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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Oct 02. 2024

도시는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교훈

투자와 경제를 배우는 수요일

지난 글에 이어 <도시의 승리> 서문에서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생각을 글로 씁니다.


도시의 인구 밀집은 노동력이 아닌 혁신 엔진

산업화 시대에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에 사람들이 몰렸지만 이제는 그런 현상이 바뀌었고, 이를 모두 아울러 경제학자의 시각으로 보려면 '혁신 능력'이라는 관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날 방갈로르와 뉴욕과 런던은 모두 혁신 능력에 '의존'하고 있다. 엔지니어와 디자이너와 중개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지식의 전파는 화가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아이디어의 전파와 동일하며, 도시의 인접성은 오랫동안 그런 과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 왔다.

개인적으로 중요한 관심사와 연결해 보면, 제 아이들의 성장과 도시의 연관성을 찾은 듯합니다. 아이들이 혁신하는 힘을 기르려면 도시 생활이 필요하군요. 흔히들 말하는 학군이 아니라 혁신 능력을 제공하는 도시의 힘을 맛보고 기를 필요가 있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있습니다.


저자는 귀에 익숙한 밀집이라는 말 대신에 도시의 인접성이라고 표현합니다.

지난 수세기 동안에 혁신은 번잡한 도시 거리들을 가로질러 사람과 사람 사이로 확산됐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천재 예술가들이 크게 늘어난 현상은 15세기 피렌체의 화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선원근법(linear perspective: 르네상스 이후 보편화된 시각 원리로써, 화면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소실점으로 수렴되는 것)의 기하학을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자신이 깨달은 지식을 친구인 도나텔로에게 전수했고, 도나텔로는 얕은 돋을새김으로 만든 조각상에 선원근법을 도입했다. 두 사람의 친구인 마사초는 선원근법을 그림에 도입했다. 피렌체의 예술적 혁신들은 도시 집중화가 가져온 영광스러운 부대 효과였다.

물리적으로는 기체에 쓰는 '확산'이라는 표현이 아이디어가 내용과 형상을 변화무쌍하게 바꾸어 가는 일을 묘사할 때는 적격이란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포기말(=문장)은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예술적 혁신들은 도시 집중화가 가져온 영광스러운 부대 효과


산업의 다양성, 기업가 정신, 그리고 교육은 혁신을 만든다

하지만, 모든 도시가 혁신을 이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도시는 소규모 기업들과 숙련된 시민들이 많을 때 번성한다. 디트로이트는 서로 연결된 소규모 발명가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공간이었으며, 그런 재능 있는 기업인들 중의 한 사람이 헨리 포드였다. 그러나 포드가 대형 아이디어로 화려한 성공을 거두자 그러한 질서, 즉 보다 혁신적인 도시가 파괴되었다.

다양한 유기체로 구성된 형상이 소수의 개체들로 변모하면 혁신을 만들어 내는 동력이 사라지는 모양입니다.

20세기 디트로이트가 성장하자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수십만 명의 근로자들이 수많은 공장들로 몰려들었고, 공장들은 도시와 세계로부터 격리된 요새로 변했다. 산업의 다양성, 기업가 정신, 그리고 교육은 혁신을 만들지만 디트로이트 모델은 도시의 쇠퇴로 이어졌다. 산업 도시의 시대는 적어도 서양에서는 끝났다.

울산이나 포항과 같이 계획 경제 시절에 집중적으로 육성한 도시들이 떠오릅니다. 그들도 다양성과 같은 동력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쇠락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닐까 상상해 봅다.


'건물'이 아닌 '인간' 중심의 도시 개혁

'건물이 아닌 인간 중심의 도시 개혁'이라는 소제목은 토건 세력이 언론을 장악한 듯한 대한민국에서 널리 퍼져야 할 지식입니다.

