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정보화 사회에서 콘셉트와 감성의 사회로"
세계적인 석학이자 미래학자인 다니엘 핑크가 그의 책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말하는 현재의 변화이다. 그리고 미래의 모습이다. 하이터치는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인데, 인간관계의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의 개성에서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요소를 도출해내는 능력, 평범한 일상에서 목표와 의미를 이끌어내는 능력이다. 피로사회 그리고 소외 사회인 요즘 더욱 절실하게 하이터치의 시대의 도래에 목마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이 삶을 풍요롭게 해줄지 함께 배워보자.
대화하는 중에 우리는 언제 감정에 휘말릴까. 대표적인 한 가지 상황을 꼽자면 바로 악질과 대화할 때이다. 물론 내가 바라봤을 때 악질인데, 그 악질이 어느 지위에 있느냐도 나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회사 내에서 혹은 어떤 조직에서 누가 봐도 악질인 상사와의 트러블이 있을 수 있다. 그 사람의 말은 언제나 공격적이고 나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 같이 보인다. 내 감정이 공격받지만 조직 내에서의 관계 때문에 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다. 만약 밖에서 마주친 사람과 이러한 상황이 펼쳐지면 한 판 크게 싸우면 지나칠 수도 있지만 조직에서는 더더욱 어렵다. 물론 대판 싸우는 것도 싸움 후에는 감정 소모와 분노가 밀려온다. 악질과는 어떻게 대화하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 현명함까지 가기 어렵다면, 어떻게 대화하는 것이 현명하게 나를 지키는 방법일지 먼저 알고 싶다.
우선 큰 그림을 그려보자. 관점을 높은 곳으로 가져가 보는 것이다. 만남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고자 할까. 먼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편안한 마음'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와 같이, 작은 흔들림은 있겠지만 요동치지 않는 강물과 같은 편안함을 우리는 추구한다. 그래서 나를 돌아보고, 상대를 보고, 경험을 축적해가며 우리는 성장하고 성숙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만큼 쉽진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혼자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인생이다.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혼자이면 그리고 너무 쉬우면 인생이 재미없을 것이다. 물론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지만 절대적으로 혼자 갈 수는 없다. 지금도 그 과정에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주 많은 큰 영역이 바로 만남이다. 만남에서 우리는 서로 경계하며 벽을 치는 것이 아닌 '용기'를 내야 한다.
마음을 풀어놓고, 터놓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움츠리고 있던 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서자니 때로는 두려움과 귀찮음이 따르고, 나를 드러내 보이자니 상처를 입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남을 받아들이자니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도 따르기 때문이다.
<감수성 훈련> 유동수
만남에서 우리는 대화라는 것을 한다. 대화에서도 우리가 가고자 하는 편안한 마음을 위해 우리는 다양한 현명함을 추구한다. 하지만 대화의 실전에서 악질을 만나면 우리는 좌절한다. 다시 용기를 내라고 하나는데, 우리는 벽을 쌓는다. 그리고 그 벽 밖으로 나갈 용기가 아닌 벽을 지키는 두려움을 생산한다. 나의 경험으로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자기합리화의 무덤을 판다. 어렵다. 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 선배의 조언과 책에서 얻는 지혜는 같은 방향이다. 그것은 괴로움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어찌 됐든 내면을 직시하고 용기를 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스스로 해야 한다는 명확한 진리이다. 다른 말들은 사실 핑계이다. 책 <미움받을 용기>에서 철학자가 말하는 '용기 부여'라는 일, 즉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고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갖는 것을 상기해보자. 용기 부여를 했다고 치고 한걸음 더 나아가 보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다시 말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 방법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감정적인 뒷받침이 밑거름이 되어야겠지만 실전에서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할지 역시 지금, 여기 내 앞에 있는 일이다. 그래서 <미움받을 용기>에서 말하는 '용기 부여', 그리고 '분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인간관계에서의 고민과 괴로움을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는 내 과제가 아니다"라고 분리하는 것을 1단계로써 동의한다. 그래야 인생의 짐을 덜고 그것이 인생을 단순하게 만드는 첫걸음이라는 것에 나는 공감한다. 그런데 2단계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이 글의 주제와 같이 함부로 말하는 악질과 대화할 때를 살펴보자. 악질과의 대화를 계속 분리만 한다고 능사는 아니지 않을까.
책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관계를 회복하기로 결심하는 데 있어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혹은 내가 다가서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는 조금도 관계가 없다고 철학자는 말한다. 상대방이 나와 관계를 회복할 의사가 없어도 상관없고, 문제는 내가 결심하느냐 마느냐이다. 그리고 그 카드는 언제나 내가 쥐고 있다고 한다. 이는 결국 용기 부여와 분리, 그리고 지금-여기를 주체적으로 사는 지혜를 말한다. 나 역시 찰학자의 말에 동의한다. 다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삶에서 많은 부분을 함께하는 대화에서, 특히 악질과의 대화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배워보고 싶다.
이제 구체적으로 방법을 살펴보자. 사실 나의 큰 고민은 악질과의 대화에서 인간애를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나를 지키는 현실을 바라볼 것인가이다. 그래서 책 <비폭력 대화>와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 사이에서 현명함을 갈구했다. 결국 우리는 현명함을 추구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더 현명한 대안을 선택하고 삶에서 연습하고 훈련하길 나는 바란다. 책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에서 저자 샘 혼은 우리가 그동안 악질로부터 받은 상처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우리의 마음을 보듬어준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악질과의 대화에서 인간애와 나를 지키는 길 사이에서 방향을 설정해주는 느낌이 든다.
