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삶으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하는 착각들
"정보화 사회에서 컨셉과 감성의 사회로"
세계적인 석학이자 미래학자인 다니엘 핑크가 그의 책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말하는 현재의 변화이다. 그리고 미래의 모습이다. 하이터치는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인데, 인간관계의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의 개성에서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요소를 도출해내는 능력, 평범한 일상에서 목표와 의미를 이끌어내는 능력이다. 피로사회 그리고 소외 사회인 요즘 더욱 절실하게 하이터치의 시대의 도래에 목마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이 삶을 풍요롭게 해줄지 함께 배워보자.
나는 풍요로운 삶을 갈망해왔다. 나름대로 익힌 삶의 기술을 실천하며 찾은 작은 풍요들로 삶을 채워나가고 있다. 어려운 난관에서도 긍정적 의미를 찾고 이로부터 성장이 싹트도록 노력했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삶의 기술을 소프트파워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소프트파워는 무엇일까? 나는 '대화'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말한다. 가끔 혼잣말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누군가와 대화한다. 어찌 보면 끊임없이 대화한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대화한다. 그 과정에서 공감을 하기도 하고, 사랑을 표현하고, 서로를 인정한다. 때로는, 아니 자주 다투기도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하고 스스로에 대한 말을 한다. 또한 때로는 누군가에 대한 질투, 시기, 분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늘 누군가와 대화한다.
"우리는 늘 누군가와 대화한다"
하이터치의 시대, 소프트파워를 함께 배우고 있다. 그 첫 번째 배움으로 감수성을 훈련한다. 이 훈련과 병행하는 세 권의 책 중 마지막 책은 <비폭력 대화/마셜. B. 로젠버그>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소프트파워인 '대화법'에 대해 다룬다. 비폭력 대화의 목적은 서로 공감하면서 질적인 인간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 '진정으로 나와 상대가 원하는 연결'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서로 공감하면서 질적인 인간관계를 이룬다’라는 말에 그냥 고개를 끄덕인다. 맞는 말이다. 나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책에 소개된 비폭력 대화의 사례와 요령을 보며 그동안 내가 해왔던 방법은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었음을 크게 느꼈다. 나는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방식과 방법을 거부하고 비판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과정을 반복하며 삶을 소외시키는 방법을 실천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삶을 소외시키는 방법이 결국 풍요로운 삶으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한다. 내가 말하고 원한다는 풍요로운 삶을 내가 스스로 멀리하고 있었다.
그 첫 번째가 '판단'에 대한 착각이다. 나는 '판단'을 내 삶의 방식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며 나를 그리고 상대방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사실 작은 우물들을 벗어나며 그리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사회생활 과정에서 그 방식이 나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방식은 가치적 자율성을 인정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분석하고 단정 지으려는 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좋아하지 않거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렇게 대해야 내가 피해보지 않는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나의 행동의 결과는 상대가 나에게 거부감을 가져 방어하고 저항한다. 나의 반응에 동의할지라도 진심이 아닌 것이다. 그냥 그저 그런 관계이다. 이것은 나를 지키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에게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벽을 쌓는 방식이다. 그 판단이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뜻은 ‘그 사람의 행동이 나의 욕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였음을 이제야 알았다. ‘왜 그럴까’ ‘상대의 행동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있었고 ‘어차피 내가 상대를 바꿀 수는 없으니 대응하지 말자’라는 잘못된 생각으로 이어졌다. 판단의 대상이 나일 경우 역시 ‘나는 지금 나 자신의 진정한 욕구와 조화롭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다’라는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불평만 하고 자신을 스스로 힘들게 만들고 자존감을 깎아내리기도 했다.
풍요로운 삶을 멀리하는 나의 두 번째 착각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얼마나 분명하게 표현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이 부분은 위에서 말한 판단에 대한 착각의 시작으로부터 누적된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해야만 한다’ 또는 ‘안 하면 안 된다’ 등의 도덕주의적 판단으로 인한 타율적인 훈련의 결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욕구를 인식하기도 전에 판단을 해버렸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스펙에 따라, 남들의 평가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해야만 할 일을 해왔다. ‘어차피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다’라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 되었다. 나의 욕구와 가치관을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 대표적인 잘못된 예가 구체적인 행동은 말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껴야 하고,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지 암시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분명하게 나의 욕구를 표현하지도 않았으면서 내 방식대로 판단했다. 암시하는 말과 행동을 했는데 내가 만족스러우면 나와 잘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실망하는 경우도 있고 다시 나의 마음만 달래는 소모적인 일을 해왔다.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다가 내 마음 안에 불만만 쌓고 있었다. 바로 내가 스스로 말이다.
이러한 착각을 절실히 느끼고, 책을 계속 읽어나갔다. 착각이라는 깨달음 뒤에는 내가 가야 할 방향이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었다. 그 과정이 감수성 훈련과 연결되어 반갑고 기뻤다. 먼저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다. 판단하고 규정하는 '평가'가 아닌 '관찰'이다. 사실 감수성 훈련에서 '관찰'을 있는 그대로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몰랐고 이제야 깨달았다. 책의 교장 이야기에서 교장은 자기가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고, 자신에게 왜 그런 습관이 생겼는지 또 길게 말하기 시작하는 사례가 나온다. 감수성 훈련에서 상대가 나를 '평가'한 것이 아니고 '관찰'한 ‘사실’을 들었는데, 나는 상대를 먼저 보지 않고 내 이야기를 먼저 하려고 하는 상황과 동일하다. 분명히 관찰이었고, 평가가 섞인 것도 아닌데 나는 내 이야기를 먼저 하려고 했다. 그만큼 있는 그대로를 관찰한 것인데 비난처럼 듣고 있었고 관찰을 제대로 못 받고 있는 수준이었다.
