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신체 언어와 언어적 의사소통으로 감정 인식하기>에 이어 <감정의 발견> 5장 '감정 이해하기'를 읽고 생각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바탕을 둔 설명입니다.
그들은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그것을 알아내려는 노력도 충분히 기울이지 않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감정이 덜 복잡하고 덜 골치 아플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 마음은 짐작하지 말고 물어보라'라고 둘째 아들이 알려주던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감정은 전달이 되기도 하고, 변화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내가 왜 그토록 끔찍한 감정들에 휩싸였는지 어머니가 알아내려 했을 수도 있지만, 그 선의는 내 분노 때문에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분노한 나에게 자극받은 어머니는 맞받아쳤다. "나한테 소리 지르지 마! 어쩜 이렇게 버릇없이 말할 수가 있어? 당장 그만해!"
하지만, 감정에 빠져 있으면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겨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를 모르고 했던 실수들이 많았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앞에 있는 사람 혹은 특정 상황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모른 채 그들의 말과 행동을 평가하기 바쁘다면, 관계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란 기대는 버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어린 시절의 감정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라고 말합니다.
부모님도 더 잘해 보고 싶어 했다. 그저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아마 부모님은 자신들이 경험한 방식으로 나를 대했을 것이다. 고통은 미화할 수 없다.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던, 어쩌면 감당하지 못했던 불행한 어린 시절의 감정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다시 한번 육아가 무언지 질문을 던지게 만들어 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감정뿐 아니라 어려운 대상은 모두 그렇게 취급하려는 충동을 지니고 있는 듯합니다.
어떤 감정이든 일단 밀폐된 공간에 숨기고 훗날 (아마도) 편해지면 다루자고 생각할 때가 많은가.
한편, <생명의 위대함에 대하여...>를 썼던 경험 덕분에 생각에 생각을 더한 듯한 기분이 듭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알 수 없는 상태로 그대로 둔다는 말은 '계산 가능하지 않는 것'을 그대로 둔다는 말로 (자동) 번역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뇌라는 예측 기계로 인해 행동 가능하지 않은 상태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감정을 살피지 않으면 무언가 해야 할 때를 놓치고, 어쩌지 못하는 상태로 스스로를 몰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순석 님이 말씀하신 '생명의 위대함'은 최봉영 선생님께 배운 한국말 '사람'의 본질을 칭하는 듯도 합니다.
한국말에서 사람은 ‘살다’, ‘살리다(살+리+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말이다. 사람은 온갖 것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임자를 말한다.
그렇다면, 감정이라는 정보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갑자기 듭니다. 평생 무시하던 감정에 대해서 이렇게 소중히 여기다니! (붙잡고 있던 보람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 감정 중에서는 욕구와 욕망에 바탕을 둔 것이 있을 테고, 지극히 동물적인 차원의 감정도 있을 듯합니다. 반면에 환각계가 가스라이팅하는 욕망은 감정과 어떻게 연결될까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한편, <WHY>와 <테니스 이너게임>을 동시에 읽는 탓에 자아 2를 따르려면 감정이 굉장히 소중한 단서가 되는 정보란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그야말로 고유한 나의 길을 발견하는 데에도 감정은 메시지를 찾게 해 줄 신호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야 하는 듯합니다.
'왜?' 왜 이런 기분이 들까? 왜 지금이지? <중략> 어째서 이런 식으로 느껴지지? 이 감정의 기저에 있는 이유가 뭐지? 무엇 때문에 이런 감정이 드는 거야?
그리고 감정을 깊이 파고드는 여행과도 같은 여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바람보다 더 현명해질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데 그 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동료, 친한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의 감정을 마주하기는 매우 어렵다. <중략> 우리가 한(또는 하지 못한) 말이나 행동이 현재 겪고 있는 힘든 감정의 원인일 수 있다. 감정을 깊이 파고들기 전에 먼저 깊이 심호흡을 하자.
예전에 '만남'을 도식화한 기억 때문에 감정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그림으로 그리고 싶어 집니다.
그리고 보니 감정의 원인을 알려면 수사하듯이 역추적해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다음 포기말을 읽을 때는 '대칭화'가 떠오릅니다. 혹은 <쪽인 나로 일을 인식하는 과정을 풀어 보기>에서 다룬 사태를 대응시켜 인식하는 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바탕에는 위험과 위협이 깔려 있다. 이 경우 싫다는 말은 곧 위험하다고 느낀다는 뜻이므로, 이를 토대로 다음에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파악할 수 있다.
감정을 정보로 활용하면 마음의 바탕을 대칭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는 주장 같습니다. 그리고 감정 과학자답게 행동합니다.
의심을 품고 답을 찾을 때까지 조심스레 묻는다. 과학자들이 바로 이렇게 행동한다. 조사를 통해 입증되거나 반박될 이론을 세운 뒤 문제에 접근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 하나의 허들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가설을 내놓고 증명을 위해 30년을 걸렸다는 과학자들 이야기를 들은 탓에 감정을 추적하는 일에도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경험을 규명하면 감정에 대처할 수 있다. 이것이 감정 과학자의 또 다른 기술로, 자신의 평가를 배제한 채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경험 규명을 위해서 '당신이 옳다'는 내 편 인증이 필수적이란 사실도 깨닫게 해줍니다.
(64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64. 현상태의 정확한 인지가 자연적 학습을 일어나게 한다
66. 무한한 잠재력과 경이적인 내적 지능을 지닌 자신
68. 지금은 지금뿐이다
69. 시각적 이미지와 감정적 이미지를 통해 동작을 배운다
71. 나에게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