악질적인 사람들은 자기 행동을 돌이켜보지도 않고 잘못을 깨닫지도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라. '이 사람을 이렇게 대해서는 안 되는데, 나중에 사과해야겠다.'라고 반성하는 대신, '됐어! 막 대했는데도 항의하지 못하는 군. 그럼 계속 이렇게 하면 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 샘 혼
그는 침묵이 허용의 의미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한편 샘 혼 역시 기본적으로는 인간애를 추구한다. 즉 친절함의 가치를 믿고 남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우리 자신까지도 기쁘게 만든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러나 상대가 비열하게 나온다면 전략을 바꾸라고 한다. 악질적인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제압한 수백 명의 사람들과 인터뷰를 해본 후, 그는 마침내 '계속 나쁘게 행동하는 상대에게는 강하게 나가는 것이 옳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악질적인 사람과 협상하면서 이쪽이 도덕적이면 상대도 도덕적으로 나오겠거니 기대하는 것은 투우 경기장에서 황소와 단둘이 들어가더라도 채식주의자인 당신은 무사하리라 기대하는 것과 같다. 상황에 따라 갈등 해결 방식을 유연하게 적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독재형이나 참여형 리더십이 만능이 아닌 것처럼, 1등 지상주의도 윈윈도 만능 아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특성에 따라 리더십 방식을 맞춰가야 하듯, 대적하는 상대의 특성에 따라 의사소통 스타일을 적절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협력적 공존을 원하는 이성적인 존재이므로 윈윈 방식이 대체로 유효하다. 하지만 잘 지내려는 우리의 진심 어린 노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걷어차는 상대를 만났다면 마음을 다잡고 공격해야 한다. 그래야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 샘 혼
왠지 내 마음이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는 악질과의 전투를 지켜본 듯, 시원한 분석을 내놓는 것만 같다. 마음속으로 나름의 인간애를 추구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이성적 존재로서 상대를 바라보며 겪었던 딜레마의 가려움을 긁어주는 느낌이다. 자, 이제 공감과 위로는 감사하게 받았으니 방법을 살펴보자. 책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에는 저자가 경험한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유사한 사례가 많이 나온다. 나는 그중에 아주 쉽고 강력하게 활용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선택했다.
상대가 그 경솔한 말을 반복하게 만드는 것은 모욕을 그냥 넘기지 않겠다는 의사표시가 된다. 이 간단한 질문으로 궁지에 몰리는 존재는 이제 당신이 아닌 상대가 된다. "방금 뭐라고 하셨지요?"라는 질문은 치고 빠지는 언어적 공격을 하는 사람에게 설명을 요구함으로써 당신을 당하기만 하는 역할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즉 이런 상황에서는 I message보다는 You message가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나' 대신 '당신'을 주체로 놓았기 때문에 책임을 정통으로 상대에게 돌리게 한다. 즉 내용이 아닌 의도에 답하게 만드는 현명함을 말한다. 나는 이 말을 비폭력 대화로 조금 더 다듬어 보았다.
"지금 말씀하신 것을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 말은 단순해보일 수도 있지만 부당함을 표현하기 쉽지 않은 조직에서 아주 쉽게 활용할 수 있다. 잘 못들었다며 다시 한번 상대가 직접 자신이 한 말을 하게 하면 감정적으로 내뱉은 말도 다시 생각하며 말을 해야 한다. 특히 앉아 있는 경우라면 일어서서 눈을 바로 보고, 천천히 말할수록 효과가 크다. 또한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교양있게 받아 친다면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무리 하지 않고 아주 쉽게 실천해볼 수 있는 요령이다. 감정적인 괴물의 공격에 우리는 괴물이 되지 않으며 우아하게 반격하는 것이다. 사실 책에 유용한 방법들이 많이 나오지만 모두 활용하기에는 내가 추구하는 'Humility'의 방향을 함께 현명하게 고려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리고 위의 말 이후에는 내가 원하는 것, 나의 욕구를 분명하게 표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보다는 상대의 잘못으로 보이는 것을 분석하는 데 더 능숙하기 때문에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는 계속 두려움을 갖고 있거나 서툰 방법으로 표현한 경우에는 더 큰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조직에서 혹은 비즈니스 관계에서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래도 저래도 내게 불리할 것만 같은 두려움과 소모적인 감정을 스스로 양산해낸다. 악질과의 대화에서 아주 힘든 시기를 버텨내고 있다면 우선 위의 방법을 연습해보자. 그리고 다음에 내가 쓸 글을 통해 나의 욕구를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소프트파워를 함께 배우고 실천해보자. 다만 천천히 해야 한다. 분명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한 번에 잘 해내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감수성 훈련>의 대가 유동수 씨는 '참고 누르는 일'에 대해 용기를 내야 함을 강조하면서도 천천히 해야 함을 더욱 강조한다.
자기 자신을 용기 있게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자기 자신을 알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조금씩이라는 말에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가장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으면서도 실은 거의 모르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감수성 훈련> 유동수
천천히 지혜롭게 가야한다. 그래야 우리는 때때로 만나게 되는 괴물과 싸우면서도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8. 꼰대처럼 말하지 않는 매우 간단한 세 가지 방법
#10. 우리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억지로 하게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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