있는 그대로 관찰한 후 다음 단계는 ‘느낌을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감수성 훈련을 통해 상당히 나아졌다. 쉽지 않았던 감정을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것이 점점 수월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비폭력 대화 책을 읽으며 다음 단계인 ‘느낌이 내면의 어떤 욕구와 연결되는지 말하는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이는 나의 욕구의 근원을 의식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우리의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은 될 수 있어도, 결코 우리 느낌의 원인은 아니라 그 순간 나의 욕구라는 말을 체험했다. 그 느낌은 그 순간 자신의 필요와 기대 또는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기로 내가 ‘선택’했는가이다. 상대방을 탓하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해야 한다. 그것이 풍요로운 나의 삶을 위한 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상대로부터 무엇을 받고 싶은지 명확하게 표현해서 부탁해야' 한다. 즉 의식적인 부탁이다. 그래야 나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이 부탁을 상대가 강요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점이 쉽지 않다. 상대가 나의 부탁에 응하지 않았을 때 상대의 말에 공감해주어야 한다. 상대의 거절에 나 역시 바로 포기하는 것 역시 나의 판단이고 반복되는 소모적인 일로 이어질 것이다. 다시 말해 포기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꾸려는 목적이 우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부탁의 분명한 목적은 솔직함과 공감에 바탕을 둔 관계를 형성하여 모든 사람의 욕구가 충족되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해 가야 할 길을 분명하게 짚어보았다. 상대를 위해 가야 할 길도 같은 길이다. 나의 욕구가 소중하듯이, 다른 사람의 욕구도 소중하다. 상대를 위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관찰하고 상대의 느낌과 욕구를 공감하고 부탁을 들어주어야 한다. 말로만 하고 흉내만 내는 공감이 아닌 진정한 공감으로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상대와 함께 있어야 한다. 상대를 쳐다보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함께 온전히 함께 있어주어야 한다. 사실 내가 사용해왔던 공감의 방법은 상대방의 내적 현실에 대한 이해가 없는 정보만 묻는 것이었다. 그러한 단순한 질문을 여러 번 하면 그것이 관심이고 공감이겠지 하며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 공감은 상대를 안심시키는 것이 먼저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내가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싶은 충동으로 조언을 하거나 섣불리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고쳐나가기 위해 가족과의 대화에 적용했다. 내가 답답해했던 어머니의 행동이 많았다. 나는 내 안에서 어머니 본인을 위해 좋지 않은 방식을 하는 것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왜 그렇게 대응하고 행동했는지’ 묻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가 바뀔 것으로 기대했고 그러길 원했다. 단지 상대의 행동을 바꾸길 원했던 것이다. 그것이 어머니 스스로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랬듯이 바뀌지 않고 있었다. 어떤 일에 대한 어머니의 불만을 들으면 나는 늘 같은 방식이었고, 어머니 역시 내가 제시안 대안에 알겠다고만 하고 대화가 끝났다. 얼마나 소모적인 대화였는지 절실히 느꼈다.
나는 나의 욕구를 암시적으로 말하거나 어머니의 행동에 대한 판단을 말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대안을 바로 제시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욕구)를 원했지만 그러지 못해서 불만을 느꼈겠네요?”라고 말하는 연습을 했다. 상대의 욕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자 이전과는 다른 대화가 펼쳐졌다. 어머니께서는 그 상황에서 본인의 불만과 욕구를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듣고 공감해주었다. 그리고는 어머니와 함께 대안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동감 있고 생산적인 대화로 바뀌었다. 대화의 끝은 늘 상황에 대한 안타깝고 씁쓸한 느낌으로 끝났었는데, 이제는 흐뭇한 느낌과 미소로 끝난다. 큰 변화를 해내고 있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Sensitive의 중요한 의미인 '상대의 기분을 헤아리는 데 세심한'에 조금은 다가간 듯하다.
감수성 훈련과 비폭력 대화의 연결에서 느껴지는 핵심은 ‘상대를 알아차리는 구체적인 방법 또는 요령을 훈련한다’는 점이다. 또 이 과정에서 나를 새롭게 알아차리게 된다. 결국 Humility이다. 책 ‘상자 밖에 있는 사람’도 ‘감수성 훈련’도 ‘비폭력 대화’도 모든 연결은 Humility라고 생각한다. 온 마음을 다해 상대를 알아차리는 것이 핵심이다. 하이터치의 시대, 소프트파워의 요소 들는 모두 사람과 관련된 것들이다. 결국 소프트파워의 핵심은 Humility다. 그리고 이는 사람만의 고유한 능력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 강력한 소프트파워를 이해하고 삶에 적용해야 한다. 책을 읽고, 예시를 보고, 방법과 요령만 익혀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훈련은 특별한 훈련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에 함께 있어줄 수 있는 능력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이다. 이제 당신은 나와 함께 강력한 소프트파워의 첫걸음 내디뎠다.
소프트파워의 핵심은 humility다.
그리고 이는 사람만의 고유한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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