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교육청 16차시 강의를 진행하며(11편)
시간과 노동, 그리고 자본가의 이익. 이런 관계를 냉철히 꿰뚫어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년~1883년)였죠. 그는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편에 서서 그들이 어떻게 혹사당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론적으로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자본론』이라는, 아주 두껍고 읽는 용도라기보다는 그저 베개(!)로 쓰기 딱 좋은 책을 써내게 됩니다. 물론 경제학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체계적인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아마도 이 책을 완역본으로 통독한 사람을 만나보기는 정말 어려울 겁니다. 저 또한 앞부분만 조금 읽다 살짝 덮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펴본 적은 없습니다... 물론 해석본으로는 두어 권 정도 읽었습니다.)
칼 마르크스는 천재 중의 천재였습니다. 노동의 가치를 이론적으로 해석, 경제 체계와 흐름을 분석해 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프롤레타리아의 노동과 시간, 그리고 돈과의 상관관계를 세상에 없던 이론으로 발표했지만, 그것은 공장과 같은 일터, 현장이 아닌 조용하기 그지없던 영국박물관에 위치한 그의 전용석에서 였습니다. 『자본론』은 그의 실 경험에 의해 나온 책이 아닌, 오롯이 그의 머리로 분석해 낸 대단한 경제 이론이었기 때문에 세상은 그를 천재라 부르는 겁니다.
그는 평생 글을 쓰고, 신문, 잡지사 등에 칼럼을 연재하며 돈을 벌었는데, 항상 가난(그렇다고 빈민가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절대 (육체)노동을 할 생각(심지어 자신의 자식들이 죽어가는데도 불구하고)은 하지 않았습니다. 태생적으로 유복했던 집안 출신이기도 했지만, 그의 머릿 속에 자신은 글을 써야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사상을 전적으로 믿고 도운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년~1895년)를 만나 수시로 그의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되는데, 만약 엥겔스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마르크스는 없었다고 봐도 되지 않나 싶네요.
『자본론』도 대단한 책이지만, 사상적으로 더 유명한 책은 엥겔스와 같이 쓴 『공산당 선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어본 사람들 또한 많지 않겠지만,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로 시작되는 첫 문장과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로 끝나는 마지막 문장은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은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를 계급 투쟁의 역사로 규정하고, 자본가들에 의해 프롤레타리아는 핍박받고 억압받을 수밖에 없다 강조합니다. 즉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 계급에게는 적은 임금만을 주고 많은 시간들을 부린다 보죠. 그러다보니 시간이 갈수록 자본가 계층은 돈방석에 앉게 되지만, 혹사당한 노동자들은 여전에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한계이며 이러한 체제 내에서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프롤레타리아의 운명은 무한 반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산업혁명으로 만들어진 이러한 부조리한 자본주의 체제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노동자 계급이 대동단결하여 혁명을 일으켜야 하고, 체제 전복을 통해 자본주의가 아닌 공산주의 사회로의 전환을 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공산주의(共産主義) 사회에서는 단어의 뜻대로 모든 사람이 함께 생산(共産)하고, 함께 나눠가짐으로써 계층없는 평등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주장하죠. 한마디로 모든 사람이 잘 사는 사회가 바로 공산주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꿈은 그저 꿈으로만 그치고 말았습니다. 마르크스는 살아생전 자신이 전 생애를 바쳐 연구했던, 그리고 언젠가 이루어질 것이라 굳게 믿었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볼 수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2가지를 꼽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노동 환경의 변화라 할 수 있습니다. 산업혁명 초기에 공장은 쉴 새없이 돌아갔습니다. 대량생산을 위해서는 기계를 멈출 수 없었는데, 기계가 서는 순간 더 이상 자본가의 주머니로 돈이 쏟아져 들어오지 않게 되기 때문이었죠. 그러다보니 자본가는 기계가 멈추는 꼴(!)을 볼 수 없었고, 당연히 사람들의 노동시간 또한 길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본 하루 하루 12시간 이상, 많으면 15시간에서 16시간을 공장에 머물러야만 했죠. 이러한 상황은 인력수급 부족 사태를 초래했고, 결국 어린 아이들까지 동원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 때문에 노동자들의 몸과 마음은 지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피곤와 피로로 인해 공장에서는 끊임없이 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했죠. 이러한 상황은 산업혁명의 발전과 확장에 고무되어 있던 국가에서조차 어쩔 수없이 노동자들의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노동법이 신설되고, 하나씩 법규와 제도들이 정비되었습니다. 물론 제대로 된 노동법이 완성되기까지는 그로부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는 인권의 발견과 보호라는 명제의 시작이라 볼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자본가의 불가피한 각성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란 속담이 있습니다. 자본가의 입장에선 공장과 기계에 대한 투자가 엄청난 부를 만들어주는 도깨비 방망이와도 같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벌면 다시 공장과 기계에 재투자 함으로써 부의 축적을 가속화했죠. 하지만 일정 시간이 흐르며 경쟁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소위 자본가들끼리의 전쟁이 시작된 겁니다. 그동안은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은 물량을 만들어내는가 하는 속도전이라 할 수 있었지만, 경쟁 이후부터는 점차 가격과 품질 또한 판매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죠. 소비자들 또한 어느 정도의 필요 공산품을 갖추게 되면서부터는 전과 같은 소비행태를 보이지 않았고요.
자본가들은 방향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이상 속도전만으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죠. 그러면서 품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어쩔 수없이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해야만 했습니다. 우수한 품질은 재료뿐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마인드와 정성이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었죠. 그 결과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더불어 노동자들의 삶 또한 과거에 비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마음 속으로 준비했던 노동자들의 각오는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고, 몇몇 주도적인 공산주의자들의 열성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열기는 서서히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였습니다. 생산도구를 보유한 자본가, 그리고 아무 것도 가진게 없어 자신의 시간과 노동으로 밥을 해결해야만 하는 노동자의 관계는 여전히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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