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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상함의 매력

저렴 버전 예술 감성 에세이 #12

by 서안

지구를 마구 부수고, 행패를 부리는

갑자기 나타난 악당.

맥락 없이 나타나 악당을 물리치는

뜬금없이 나타난 영웅.


터질 듯 팽팽한 전투 직전의 순간,

병사들 앞에 선 비장한 우리의 주인공

그의 장엄한 연설에 감동이 솟아오르고,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며,

감동의 음악과 함성을 섞어

적을 향해 맹렬히 쏟아져 나간다.


마을에 갑자기 나타난 허름한 남자.

화려한 과거가 묻혔거나,

기억을 잃었다.

그리고 꼭 그를 괴롭히는 악당들

다시 과거의 실력을 꺼내 들고

악당을 물리친다.


식상하다 못해 낡아버린 클리셰들 이건만.

그래도 식상한 게 좋다.

악당이 이기는 걸 못 봐주겠다.



Tors Fight with the Giants_Mårten Eskil Winge.png Tor's Fight with the Giants | Mårten Eskil Winge | 1872


거침없이 거인족을 물리치는 토르

그는 전형적인 영웅

바다를 마시면 바닷물이 줄어들고,

세상을 휘감은 요르문간드를 들어 올릴 뻔했고,

세월과 힘을 겨뤄도 무릎만 꿇고 버텨낸다는

그의 이야기가 마냥 즐겁기만 할 뿐.


진부하고 식상한 이야기면 어떠랴.

영웅들의 이야기는 삶에 주눅 든 나를 영웅이 된 듯

가슴 벅차오르게 하는데...

그것으로 족할 뿐.




류드밀라와 루슬란의 결혼 첫날밤

하필 그 날, 갑자기 나타나

그녀를 납치하는 악당

납치당한 그녀를 구하러 떠나는 루슬란


루슬란을 도와주는 수많은 이들

악당의 성의 갇힌 공주를 구해내는 루슬란

그러나 루슬란을 덮치는 배신의 칼날

다시 잃어버린 사랑하는 연인

하지만 그는 주인공

그를 부활시키는 은둔 고수

도시를 지키고, 그녀를 다시 구해내는 주인공 루슬란


완벽하게 진부한 클리셰

현실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의 연속일지라도,

이야기의 끝은 진부한 해피엔딩이길 소망한다.



https://youtu.be/bB03OJ3nq4I


익숙한 선율

진부한 스토리

그래도 귀에 감기는 음악


삶의 반전으로

소소한 행복과 기대가 역전될 때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을 듣는다.

진부하지만,

원하는 이야기를



#01 달빛 교교한 밤을 보내는 방법

#02 분노에 삼켜지는 시간

#03 오늘은 깊이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04 당신의 삶은 우아해야 한다.

#05 출근길, 사자기운 충전법

#06 사무치는 추위에 치여버린 날

#07 이제 자러 갈 시간이에요

#08 날듯이 사뿐하게

#09 다시 돌아갈래?

#10 당당하게, 거침없이

#11 발랄경쾌, 기쁨을 토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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