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7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양재웅씨가 운영하는 경기도 부천의 W진병원에서 30대 여성 환자 A씨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다이어트약 중독 치료를 위해 입원한 지 17일 만에 숨졌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사인은 '급성 가성 장폐색'으로 추정되었다. 출처: 뉴스1
사건 당시 병원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A씨가 복통을 호소하며 문을 두드리자, 간호조무사와 보호사가 들어와 약을 투여한 후 손발을 침대에 묶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후 A씨는 코피를 흘리며 숨을 헐떡였으나, 의료진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출처: 한겨레
유족들은 병원 측의 부적절한 처치와 관리로 인해 A씨가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양재웅 원장을 포함한 의료진 6명을 유기치사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고소했다. 출처: 연합뉴스
이에 대해 양재웅 원장은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며 유가족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으나, 병원 측의 과실 여부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 입장을 밝혔다. 출처: 서울신문
이 사건은 정신병원 내 환자 관리와 인권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시켰으며, 국가인권위원회는 해당 병원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번 사건으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신 분과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작성하였으며, 다시 한 번 소중한 가족, 친구, 동료를 잃은 아픔에 위로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고인이 되신 분께 평안을 빌며, 그분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1. 의사 개인의 잘못인가, 아니면 전체 정신과 의료 시스템의 문제인가?
2. 정신병동에 입원에서 실시하는 치료란 무엇인가?
우리는 회사를 다니며 이런 억울함을 느끼곤 한다. 실적이 좋으면 모두가 똑같은 성과금 받지만, 실적이 떨어지면 잘못한 사람을 색출해 책임을 묻는 구조. 내가 일궈낸 성과는 공평하게 분배되면서, 문제가 생기면 개인의 책임으로 몰리는 부조리이다. 이번 정신과 환자 사망 사건에서도 유사한 부조리가 작용하고 있지는 않을까?
의사는 국가와 의사협회로부터 ‘면허’를 부여받는다. 이 면허는 그들이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권한을 상징하며, 운전 면허처럼 일정한 기준과 신뢰를 전제로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환자의 사망 같은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과연 그 책임을 오로지 의사 개인에게만 돌리는 것이 타당한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좋을 때는 모두의 의사로서 보호 받고, 불리할 때는 "응, 그건 개인 탓~"으로 돌리는 걸 말한다. 우리의 성과금과 시말서의 관계처럼.
만약 의사들이 각자 다른 진료 방식과 기준을 가진다면 개인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울 청담동의 병원이든 지방 소도시 병원이든 의사가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을 갖추고 비슷한 진료를 제공할 것이라 믿는다. 그런 일관성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인재들이 6년 동안 의대 공부를 하고 인턴과 레지던트까지 거친 후 습득한 전문 지식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우리가 의사를 신뢰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정신과에서 환자를 진단하고 관리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문제로 연결된다.
정신과 병동에 입원할 때, 환자와 그 가족은 그들의 신체적, 정신적 아픔을 이해하고 돌봐줄 치료를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신과 진료와 입원 치료는 “비정상적인 사고”를 교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면서, 환자 개인의 고통과 호소가 무시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아무도 길에서 혼잣말을 하는 노숙자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노숙자가 하는 말의 내용과 상관없이, 노숙자 자체를 비정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 A씨가 복통을 호소할 때, 의료진이 즉각적인 치료나 상담 대신 손발을 묶어버린 이유도 비슷하다. 배가 아프다든지, 어떤 불편함이 있다든지 하는 말도, 그녀가 집에서 구급차를 부르며 호소했다면 당연히 즉각적인 의료적 도움과 치료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에게 진단명을 부여받고 입원까지 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환자'가 된 A씨의 말은 정신이 이상한 노숙자가 서울역에서 중얼거리는 말과 동일하게 치부되는 것이다. 그러니 복통이 너무 심해 몸부림치는 그녀에게 "배가 어떻게 아프세요?"라고 묻지 않고, 손발을 묶어버리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길거리에서 난리치는 사람이 있으면 경찰이 와서 체포해 가길 바란다. 그가 어떤 이유로 뭐가 그렇게 억울하길래 세상에 대고 호소하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 이유와 같다.
다시 말해, 사망까지 이른 그 사건의 본질은 의료 관계자가 그녀가 신체-정서적 고통을 겪고 있다는 판단이 아니라, ‘비정상적 행동’을 한다고 치부한 결과다.
현대의 정신과 치료 과정은 환자의 내면적 아픔을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생물학-생리학적 기준에 맞추어 그들의 증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에 그친다. 정서적 혼란이나 고통을 ‘비정상’으로 분류하고, 약물을 통해 일시적으로 증상을 완화하는 것이다. 혈당 수치가 높으면 혈당 수치를 내리는 약을 처방하고, 반대로 혈당 수치가 낮으면 높인다. 그래서 혈당 수치를 어딘가 중간쯤에 맞추는 것을 치료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내가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하는 메시지 두 가지가 있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에 대해 의문을 갖자.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나 수치가 아니라, 그런 특이한 행동과 수치나 반영하는 마음의 문제가 무엇인지 들여다 보자.
그렇지 않으면 정신과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유만으로 환자들의 호소가 무시되거나, 그들이 겪는 고통이 '미친놈이 미친 소리하는 것'으로 취급되는 일이 앞으로 계속 반복될 것이다.
이번 사건의 의사가 미디어와 유튜브에 자주 출연한 유명인이며, 그가 걸그룹 출신 연예인과 결혼을 앞 둔 상황이라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문제는 이미 전국 곳곳에서 발생해오고 있다. 이는 정신과 의료 관점에서 환자를 대하는 방식 자체에 뿌리 깊은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 제대로 한글도 못 읽는 아이들에게도 정신과 약물이 처방되고, 그런 세대에서 자란 어른은 성인 ADHD라는 진단으로 또 다른(성분은 비슷) 약물이 기다리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번에 사망한 분이 어떤 의사를 만나든 비슷한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면, 사태의 심각함을 체감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이 특정 의료진의 책임을 넘어서, 정신과 치료 전반의 체계와 그 치료에 우리가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참고 자료
https://brunch.co.kr/@zeropartydata/27
https://brunch.co.kr/@zeropartydata/28
https://brunch.co.kr/@zeropartydata/30
https://brunch.co.kr/@zeropartydata/36
https://brunch.co.kr/@zeropartydata/37
https://brunch.co.kr/@zeropartydata/38
https://brunch.co.kr/@zeropartydata/69
https://brunch.co.kr/@zeropartydata/70
https://brunch.co.kr/@zeropartydata/71
https://brunch.co.kr/@zeropartydata/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