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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Jul 08. 2024

우리에게는 감정을 표현할 자유가 있다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지난 글 그리고 <아이가 슬퍼하는 순간에 감정 과학자로 변신하기>에서 소개한 <감정의 발견> 1장 '감정을 표현하자'를 읽고 생각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아직 굿 리스너와는 거리가 먼 나를 떠올리다

인상 깊었던 구절인데, 제가 못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마빈 삼촌은 그저 들어주기만 했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해 주었다.

이미 10여 년 전에 제가 경청을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정도가 심해 놀란 일이 떠올랐습니다. 최근에 어딘가에서 '굿 리스너'란 말을 들은 기억이 있는데, 제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 귀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책에는 굿 리스너를 설명하는 전형적인 장면이 묘사됩니다.

그 사소한 질문 하나가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 중요한 건 질문 자체가 아니라, 삼촌이 내게 질문한 방식이었다. 그 순간 나는 삼촌이 진심으로 내 대답을 궁금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삼촌은 내가 느끼는 감정을 섣불리 평가하지 않았다. 마음을 열고 공감하며 귀를 기울여 주었다. 내 감정을 해석하거나 설명하려 하지도 않았다.

돌아보면 <당신이 옳다>를 반복해서 읽고 나서야 '충초평판'의 해로움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제 상태 자체가 굿 리스너가 되기 힘든 이유를 말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말한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라는 말은 서문의 포기말(문장)에도 드러납니다.

나는 학자로서의 인생을 이 문제에 바쳤다.

어쩌면 그의 평생의 노력의 일부가 담긴 이 책이 저를 굿 리스너가 되도록 도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기분을 살피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질문

앞서 질문은 빠트리고 인용했네요. 그것은 바로 지금 기분이 어떠냐는 사소한 질문입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불안에 일상을 압도되지 않으려는 노력 그리고 갑자기 찾아오는 활력을 느끼는 순간들의 기억입니다. 어색하지만 스스로 기분을 살피는 일을 이제라도 막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가족들을 향해서도 이런 질문을 던지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관계가 오래된 어머니와 아내에게는 아직 실천이 어렵네요. 다행스럽게 두 아이에게는 이를 실행하고 작게나마 바로 효과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번 처음 인용한 다발말[1]을 읽어봅니다. 이번에 주목한 표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삼촌이 내게 질문한 방식

진심으로 내 대답을 궁금해한다는 느낌

내가 느끼는 감정을 섣불리 평가하지 않았다

마음을 열고 공감하며 귀를 기울여 주었다

내 감정을 해석하거나 설명하려 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기분을 살피는 일과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일과 공감은 같은 뜻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처음 해 봅니다.


여기에 추가로 덧붙이고 싶은 표현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들은 내가 보낸 신호를 놓쳤거나 무시했다.

굿 리스너는 말만 듣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숨기는 일은 자기 보호 본능이다

그리고 굿 리스너와 동떠러진 듯이 느껴졌던 <당신이 옳다>의 감정 치유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단서를 제공하는 포기말이 등장합니다.

아무리 힘든 감정이라도 그 정체를 파악하고 표현하며 이를 제어할 수 있다면 긍정적이고 만족스럽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전혀 다른 분야에 관해 썼던 글의 내용도 이해를 돕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위 포기말에서 감정의 정체를 파악해야 다룰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최근 개발자가 비즈니스 소통을 할 때, 코드의 변화가 가져올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예시를 들어주지 않으면 효과를 얻기 힘들다고 말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인식의 대상과 주제가 다르지만 같은 이치라고 느껴집니다.


반면에 감정에 대한 무시는 무지를 키운 듯합니다.

사람들은 감정 자체가 아니라 감정 공유를 어려워한다. 관찰 결과, 많은 이들이 감정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지 못했다.

감정 표현할 단어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기는커녕 앞서 썼듯이 무드 미터를 보고서도 현재 감정을 고르기도 어려웠습니다. 저자는 인터넷과 검색 엔진에 의존하는 빠른(?) 삶의 세태도 문제 삼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답을 찾기 위해 차분히 내면을 들여다보거나 서로의 마음을 살피며 잠시 숨을 고르지 않는다. 하지만 시리도 모든 것을 알 지는 못한다. 어째서 당신의 아이가 절망하거나 신이 났는지. 어째서 당신이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이 최근에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지. 당신이 왜 만성적인 가벼운 불안증을 떨쳐 내지 못하는지, 구글 검색으로는 알아낼 수 없다.

그렇습니다. 감정이야말로 생명체 고유의 무엇이란 생각이 사무칩니다.

그 모든 감정이 자신의 약점과 직결되는데 어느 누가 드러내고 싶어 할까? 약점을 감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야생 동물조차 그렇게 한다. 그야말로 자기 보호 본능인 셈이다.

누군가는 아니, 적어도 자신은 스스로가 감정을 숨기는 입장에 공감해 주어야 합니다.


