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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Apr 10. 2023

오래된 건물의 3층, 풀 냄새가 진동하는 도배학원

제14화

[이 글은 현재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를 연대기로 정리하는 시리즈 글입니다. 브런치와 네이버 카페 강한 영어학원 만들기에 업로드합니다.]






휴직 동안 집에서 봤던 드라마가 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서울에 저렴한 가격으로 집을 구해야 하는 막내 작가와, 본인의 집에서 고양이를 돌보며 간단한 규칙들을 지켜 줄 세입자를 구하는 회사원이 주인공이다. 


중간에 이런저런 에피소드와 해프닝 때문에 헤어졌다가 결국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원래 함께하던 그 집에서 살게 되는 뻔한 이야기. 


내가 처한 상황과는 주로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졌지만, 주인공과 조연 친구들이 일반적인 사회 초년생들이 겪는 어려움에 공감을 많이 했다. 


침대에 모로 누워 별로 슬프지도 않은 이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보면서 질질 짜면, 입에 눈물이 들어가서 짠맛이 날 때도 종종 있었다.



그렇게 한 달쯤이 흘러갈 무렵, 슬슬 미래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회사는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
그럼 앞으로 뭐 해서 밥 벌어먹고 살지? 



난 다시 평범한 사무직으로, 어떤 회사의 직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다시 또 마음이 병들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결론 도출은 아주 쉬웠다. 


바로 몸으로 하는 일이었다. 


나는 당장 인터넷에 도배학원을 검색했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저, 여기 혹시 다니고 싶은데
따로 클래스 시작하는 날짜가 있나요? 



족히 30년이 넘어 보이는 오래된 건물의 3층에는 풀 냄새가 진동하는 도배학원이 있었다.


슬쩍 들여다본 안쪽은 수강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저마다 벽에 초배지를 붙이며 실습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데스크 안내 직원은 수강료와 커리큘럼을 간단히 알려주고 명함을 하나 주면서 집에 가서 생각해 보고 등록하고 싶으면 전화를 달라고 했다.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도배사 커뮤니티가 있었다. 


수백 개의 글들을 눈팅한 결과, 도배는 꼭 학원을 다니진 않아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바로 조공(현장에서 조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으로 날일(하루 일당을 받고 하는 일을 날일이라고 한다.) 경험을 쌓다 보면 좋은 오야지(팀장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일본어 유래인 것 같은데 현장에선 저 단어를 많이 쓴다.)를 만나 꾸준한 일감을 보장받고, 기공(기술자라는 뜻이다. 조공이 경력을 쌓고 쌓으면 기공이 되고, 일당도 다르다.)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래, 회사에 의존하지 말고 내가 스스로 기술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어. 


역시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해!!!! 



난 그 길로 도배 커뮤니티에 가입인사를 남겼다.




<다음 화에 계속>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1화 영어 이름으로 제니퍼를 정했는데 철자를 모르겠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199

2화 내가 수업 시간에 최초로 ‘외운’ 영어 문장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1

3화 별스럽지 않은 날의 퉁퉁 불은 오뎅꼬지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4

4화 문제는, 나는 그들과 비슷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6

5화 나는 동그라미 모양인데 그 회사는 별 모양이라서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7

6화 경력직으로 입사한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8

7화 다음 날, 나는 인사팀에 면담을 요청했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9

8화 자리에 앉자마자 팀장님은 말씀하셨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10

9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팀장님에게 연락했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11

10화 선생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12

11화 부서 배치 열흘 만에 질병 휴직계를 내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13

12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겨둔 마지막 약 하나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15

13화 화해는 둘이 하는 거지만, 용서는 혼자 할 수 있어요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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