문제가 많은 도시에는 새로운 스타디움이나 경전철 시스템, 컨벤션 센터, 주택 사업 같은 대규모 건설 사업을 추진하면 도시가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는 그릇된 상상을 하는 관리들이 너무나 많다. 거의 예외 없이 어떤 공공 정책 도 해일처럼 몰려오며 도시를 변화시키는 힘을 막을 수 없다. 우리는 러스트 벨트(Rust Belt: 미국 동북부의 사양화된 산업 지대)에 사는 가난 한 사람들의 욕구를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공공 정책은 가난한 '장소가 아닌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

저자의 주장은 기본 소득을 주창하는 이재명 대표와 결을 같이 합니다. 동시에 '그릇된 상상을 하는 관리들'을 읽을 때는 경인 운하나 대형 태극기 따위에 집착하는 오세훈 시장이 떠오릅니다.

휘황찬란한 새 건물은 쇠퇴하는 도시의 미관을 멋있어 보이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도시의 근본 문제를 치유하지는 못한다. 쇠퇴하는 도시의 대표적 특징은 경제 규모에 비해서 주택과 인프라가 과도하게 많다는 점이다. <중략> 건물 중심으로 도시를 개편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은 도시는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마지막 포기말은 오세훈과는 정반대의 마인드를 갖고 있던 박원순 시장 시절에 만들어진 도시 재생 사업의 결과를 다시 한번 음미할 시각을 제공합니다.

도시는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교훈


도시는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교훈

뉴올리언스도 대한민국과 비슷한 행정 수준일까요?

뉴올리언스의 아이들 교육을 지원하는 데 그토록 절실히 돈이 필요한 상황에서 연방 정부가 도시의 인프라 구축에 수십억 달러를 쓴다는 것이 과연 정말로 합리적이었을까?

최근에 지방 곳곳에 공항을 지으려고 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한심한 행태가 떠오릅니다.

궁극적으로 도시의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비용조차 감당하기 힘든 건물이나 도로망을 구축하는 것이 아닌 도시민들을 돌보기 위한 지금 지원이다. 도시 아이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좋은 기회를 찾을 수 있게 그들에게 더 좋은 교육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시장은 그가 통치하는 식의 규모가 점점 더 줄어들더라도 성공하는 것이다.

토건세력과 결탁한 이들이나 관성에 빠진 행정가는 그렇다 쳐도 아이디어가 빈곤한 혁신가들을 위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자연스레 <진정한 도시의 힘은 사람으로부터 나온다>에서 언급한 박구용 교수님의 발제가 어떤 의도인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도시의 승리>의 주장을 결론적으로 '즐거운 도시가 성공한다'라는 포기말로 요약했습니다. 그러면서 독일의 도시들을 거닐면서 즐거움을 제공하는 7가지 요소를 다음과 같이 꼽았습니다.

1. 얼마나 다양한가?

2. 공원

3. 건축

4. 먹거리 (전통적, Exotic)

5. 놀이 문화

6. 소비(사람들이 무엇을 사랑하는가?)

7. 랜드마크


소멸을 벗어나기 위해 지자체가 봐야 할 책

한편, 페벗님 글로 알게 된 '대한민국 인구소멸 지도'란 것이 있었습니다. 지자체 행정가라면 <도시의 승리>를 읽거나 적어도 박구용 교수님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 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엮어 보니 조금 더 입체적인 지식 소비란 생각이 드네요. 이쯤에서 한번 더 쉬어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합니다.


지난 투자와 경제를 배우는 수요일 연재

(1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6. IT 구직 불패의 시대는 지나고...

17. AI 쓰임새를 찾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18. 새마을 운동은 잊고 지식 노동 생산성을 고민하자

19. Apple: 혁신의 끝에 도달한 유틸리티 컴퓨팅 업자

20. 멀티모달리티 AI의 표준화와 CES 2024

21. 디지털 마약 비유 때문에 살펴본 애플 비전 프로

22. 스키장에서 생긴 일과 과도한 분업 현장의 대안

23. <Tidy First?> 번역이 옵션 개념을 가르치다

24. 다이슨과 애플의 전기차 프로젝트 중단의 의미

25. AI 업계가 보여주는 거대 중공업과 같은 흐름

26. 나만의 스코어보드가 없다면 실패하는 투자다

27. 신중한 경로 판단과 꼬리사건을 만드는 습관

28. 진정한 도시의 힘은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29. 도시는 번영과 행복의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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