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최고조에 달했던 날, 하루 종일 뒹굴거리던 지우가 방으로 들어갔다. 지우 방은 우리 집 에어컨의 커버 범위가 벗어난 폭염특보지역이다. 그래서 곧 나올 줄 알았는데 한참을 있었다. 바닥과 벽을 아스팔트로 발라놓은 것처럼, 그 방은 푹푹 쪄서 달걀에서 타조도 태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우야 더운데서 뭐해? 빨리 나와" 했지만, "잠시만~"이란 대답만 들려올 뿐이었다.
지우를 제외한 우린 무풍 청정 에어컨 바람 밑에서 수박을 먹으며 피서와 같은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지우가 여름방에서 가을거실로 나오며 소리쳤다.
"아빠, 나 책 만들었어"
우리 딸, 정말 할 게 없었구나.
평소 이런저런 글쓰기를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얼마나 할 게 없었으면 시키지도 않았는데 책을 만들었다니. 난 식도를 시원하게 긁으며 내려가는 마지막 수박 조각을 느끼며 지우의 책을 한 손으로 받았다. 두 손으로 받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책을 전하는 지우의 얼굴에서 평소 보기 힘든 겸손 한 스푼, 수줍음 두 스푼과, 자긍심 세 스푼이 보였다. 아, 진지하게 쓴 거구나.
난 자세를 고쳐 앉고 안경을 가져온 후 지우의 첫 번째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우의 허락을 받아 그 글을 여기에 소개한다.
와우,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마지막 '작가의 말'이 내겐 너무 감동이었다.
지우는 아빠를 진짜 작가라고 인정해주구나. "우리 아빠가 작가라서..."
그리고 11살 아이의 입에서 처음으로 꿈이란 단어가 나왔다. 그리고 그 꿈이 무려 작가라니.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우리 딸은 내일 바로 바뀔지언정, 오늘은 분명한 꿈이 있는 소녀였다. 게다가 우리 딸의 첫 꿈에 내가 조금이나마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니, 내 머릿속 종양들마저 살짝 감동해서 내 몸에서 철수해버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읽어봤다. 우리 딸, 내가 4학년 때보다 훨씬 낫구나. 그리고 나만 보기 아까워 온 가족이 돌려가며 읽었다.
우리 딸은 지금껏 철저한 이과형 삶을 살아왔는데, 오늘만큼은 우리 가족에게 '하와이 패밀리' 작가를 제치고 최고의 작가로 등극했다. 물론 스마트폰도 없고 카카오톡도 몇 번 안 써본 아이가 카카오톡을 제법 디테일하게 묘사한 것을 보고 역시 이과형이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고래를 춤추게 하려면 '너 정말 크구나' 따위의 칭찬이 필요하겠지만, 우리 딸에겐 온 가족들이 엄지를 치켜세워주고 뜨겁게 허그해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넌 이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야.
그래서 이 책을 기념하고 싶었다. 본인은 두 번째 책이라고 하는데, 첫 번째 책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지금은 차디찬 분리수거장에 있을 듯하다. 그래서 이 책이 지우의 첫 번째 작품이다. 책 상태를 보아하니, 조만간 분실 혹은 파손이 확실시되어 보관의 필요성도 느꼈다.
지금 지우는 가족들의 칭찬에 자신감을 얻고 두 번째 작품을 쓰고 있다. 제목부터 벌써 성장했다. "엄마는 외계인~!" 이 작품도 기대된다.
초등학생이 꿈이 있고,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학교를 키자니아처럼 다양한 직업을 체험해보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고, 꿈을 꾸는 곳으로 만들어 준 새음학교 덕분이다. 억지로 갖다 붙이는 것 같지만, 새음 학교 아이들은 항상 꿈을 꾸며 살아간다. 그 꿈이 무엇이건, 선생님과 학부모, 친구들이 언제나 응원해준다.
비슷한 맥락으로 지우의 친구인 윤서 어머니께서 아침방송에 나와서 새음학교에서 꿈을 찾아가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영상이 있다. 역시 방송인은 전달력이 다르다. 내 글 13편을 모아놓은 것보다 더 전달을 잘하신다. 그래서 두레학교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는 아래 영상을 함께 공유한다.
http://programs.sbs.co.kr/culture/goodmorning/clip/55599/22000210549
작가건 건축가 건, 꿈을 찾고 싶은 아이들은 모두 두레학교로 오세요.
https://brunch.co.kr/@boxerstyle/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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