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와 경제를 배우는 수요일
지난 글에 이어 <도시의 승리> 서문에서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생각을 글로 씁니다.
저자는 환경운동자들의 무지(?)를 강력히 비판하는 듯합니다.
우리는 환경운동자들의 이해력이 뒤떨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맨해튼과 런던과 상하이 시내는 교외 주택지가 아니지만 진정한 환경의 친구다.
맨해튼과 런던을 가 보지 않았지만, 상해는 2016년 방문할 때에도 이미 전기차 비중이 높은 친환경 도시였습니다.
일반 교외 주택지의 환경 발자국(탄소 발자국)이 300밀리미터의 하이킹 신발이라면, 뉴욕 아파트의 환경 발자국은 지미추(구두 브랜드)에서 나온 200밀리미터의 스파이크힐(아주 가늘고 높은 굽) 구두에 불과하다. 전통적인 도시에서는 운전을 많이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탄소 배출량이 더 적다.
저자의 환경운동 양상 비난은 계속됩니다.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라는 환경 운동가들의 슬로건만큼 멍청한 슬로건은 별로 없다. 좋은 환경보호 운동에는 범세계적 차원의 시각과 행동이 필요하지. 건설업체들을 몰아내려는 편협한 지역주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환경운동 하는 분들을 잘 모르는 터라 이러한 비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환경운동가들과 달리(?) 인구 비중과 경제 발전 속도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두 나라의 탄소 배출량을 중요한 지표로 꼽습니다.
중국과 인도의 1인당 탄소 배출량이 미국의 1인당 탄소 배출량 수준으로 높아진다면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은 139퍼센트 늘어날 것이다. 만일 그들의 탄소 배출량이 프랑스 수준에서 멈춘다면,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은 불과 30퍼센트만 늘어날 것이다. 당연히 중국과 인도 등의 국가들에서 운전과 도시화 패턴은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환경 문제가 될 것이다.
환경운동가들을 비난하는 이유를 알 듯도 합니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중국의 전기차 비중이 내연기관을 이미 넘어섰다는 사실입니다.[1]
진실이라는 말은 흡사 <팩트풀니스>를 연상시킵니다.
아이디어가 우리가 사는 시대에 통용되는 화폐라면, 그러한 아이디어에 맞춰 적절한 집을 짓는 것이 우리의 집단적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인간의 협력을 통해서 나오는 힘은 문명의 발전을 가져온 가장 중요한 진실이자 도시가 존재하는 주된 이유이다. 우리의 도시를 이해하고, 도시에 대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러한 진실에 집착하고 해로운 신화를 배격해야 한다.
과학적 태도를 갖자는 말로 들리기도 하고요.
우리는 환경보호 운동이 나무들 주위에서 살자는 것이고 도시인들은 항상 도시의 물리적 과거를 보존하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는 관점을 배격해야 한다.
저자가 겨냥하는 환경운동가들은 유럽의 보수적 도시 정책을 포함하는 듯합니다. 이 쪽은 배경 지식과 경험이 너무 없어서 추정조차 어렵네요. 그러나, 굉장히 합리적인 논리와 수려한 문장을 구사하는 저자가 날 선 비난을 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선호하는 주택 소유의 우상화 활동과 함께 시골 마을을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짓을 중단해야 한다. 우리는 장거리 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인해서 서로 지척에 머물고 싶은 우리의 바람과 욕구가 약화될 것이라는 단순한 시각을 버려야 한다. 특히 우리는 도시를 도시에 있는 건물로만 보려는 경향에서 벗어나고, 진정한 도시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인간의 체취로 이루어져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마지막의 '진정한 도시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인간의 체취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은 멋집니다. 다만, 선동하는 수준의 날 선 비난 뒤에 등장하는 탓에 다소 논리적 비약이란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죠. 여기까지가 서론을 읽고 생각을 기록한 내용의 끝입니다.
[1] 다음 프롬프트를 사용하여 얻은 결과이며 참조 기사 링크입니다.
프롬프트: 중국에서 내연 기관 대비 전기차 비중이 50%를 넘어섰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는데, 이에 상응하는 결과를 찾을 수 있나요?
(2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21. 디지털 마약 비유 때문에 살펴본 애플 비전 프로
23. <Tidy First?> 번역이 옵션 개념을 가르치다
29. 도시는 번영과 행복의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