렀던 피가 머리로 올라가 버려서 소화가 안 되었다. 소화제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며 눈이 성실하게 움직이는 동안 나의 심안도 이에 질세라 내 수준을 열심히 카운트 했다. 그 계산이 끝나자마자 쿨하게 인정했다. 나는 철학의 바다에 이제 막 발꼬락만 슬쩍 담갔을 뿐이라는 것을.
이도 저도 되지 않으니, 그냥 내 맘대로 생각해봐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사르트르를 떠올렸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타인은 철학에서 타자라고 부르는 개념이다. 나는 딸을 타자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딸은 내 핏줄로 만든 나의 소유이니 내 바운드리에서 예측 가능한 방향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남편은 딸과 결이 살짝 다르다. 처음에 그는 나에게 타자였으리라. 그의 시선을 의식하고, 조심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가 나를 바라보지 않게 되었을 무렵, 나는 그에게 익숙해져서 그의 모든 것을 내가 예측 가능한 상태로(내 의지대로, 내 스타일대로) 바꾸려고 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남편의 본질, 아내의 본질에 충실한 가족이 되었다.
지난주 딸을 통해서 본질의 개념을 알게 된 후, 딸과 나의 자유를 위해 새로운 본질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새로운 본질을 찾을 것이 아니라, 본질의 개념을 폐기하고 다른 것을 찾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생성의 개념이다.
내가 딸에게 처음부터 예측 가능한 방향대로 움직이는 본질의 프레임을 씌우지 않고, 우연적이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생성의 철학을 대입했다면 어떨까. 딸이 지 맘대로 휴학하고, 보컬학원이나 다니면서 단기선교로 러시아에 가겠다고 우긴다면, 생성의 철학으로 사유했을 때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여행이며, 행복할 때까지 밟아야 하는 수순이다.
이제 본질을 만들어 딸이 그것에 따라와 주길 기다릴 것인가,
이제 나는 딸의 타자가 되어 딸의 변화를 바라 볼 것인가,
언젠가 딸이 지금의 내 나이가 되어 지금의 자신을 회상하며, 나와 마주친 흔적들에 어떤 의미를 찾아낼지 궁금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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