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돈의 신뢰 작용과 가치를 바라보는 다양한 장면들>에 이어 WHY의 <Money: 풍요 속의 결핍>을 읽고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다음은 돈이 교환 과정을 거쳐 신뢰라는 결과를 차지하는 현상에 대한 저자의 설명입니다.
돈의 교환 시스템을 보장하는, 조직에 대한 신뢰다. <중략> 내가 제공하는 노동과 회사가 약속한 돈이 합법적으로 교환될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된다. <중략> 돈에 대한 믿음은 교환 시스템에 대한 신뢰이자, 그 시스템을 보장하는 조직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한다.
앞선 내용은 신뢰의 전제를 설명하고, 다음 다발말(=단락)은 돈이 신뢰의 대상이 되는 현상을 설명합니다.
돈이 가진 위대한 성질, '객관성' 때문에 가능하다. 돈은 그 어떤 객체의 가치에도 귀속되지 않는다.
글을 쓰며 자연스럽게 두 번째로 읽게 되니 이번에는 다른 내용이 읽힙니다. 그래서, 돈이 다시 보입니다.
돈은 모든 것을 매개하지만,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돈은 양적으로 환산하고 계량화할 수 있으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직 돈만이 객관적인 가치를 지닌다. 이 객관성은 돈이 교환가치로서 사회질서를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모든 것을 매개하는데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니! 돈의 중요한 특성을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다음은 저자가 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에서 인용한 내용입니다.
화폐 거래에서 모든 사람들은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가치를 갖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돈만 가치를 가질 뿐 그 어떤 사람도 가치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우리는 돈 앞에 평등하다 <중략> 이것이 사회적으로 공평한가에 대한 수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상관없다. 돈은 모든 관점으로부터 독립적이며 자유롭다. 우리는 보다 안전하고, 공평하고, 자유롭기 위해 돈을 사용해 왔지만, 이 과정에서 가장 객관적인 가치는 오직 돈에 부여되었다. 돈의 객관성은 사회 전체를 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관계, 오직 돈에 의해 매개된 관계로 만들었다. 여기서 가장 자유로운 존재가 된 것은 우리가 아닌 돈이다.
그래서, 돈에 굴복하지 않고,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 모양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이치로 신뢰의 결과를 돈이 차지한다고 합니다.
돈으로 환산되어 교환이 이뤄지는 순간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 돈은 가치를 입증하고 검증하는 매개체다. 양적으로 환산하여 더 높은 가치와 더 낮은 가치를 가르고, 객관적으로 구별할 수 있게 돕는다. <중략> 이들의 모든 상호작용은 돈으로 끝난다. 돈은 가치를 생산, 교환, 소유하는 과정을 통해 얻어진 최종 결과물로 기록된다.
처음에는 왜 결과가 돈인가 했는데, 결국 은혜조차 돈으로 갚는다면 은혜가 돈으로 맺은 신뢰에 지나지 않게 되는군요.
이렇게 형성된 돈의 힘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는, 아니 되어 버린 상황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수단인 돈은 목적으로 쉽게 승격된다. <중략> 매개체로서 돈이 개입되는 순간, 돈은 열심히 일하기 시작한다. 스스로 매개한 관계의 지배자가 되기까지. <중략> 돈의 등가성은 돈의 중력 작용을 일으키는 원리다.
다시 읽으며 자연스럽게 등가성이란 중력 작용에 휘둘렸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돈이 펼치는 중력 작용의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훈훈함을 인색함으로
존재를 비천함으로
만족을 불만족으로
먼저 '훈훈함을 인색함으로' 바꾸는 중력 작용에 대한 설명입니다.
받는 것이 너무 많다고 느껴져 고마운 마음에 돈이라도 건네게 되는 순간, 관계는 복잡해질 수 있다. <중략> 인심 좋고 훈훈한 관계가 인색한 돈 관계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두 이웃은 정말 많은 배려와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과제를 얻게 된다. 이것이 돈이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자주 못 만나서 그런지 볼 때마다 5만 원권 지폐를 주십니다. 아이가 '할머니는 부자인가 봐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이 걸 고마움으로 느끼지 않는 듯도 합니다. 어머니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일까요?[1]
더불어 지인의 생일에 간편한 카카오 선물하기로 축하를 할 때, 의미를 고민한 일이 있습니다. 의례적인 일에 그치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정(请)을 표현하는 것이라 여기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다음으로 '존재를 비천함으로' 바꾸는 중력 작용에 대한 설명입니다.
돈으로 환산이 가능해지는 순간, 모든 가치를 가장 낮은 곳으로 수렴시키는 돈의 '등가성' 때문이다.
처음에는 '가장 낮은 곳'이라는 말에 반감이 생겼습니다. '꼭 그런가?' 하는 마음이 들었죠. 하지만, 무게를 재려면 0으로 저울을 돌려야 하는 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의 질서에 따를 뿐이다. 타인에게 보일 수 있는 옷과 집과 차를 사고, 여행을 가더라도 SNS에 자랑할 수 있는 경험을 선호한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존재를 찾는다.
비교에 빠지면 기준에서 나는 중요하지 않게 되겠죠.
돈의 등가성은 교환가치가 줄 수 있는 가장 낮은 바닥이 어디인지 알려 주지만,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가장 높은 곳은 알려 주지 않는다.
나를 소외한 결과로 생겨나는 불안감이나 열등감 같은 욕망이 바닥을 알려주는 것일까요?
중력은 돈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돈을 매개로 내가 소유하려는 모든 가치, 내 삶에, 나 자신에게 적용된다.
그렇네요. 중력은 인류가 만든 중력입니다.
마지막으로 '만족을 불만족으로' 바꾸는 중력 작용에 대한 설명입니다.
나 자신을 내가 소유하고 소비하는 것에 지불한 값과 동등한 수준으로 동일시함으로써 스스로가 돈의 등가성에 적용된 대상이 되도록 자처한다.
어렵지 않게 일상에서 이와 유사하게 행동하는 실제 인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게오르그 짐멜은 이 끊임없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욕구와 불만족의 관계를 지평선에 비유했다.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이 끝인 것 같지만 아무리 가까이 갔다고 생각해도 지평선은 결코 가까워지지 않는다. 지평선의 끝이란 본래 없다. 우리의 지각이 만든 허구이기 때문이다. 목적이 실현되고 난 후에는 수단이 되고, 또다시 새로운 목적이 설정되는 과정, 채워지지 않고 무한히 반복되는 시행착오가 우리의 오늘이다. 다만 여기서 유한한 것은 우리의 생명이다. 우리 모두는 지평선의 실체를 확인하기 전에 죽는다.
마지막 두 포기말(=문장)은 선명하게 나를 사로잡습니다.
[1] 언제 기회가 되면 어머니와 대화를 해 보아야겠습니다.
(7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71. 나에게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
73. 나를 지배한 사고의 틀을 해체하면 만날 또 다른 나
76. 잠재력을 믿고 명확한 비전 수립 이후는 하도록 놔두기
77. 감정을 무시한 대가는 나쁜 관계의 기억으로 쌓인다
78. 돈의 신뢰 작용과 가치를 바라보는 다양한 장면들
79. 스테이블 디퓨전 모델과 GPT의 기반, 트랜스포머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