감정을 다루는 법을 익히자

머리말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이 떠오릅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정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한다. <중략>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책에서 부록으로 제시한 무드 미터에 있는 100개 감정 중에서 지금 저의 감정이 무엇인지 찾기 곤란해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더불어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떠올릴 때, 아내가 불편했을 수 있겠다는 공감으로 번져갔던 일도 기억합니다. 그래서 저자가 말한 '사소한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할 줄 알고, 가까운 사람부터 시작해서 가급적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 봅니다.


한편, 감정 표현을 고대했던 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그 부분만큼은 굉장히 생생합니다.

기분은 어떤가? <중략> 어린 시절의 나는 누군가가 내게 저 질문을 해 주기를 바랐다. 질문을 던진 사람이 진심으로 내 대답을 궁금해하고 내가 털어놓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를 원했다.

그리고 저자는 이후에 자신의 부모님들도 지금의 저와 마찬가지로 감정을 다루는 법을 전혀 몰랐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그 결과로 이 책이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1장 말미를 이렇게 장식합니다.

우리는 삶이 건강한 관계와 열정, 목적의식으로 채워지기를 바란다. 충분히 이룰 수 있는 바람이다. <중략> 그 첫걸음은 바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별일을 겪으며 무상하게 감정이 들고 나는 삶

'요즘 어때?'란 질문에 대한 반사적인 대답을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이 질문은 인간의 가장 큰 역설 가운데 하나를 잘 보여 준다."어떻게 지내?'라는 질문을 다양한 형태로 몇 번이고 묻는다는 것은 이 문제를 그만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하지만 누구도 솔직한 대답을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으며 그렇게 답하지도 않는다.

넉 달 전에 있던 사건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그때 주고받은 대화가 꽤 인상이 깊었는지 <일상은 단편이 아니라 선물처럼 주어지는 시간의 연속이다>라는 글의 말미에 해당 에피소드를 남겨 두었습니다.

얼마 전에 친한 동생과 통화를 하는데, 그가 별일 없냐고 물었습니다. 일상이 온통 별일인데, 뭐라고 말해야 하나 싶어서 어중간하게 답을 했습니다. 놀랍게도 그가 제가 바탕에 둔 일상의 의미를 말로 꺼냈습니다. 일상이란 별일을 겪고 별일을 만드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최소한 일상을 지루한 일로 취급하거나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한 번쯤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읽은 다음 다발말에서는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신체적 건강을 제외하면 감정 상태를 어떻게 유지하는지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감정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온갖 부분에 구석구석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감정을 다룰 때면 항상 조심스러워한다. 내면세계는 우리 자신에게도 미지의 영역이며 섣불리 탐색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큰 공간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나치게 욕망만을 추종하느라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현실과 현존을 부정할 때 나쁜 감정에 휩싸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욕망 이전에 더 소중한 것을 욕망하는 나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란 점도 깨닫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습관으로 욕망은 중시하고 감정은 무시해 온 것은 아닌가 생각을 떠올립니다.


감정은 무시해서도, 억눌러서도 안 된다

쉽게 공감이 되는 것을 보면 다수가 다음과 같이 행동하는 모양입니다.

우리는 감정을 중시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감정이 직장, 가정, 그 밖의 모든 곳에서 갈등을 일으키며 생산성을 떨어뜨린다고 여긴다.

하지만, 감정 무시가 해결책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감정은 무시한다고 해서 제풀에 사라지지 않는다. 저절로 해소되지도 않는다. 언젠가 갚아야 하는 빚처럼 차곡차곡 쌓일 따름이다. 비단 불쾌한 감정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좋은 일이 있을 때도 기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저 그 감정을 즐길 뿐 깊이 살펴보지 않는다. 이 역시 잘못된 일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긍정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편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감정은 일종의 정보이다. 한 개인이 무언가를 경험할 때 내면에서 어떤 메시지가 발생하는지를 전하는 뉴스 보도와 비슷하다. 이 정보에 접근하여 그 의미를 파악하면 가장 적절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다음 포기말을 읽을 때는 '내 감정도 식별하지 못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감정과 그 발생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2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26. 문제의 근원은 대부분 당신 안에 있다

27. 지금 이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게 하는 힘

28. 어떻게 내가 무엇을 모른다는 것을 알 것인가?

29. 문제의 궁극적 근원은 대부분 어떤 사람의 욕망이다

30. '어디'라고 쓰고 '누구'라고 읽는다

31. 문제의 인식과 문제의 정의는 전혀 다른 일이다

32. 필요로 하는 것을 갖기 전에는 뭐가 필요한지 모른다

33. 내가 정말로 해결안을 원하는지 보지 못하고 하는 일들

34. 고통에 먹이 주기를 피하기 위한 직시(直視)

35. 몸과 마음을 하나로 하기 위한 가장 작은 실천부터

36. 매혹적인 오락거리라는 난적 상대하기

37. 고통을 감싸 안기 혹은 감정 과학자가 되기

38. 서툴게라도 감정 과학자로 입문하기

39. 정확한 관찰과 조사는 감정 과학자의 기본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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