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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Feb 11. 2023

행복은 언제 가능한가

행복의 철학

마흔이 넘고 쉰이 다 되어가는 길목에서 가끔 던지는 질문이 있다. 사랑이 뭐길래. 우정은 무엇인가. 그리고 행복이란 게 있는 건가.


20대 때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지금 떠올리니, 너덜너덜해진 낡은 사진 같다. 괜히 들춰봤다가 바스러지고 찢어질 거 같아서. 그냥 덮어둔다.



지금도 행복 같은 것, 행복 비스므리한 것을 느낀다. 즐겁고 신나는 인생이다. 그러나. 나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내가 행복이라고 선택한 그것,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포기한 것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공허한 것들, 그러니까 측량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덜어내고 싶다. 겉멋에 취해서 비틀거리다가 전봇대가 나를 덮쳤다고 우기고 싶지 않다.


박카스에 우루사까지 꿀떡 삼켜 말똥말똥한 정신에 활력을 감싸 생각해낸 그 의미를 나는 원한다. 그리고 그것이 아주 오래가길 기원한다.


이렇게 말하면 뜬구름 잡는 느낌이다. 솜사탕 씹는 느낌으로 다시 묘사해본다. 30대까지는 남들 하는 거 다 해보고 싶었다.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에 유행미 흐르는 가방을 메고 어딘가 여행을 떠나야 했다. 무심하게 둘러맨 스카프 자락을 뒤로하고, 남편과 아이의 손을 잡고 사쿠라가 뽀얀 얼굴로 반기는 신주쿠 공원을 거닐고 싶은 마음의 소리가 귀에 들리면 어느새 입술이 간질거린다.


기어이 남편에게 잔소리를 쏘아붙이고, 마누라의 성화에 못 이겨 끈끈한 가족애를 굳이 확인하려고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나는 행복했다. 남겨진 사진이 그것을 애써 증명해낸다. 사진 속 우리 세 식구는 즐겁게 웃고 있다.


그러나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지지고 들들 볶는 중화요리를 매일 맛본다. 여행이란 것에 부여한 의미는 어느새 연기처럼 흩어지고 타고 남은 재처럼 바스러진다. 행복한 가정이라는 이미지를 생산해 내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린 나는 행복에 겨워서인지, 행복이 지나가서인지, 행복이 아니라는 걸 직감해서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기운 빠진 채로 드러누워 있어야 했다.


물론 여행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여행에서 굳이 행복을 발굴하려고 했던 나의 잘못된 생각과 욕망이 나쁜 것이다. 그 와중에 자본주의 논리로 들이미는 여행사도 한몫했다.


여행 말고도 많은 것들이 내 삶에 있다. 포장하고,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들이다.  대부분 돈과 엮여 있다. 내가 그러하고, 내가 살고있는 세계가 그렇다. 그런 것으로 행복의 이미지를 만들어야, 세상이 굴러가고, 그 안에서 나도 돌아간다. 이런 톱니에서 삐뚤어지는 날이면, 나는 쪽팔리게 되고,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이런 느낌을 요즘 많이 받는다. 행복이라는 게 사실 별거 아니고, 큰 노력 없이, 돈 들이지 않고 가질 수 있는 거란 느낌말이다. 그렇지만 그 느낌은 표현하면 안 된다는 감각이 같이 맴돈다.


가진 사람들, 그러니까 나보다 돈 많고, 높은 자리에서 나를 내리깔고 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래야 계속 돈이 많은 상태를 유지하고, 나를 내리깔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행복이 쉽게 얻어지는 거라면, 내가 자진해서 그들의 노예가 되길 자처할까. 행복은 자유에 있다는 걸 이제 조금 알게 되었는데, 아직도 스스로 노예 짓을 하고 있다. 두렵기 때문이다. 여태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몸에 남아 있고, 20년 넘게 공직에서 들인 물이 쉽게 빠질 것 같지 않다.


이제 겨우 혀끝에서 살짝 느껴지는 행복, 내가 표현하고, 측량해서 의미를 갖다 붙일 수 있는 그 행복을 멀쩡한 정신에 계속 느끼고 싶다. 아마도 스스로 노예의 족쇄를 풀기는 힘들 거 같다. 두렵고 용기 없는 나는 그냥 시간을 죽이며 늙기를 기다렸다가, 주인에게 버림받을 그때가 돼서야 그 행복을 만끽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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