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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Jul 21. 2024

어째서 우리는 그런 기술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아내가 큰 애를 위해 <10대를 위한 총균쇠 수업>을 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아직 아이가 혼자 읽기에는 무리이지만 언젠가 읽을 수 있을 때가 오면,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래전에 사두기만 하고 읽지 않고 있던 <총, 균, 쇠>를 책을 펼쳤습니다. 짬짬이 읽을 생각이라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러한 속도를 유지하는 중에도 저에게 필요한 내용을 소화하여 정리할 목적으로 글을 씁니다.


<오리진>을 떠올리고 '결정적 지식'과 만나는 <총, 균, 쇠>

먼저 한글판 특별 서문에서 눈에 띄는 점이 있었습니다. 크게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지리적 조건'을 중심으로 한 역사 해석이란 점입니다. 2년쯤 전에 <우리는 판의 활동이 낳은 자식이다>를 쓸 무렵 <오리진>에서 바로 그렇게 '지리적 조건'이 인류에 미친 영향을 재미있게 배웠는데, <총, 균, 쇠>도 그러한 맥락의 책이란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눈에 띈 내용은 '지난 13000년간'이란 표현입니다. 박문호 박사님을 통해 '결정적 지식' 개념을 배운 다음에는 이런 식의 연도를 보면 나도 모르게 '결정적 지식인가?'에 해당하는 질문으로 머릿속이 이렇게 속말을 합니다.

외울 가치가 있는 연도일까?


한국판 서문에 보이는 한국의 지리적 조건

그리고 다음 세 번째는 한국판 특별 서문 다운 내용의 등장입니다.

한국은 중국과 가까이 이웃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인접 '지리적 조건'을 드러내는 두 개의 포기말[1]이 눈에 띄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문명 중심지 중 하나인 황허 문명을 일으켰고, 그 성과의 대부분이 한국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중략> 아직도 많은 일본인들이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사실이지만 지리적 조건은 한국인들이 일본 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했습니다.

더불어 인접국과 구분할 수 있는 우리만의 지리적 조건을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반도의 좁고 긴 지리적 특성

황해라는 자연의 장벽

땅덩이 대부분이 중국보다 북쪽에 위치한 기후적 장벽

또 한국을 둘러싼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풍부한 어장과 해산물을 지닌 바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토기 문화와 정주 부락을 이룩했던 선사 시대의 인간 사회를 부양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한편, 정주 부락이란 표현이 낯설어 구글링과 사전 찾기를 했습니다. 먼저 사전 풀이를 볼까요?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삶.  

그리고 구글링 결과로 찾은 다음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일반적으로 신석기 혁명이란 개념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나서 수렵채집민이 마을을 이루고 정주하면서 씨를 뿌려 가꾸고, 동물을 기르고, 간석기토기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생각에 바탕을 둔다. 그러나 이런 모든 변화가 신석기시대의 시작과 함께 한꺼번에 나타난 것은 아니다.

정주란 정착 생활을 하던 시기의 생활양식을 담고 있는 표현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 세계의 불평등에 대한 의문을 푼다

이어서 나오는 프롤로그 그러니까 한국판이 아닌 공통 서문의 제목은 '현대 세계의 불평등에 대한 의문을 푼다'입니다. 그리고 요약으로 제시한 다발말[2]에서 첫 포기말은 제목에 대한 결론의 요약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마침 이 내용을 읽기 직전에 들은 <월말김어준> 4월호의 박문호 박사님 강의 중에 있던 연관성 있는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언어로 대표되는 인간의 상징은 우연의 결과물이란 점입니다. 위 포기말의 표현과 연결해 볼까요? 상징은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환경적 차이에 영향을 받죠. 우리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우리가 쓰는 상징이 결정되는 면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프롤로그 내용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포기말은 다음 내용입니다.

문자와 철기를 가진 사회들은 그런 편리하고 강한 힘을 발휘하는 이기利器를 갖지 못한 다른 사회들을 정복하거나 멸망시켰기 때문이다.

