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영화 다른 시선(13) -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주 무대인 웰튼 아카데미는 1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와 함께 매해 졸업생 중 75%가 넘는 학생들을 아이비리그(미국 북동부 지역의 8개 사립대학인 하버드, 예일, 펜실베이니아, 프린스턴, 컬럼비아, 브라운, 다트머스, 코넬 대학교를 통틀어 부르는 말)에 진학시킬 정도로 뛰어난 사립 명문학교입니다. 다만 진학률을 너무 중시하기 때문일까요? 학교에서는 전통, 명예, 규율, 최고의 4가지를 내세우고 있는데, 이 안에서 학생들은 개인의 꿈과 희망보다는 명문대 진학을 위한 공부하는 기계로 육성되고 있었죠.
닐 페리(로버트 레오나드 분)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억누를 수 없는 젊은 혈기가 솟구치고 있었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야생마처럼 교내를 질주하곤 합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연극 오디션에 응모하게 되고, 연기를 통해 그토록 찾던 자신의 꿈을 발견하게 되죠.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러한 선택을 용납하지 못한 채 그에게 이렇게 소리치네요.
“넌 하버드에 들어가서 의사가 되어야 해. 너는 내가 꿈도 꾸지 못한 기회를 가진 거야. 시간을 낭비하게 할 수 없어.”
왜 아버지는 이렇게 아들의 길을 정해놓은 채 억압하는 걸까요? 의사는 전 세계적으로 상위층에 속하는 직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돈은 물론 명예까지 가질 수 있는 전문직이라 할 수 있죠. 즉 의사(하버드 출신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을 겁니다)가 되는 것만으로 인생을 편히 그리고 쉽게 살아갈 수 있다 생각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인정하지 않았던 겁니다.
하지만 페리는 이해는 할지언정 동의까지는 못합니다. 머리로는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몰라도 뜨거워진 가슴까지 식힐 수는 없기 때문이었죠.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저승사자와도 같은 아버지에게 항변코자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네요. 그런 그가 간신히 내뱉는 ‘Nothing’이란 말이 영화 내내 참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헤르만 헤세의 저작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 또한 방황하는 청춘입니다. 그는 아버지를 비롯한 교장 선생님, 성직자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채 열심히 공부하여 마침내 원하던 유명 신학교에 무사히 입학하게 됩니다. 하지만 같은 기숙사의 동료이자 시인이기도 했던 헤르만과 엮이게 되며 한스의 생각과 행동은 달라지게 됩니다. 오로지 목표만 바라보며 달려왔던 삶이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지기 시작하죠.
‘수레바퀴’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수레바퀴는 그 역할상 가만히 멈춰 서 있으면 안 되는 도구입니다. 원형인만큼 제 기능을 위해 돌아가야 하고 이동함으로써 최종적으로는 목표지점에 도달해야만 하죠. 이는 마치 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인 증기기관을 연상시킵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작동함으로써 무언가를 계속해 만들어 내야만 하는 그런 이미지 말이죠. 그리고 수레바퀴 아래에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노동자 계급입니다. 인생의 행복이나 의미보다는 쉴 새 없이 일해야만 하는, 그래서 우울하고 힘겨우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계층의 사람들이죠.
“제발 지치지는 말게. 안 그러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 테니까.”
방황하는 한스에게 신학교 교장선생님은 위와 같이 말합니다. 신분상승을 위해 죽을 듯이 달리지 않는 한 수레바퀴 아래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암묵의 협박이나 다름없죠. 하지만 한스는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킨 채 결국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자신의 내면이 원하는 자연과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죠. <수레바퀴 아래서>의 저자인 헤르만 헤세 또한 실제 신학교를 중퇴했다고 하는데요, 한스를 통해 헤세가 강조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바로 수레바퀴 아래와 위의 이분법적 세계가 아닌, 바로 자신의 삶을 시작하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마지막 장면에서 존 키팅 선생은 학생들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떠나는 키팅 선생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 고마움과 존경심의 마음이 엉켜지며 괴로워합니다. 그러다 결국 학생들 마음속에 존재하던 ‘죽은 시인’의 열정이 화산 폭발하듯 그대로 표출됩니다.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가 어느 순간 수레바퀴 아래를 벗어났듯, 학생들 또한 책상 위에 올라서며 이 세상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순리 그대로 따라가진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순간이네요. 맞아요, 의사나 신학자가 된다고 해서 수레바퀴 위에 존재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레바퀴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환상입니다. 우리는 생긴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살면 됩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태어난 이유이자, 살아갈 목적이기도 하니까요.
※ 이 글은 2022년에 출간될 책 <같은 영화 다른 시선(가제)>의 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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