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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Jan 30. 2024

스키장에서 생긴 일과 과도한 분업 현장의 대안

투자와 경제를 배우는 수요일

스키장에서 생긴 일

스키장에서 가족끼리 푸드코드에 갔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데, 알바생으로 보이는 종업원이 바로 준다며 번호표를 생략했습니다. 그러더니 커피를 내리다 말고 옆쪽 주방에서 벌어지는 대화에 끼어 들어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짜증을 참지 못하고 '커피 안 주나요?'라고 물었더니,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애매하게 답을 하며 돌아와서 커피를 전해 주면서 ARS 마냥 기계적으로 '컵 홀더와 마개'에 대한 안내를 했습니다.


사실은 전날에도 슬로프에서 아내와 제가 모두 일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냈습니다. 저희 아이는 아빠가 그렇게 화내는 모습을 2년 만에 봤다고 합니다.[1]


세 곳에서 만난 기계적인 종업원들의 특징은 동일했습니다.

20대 초반의 여성

공지사항에 있는 문구를 읽듯이 주어진 사항만 반복해서 말합니다.


리프트를 타는데 아이가 스키 강사를 스키장 주인으로 알았습니다. 그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는데 짐작해 보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리프트를 탈 때 모두 줄을 서는데 강사와 교습생은 급행 통로로 끼어드는 모습에서 힘을 느꼈다

강사는 스키장에서 아빠가 회사에서 일하는 것처럼 돈을 번다고 했더니, 직장이 그곳이라는 뜻을 주인의 의미로 확대 해석했다

위 추론은 정답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런 대화를 하면서 머릿속에 그린 그림이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이니까요.


스키장의 운영 현실에 대한 추론

계속 글을 쓰기에 앞서 이 글은 기사 수준의 취재로 만들어진 글은 아닌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과 추론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2] 보통 스키장은 대규모이고 재벌에 준하는 그룹사의 자회사인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그러니 매니저에게 현장을 위임하겠죠.

그런데 이번 스키장 방문 3박 4일 동안 매니저 같은 사람은 딱 1명 만났습니다.[3] 하지만, 그 매니저도 리조트 숙소의 실태는 잘 모르는 것이 드러나는 듯한 총체적으로만 옳은 답변을 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추론해 보면 매니저는 계약직이나 알바 관리가 주요 업무일 수 있겠다는 가정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리조트의 숙소와 외부 위탁 운영을 맡기지 않고 직영으로 운영하는 식당이나 편의시설, 슬로프 직원, 장비 대여점 직원 등은 넓게 분산되어 각자 손님을 응대하는 분업 형태의 작업장이 됩니다. 그들이 정말로 단기 고용에 그치는 알바라면 손님의 전체적인 편익에 대해 고민하기에는 직무 경험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급 직원이라면 그들의 굳이 범위 밖의 손님의 편익에 대해 그들의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 자체를 갖기 힘듭니다. 결국 이익에서 인건비 규모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수도 있겠다는 의심을 하게 합니다.


의심의 동기는 역시나 1박에 한번 꼴로 화를 내거나 매우 기분이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쓰레기봉투를 처분하며

한편, 첫날은 리조트 내의 호텔에 묵었다가 연장을 하면서 비용을 아끼려고 콘도형 숙소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체크 아웃을 하는데 엘리베이터 옆에서 '쓰레기 분리수거 안내'를 보았습니다. 아내가 객실 청소료 20,000원을 가리키며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고, 저는 묶었던 방으로 돌아가 쓰레기를 들고 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를 왜 미리 못 봤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몇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숙소 어딘가에 설명이 있었겠지만 부부가 모두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체크인할 때 설명을 하지 않음

비상계단을 지날 일이 없어 분리수거함을 보지 못함

체크인하는 곳과 각 동이 차로 이동해야 할 정도로 워낙 멀다 보니 청소 직원과 프런트 직원도 소통이 거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추측한 분업형 현장 대응 기조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강해지는 사건이었습니다.


