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생성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리다>에 이어 <AI 미래> 2장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쓰다 보니 몇 편으로 나눠지는 글이 될 듯합니다. 첫 글에서는 '딥러닝 인공지능은 사람과 비슷하다'에서 밑줄 친 내용을 소재로 합니다.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보니 대칭적이란 느낌으로 인해(혹은 데자뷔로) 작년에 ChatGPT 사용 경험을 토대로 썼던 글이 떠올랐습니다. 찾아보니 <ChatGPT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 만들기>라는 글이네요. 당시는 어떤 관점이랄 만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고, 그저 휩쓸리지 않으려는 태도로 잠시 시도하고 믿을 만한 지인의 의견을 듣는 정도였습니다.
약 1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는데 당시 글을 지금 보니 앞선 기사가 영향을 끼친 탓으로 'AI가 아니라 검색 서비스와 결합이 관건'이란 소제목이 보였습니다. 지금 제 생각은 많이 다릅니다. 몇 주 전에 <이러다가 곧 구글 검색을 안 할 듯합니다>라는 글을 썼으니까요. 다만, 여전히 유효한 생각은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자, 다른 시간에 마치 대칭인 듯 다시 만난 책의 2장은 생성형 인공지능을 볼 저 만의 관점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요?
딥러닝 인공지능 발전사에 대한 내용 중에서 눈에 띈 부분입니다.
하이브리드 한 시스템 덕분에 딥러닝의 기반인 인공 신경망은 생물학적인 신경망이 가질 수 없는 커다란 장점을 2가지나 누린다. 첫째, 학습에 미분 계산을 필요로 하는 역전파 알고리즘이 가능해서 생물학적인 신경망보다 훨씬 빠르게 학습을 할 수 있다. 둘째, 하부 구조가 완전히 디지털 시스템이기 때문에 하나의 인공지능이 학습한 것을 다른 인공지능으로 아무런 손실이나 왜곡 없이 그대로 옮길 수 있다.
특히 마지막 포기말(=문장)이 전력을 많이 쓰는 약점과 상충 관계로 얻는 핵심적인 이점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이 좀 더 나아가서 '공산 체제'가 떠올랐습니다. 배경 지식이 부족하니 비약일 수 있는데, 인공지능이 늘린 생산성이 인간의 노동 기회를 상실하게 만드는 범인이 자본주의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형님(?)이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의 주장을 다시 해석해야 한다는 거듭되는 주장이 저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죠.
하지만, 이해한 것이 아닌 느낌일 뿐이라 덧붙일 말은 없습니다.
한편, 우연일 수도 있지만 챗GPT 등장 이후에 블록체인의 전력 소모를 비난하는 기사가 눈에 띄지 않는 듯합니다.
현재의 인공 신경망은 단점도 가지고 있는데, 에너지가 많이 소비된다는 점이다. 약 100조 개의 시냅스를 가진 인간의 뇌는 고작 20W 정도의 적은 에너지로 작동할 수 있는데 반해 인공지능은 그보다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하지만, 로봇이 소모하는 전기량을 듣고 난 후에는 에너지 소모를 인공 신경망의 문제로 규정하는 일이 대단한 효용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넷제로처럼 지속 가능한 전력 수급 방안과 연결한다면 모를까.
다음 포기말을 읽을 때는 <월말김어준>을 통해 박문호 박사님을 알게 되고, 이해가 안 되어도 꾸준히 따라 간 시간이 배경 지식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공 신경망이 학습한 것은 신경망 연결의 가중치를 저장하는 파라미터에 저장된다. 이런 파라미터는 생물의 뇌 신경망의 시냅스에 해당한다.
배경 지식의 작용을 몸으로 깨우치면서 박문호 박사님이 사투리로 역설하던 '써 묵으려고 하지 마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배움과 활용이 꼭 일대일대응이 되지는 않는 듯합니다. 갑작스럽게 느낀 고마움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기억의 강화를 위해 100조 개라는 사실을 대칭으로 하는 이미지를 재인용합니다.
다음에 밑줄 친 글은 높은 밀도의 강력한 충동을 제시하는 다발말(=단락)입니다.
인간의 뇌에 대해 로저 펜로즈와 스튜어트 해머로프의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펜로즈와 해머로프는 미세소관에서 양자역학적인 계산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신경 전달 물질을 운반하는 통로인 미세소관에서 양자역학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인간의 정신이 결정론적인 고전 물리학 법칙이 아닌 확률적인 양자역학에 따라 작동한다는 것이다. 펜로즈는 이것이 인간이 결정론에 지배받지 않고 의식과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는 이유라고 주장한다. 쉽게 말하면 인간의 두뇌가 일종의 확률론적인 양자 컴퓨터라는 것이다.
양자역학에 대해 가벼운 설명은 종종 들었지만, (제 삶에서) 필요성을 느낀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2015년에 coursera 강의 수강 경험이 떠오르고 동시에 작년 말에 읽었던 <울트라러닝>이 남긴 자극이 결합해서 '양자역학 수업을 들어볼까?'라고 속말을 했습니다.
언제 실행하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 지금은 '미세소관'이란 생소한 표현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기억하기 위한 전략으로 이미지를 구성해 흔적을 남겨 보기로 합니다.
이미지는 구글링 첫 화면에서 찾은 결과와 이미지 그리고 제미나에게 물은 결과 일부를 결합하여 만들었습니다.
2장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의 이후 내용은 다음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5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58. 케네디에게 침착함, 허심탄회함, 명료함을 배우자
59. 과정은 몸에 배어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61. 판단이 부르는 일반화 본능의 무용함 혹은 해로움
62. 판단을 내리지 말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연민의 힘
64. 현상태의 정확한 인지가 자연적 학습을 일어나게 한다
66. 무한한 잠재력과 경이적인 내적 지능을 지닌 자신
68. 지금은 지금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