저자가 풀겠다고 하는 역사적 불균형을 요약하는 포기말(문장)입니다. 그리고 이는 저자가 뉴기니에서 만난 얄리의 실제 질문이기도 합니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뉴기니에서는 그러한 물건들을 통틀어 ‘화물'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다른 형태의 불평등과 함께 합니다.

대부분의 백인 이주민은 '원시적'이라는 이유로 뉴기니인을 노골적으로 경멸했다. 그들은 1972년에도 여전히 백인 '나으리'로 지칭되고 있었으며 그들 중에서 가장 무능한 백인이라도 뉴기니인들보다는 훨씬 더 높은 생활 수준을 누릴 수 있었다.


거대한 질문에 대한 대담한 저술

<사피엔스>를 읽기 전에는 이러한 거대 담론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출간 순서는 반대지만, 저는 확실히 <사피엔스>에서 거대한 질문과 담론에 처음 감덩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거대한 질문을 던지고 대담하게 밝히고 써 내려가는 모습에 <사피엔스>때처럼 경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간단해 보여도 얄리의 질문에 대답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역사학자들도 그 문제의 해답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으며 이제는 아예 그런 질문을 던지지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략> 현대 세계의 그러한 모든 문제점들 이 결국은 얄리의 질문에 내포되어 있는 상이한 역사적 궤적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양한 관점의 연구를 종합해서 결국은 질문에 대한 답을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구조적 어려움에 대해서도 저자는 다음과 같이 담담하게 말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여러 명의 저자가 공동 작업을 해야 할 일처럼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통일된 종합 이론을 개발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런 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일을 시작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비록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저자는 단 한 명이어야 한다. <중략> 진화생물학이라는 학문은 실험실 과학과는 다른 방 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과학이다. 그 경험 덕분에 인류사를 위한 과학적 접근 방법을 찾는 일에 따르는 어려움들도 나에게는 이미 낯설지 않았다.


문명 연구의 동기는 문명의 우위 찬양이 아닌 단순한 역사 이해

그리고 저자는 자신의 연구 동기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사실 나에게는 산업화된 국가가 수렵 채집민 부족보다 낫다' 든지, 수렵 채집민의 생활 방식을 버리고 철 중심의 국가로 전환하는 것이 '진보' 라든지, 또 그와 같은 변화가 인류의 행복을 증대시켰다든 지 하는 따위의 생각은 전혀 없다.

아직도 곳곳에서 어렵지 않기 인종 차별을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차별을 만날 수 있는 상황에서 저자의 다발말은 반갑기까지 합니다.

역사의 광범위한 경향에 대하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어떤 상세하고 설득력 있는 설명이 나올 때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인종차별적인 생물학적 설명이 정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이 책을 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서문부터 이렇게 밝힙니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더불어 역사학적 설명의 목적에 대해서도 독자를 위해 설명합니다.

역사학적 설명의 목적은 그 설명 자체와는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어떤 현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러한 결과를 반복하거나 영속시키기보다는 변화시키려는 용도로 사용될 때가 더 많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살인자나 강간범의 심리를 이해하려 하고, 사회 역사학자들은 대량 학살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이해하려 하고, 의사들은 질병의 원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한 연구자들은 결코 살인, 강간, 종족 학살, 질병 등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원인을 이해 함으로써 그 같은 인과 관계의 사슬을 끊고자 한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단락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3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36. 매혹적인 오락거리라는 난적 상대하기

37. 고통을 감싸 안기 혹은 감정 과학자가 되기

38. 서툴게라도 감정 과학자로 입문하기

39. 정확한 관찰과 조사는 감정 과학자의 기본일 텐데

40. 우리에게는 감정을 표현할 자유가 있다

41. 감정은 정보이다

42. 내 감정을 살피고 태도를 가꾸고 습관을 만들어가는 일

43. 마음챙김의 종으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도록

44. 이 길을 통해 내 최고의 열망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45. 두려움에 찬 집착을 버리기 위해 자신의 소를 놓아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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