인건비 낮추는 데 최적화 한 직무 현장

청소는 쉬웠습니다. 사용자가 청소하게 하려면 쉬워야 합니다. 인터넷 사업으로 치면 UCC 혹은 UGC 이니까요. 그래서 쓰레기봉투 3개만 걷어 오면 끝났습니다. 일이 매우 모듈화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치로 보였습니다.

반면에 분리수거의 고려하고 PET병은 봉투 끝에 모아 두었는데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빼고는 모두 일반 쓰레기통이었습니다.


단순한 일은 AI가 하듯, 힘이 부족하면 로봇이 보조한다

이러한 경험은 CES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서 다음 내용이 가장 눈에 띄게 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일본 기업 이노피스의 머슬수트는 착용하면 25kg의 무게를 더 들 수 있다고 해요. 슈트의 무게는 3.8kg. 근데 신기한 건 여기에 배터리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공기튜브를 이용해서 인공근육을 만들어주는 형태로 힘을 더 해준다고 해요. 일본의 고령화로 인한 인력 부족 문제를 이 머슬슈트로 해결하고자 한다고!

이런 모습이라고 합니다.

스키장에서 확인한 고객 지향성이 매우 떨어지는 분업 방식은 지속되기 힘들어 보였습니다. 누군가 새로운 패러다임의 해법을 보여주면 한순간에 산불처럼 번져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CES의 프로토타입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분명 그런 미래가 오긴 하겠다는 생각을 유도했습니다.


주석

[1] 화를 내고 난 후에 제가 감정을 참지 못하고 언사가 지나친 점을 반성하자 아이가 '누구나 그럴 수 있다'라고 저를 위로하며 아빠는 다시 전처럼 화를 내지 않는 사람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2년쯤 있다가 화를 낼 거라고 예언하듯 말했습니다.

[2] 그에 따라 오류가 있으면 지적해 주시면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3] 제가 직원들의 신분을 정확히 조사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매니저라 함은 자기가 하는 일을 분명하게 숙지하고 있고, 제가 질문을 한 내용에 대해 답을 할 만한 전반적인 직무 이해도를 갖춘 사람을 말합니다. 또한, 알바란 표현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제가 진짜로 아르바이트 혹은 계약직인지 제가 확인한 바 없습니다. 그저 제가 해당 직원에게 예외적인 사항을 질문했을 때, 자기가 아는 내용을 반복해서 말할 뿐, 다른 조치를 하지 못하는 경우에 알바로 지칭합니다.


지난 투자와 경제를 배우는 수요일 연재

1. 대한민국 경제 적신호에 관심을 두기

2. 북미 충전 표준이 된 테슬라 방식, CCS2, GB/T

3. 돈의 흐름을 읽고 배운 내용

4. 에코프로 사고 나서 알게 된 사실들

5. 주식 투자를 위한 최애 유튜브 채널

6. 반도체 시장 구성에 대해 배우다

7. 반도체 생산 시장의 4대 구성

8.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는 분쟁

9. 마그니피선트7 그리고 주춤하는 전기차 시장

10. 오픈AI의 노선 투쟁과 MS의 승리

11. 바이든-시진핑 양자 회담과 양안 전쟁

12. 샘 알트먼의 복귀와 오픈AI의 방향 전환

13. 비노드 코슬라가 말하는 '투자받는 피칭을 하는 법'

14. 드디어 공개된 구글 GEMINI

15. 인공지능이 만든 반도체 시장의 변화

16. IT 구직 불패의 시대는 지나고...

17. AI 쓰임새를 찾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18. 새마을 운동은 잊고 지식 노동 생산성을 고민하자

19. Apple: 혁신의 끝에 도달한 유틸리티 컴퓨팅 업자

20. 멀티모달리티 AI의 표준화와 CES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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