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영회 습작 Aug 13. 2024

판단을 내리지 말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연민의 힘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지난 글에 이어 <테니스 이너게임>의 제3장 '자아 1을 조용히 시키기' 중에서 '판단하지 않기'를 읽고 느낀 점을 씁니다.


판단을 하지 말고 좋은 본보기를 찾자

다시 읽으면서 '진짜 그런가?' 하는 제 내면이 만드는 의혹도 만납니다.

이렇게 자신에게 내린 판단은 스스로 실현하는 예언인 경우가 흔하다. <중략> 그러면 자아 2는 이러한 기대에 부합하려고 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서브가 약한 선수로 반복해서 생각한다면 일종의 최면이 걸리게 된다. <중략> 최면이 풀릴 때까지 진정한 자아 2의 잠재력을 감추기 위한 역할극은 계속된다. 요약하자면, 생각한 대로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판단의 해로움에 대해 아직은 1도 모르는 상태일 수도 있겠습니다. 스스로 그러한 자해(?)를 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나 학교에서부터 '충조평판'이 횡행했으니 말이죠. 실로 어처구니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반면에 좋은 본보기로 판단의 해로움을 피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다발말(=단락)입니다.

중국 전통 의학에서 환자는 아플 때가 아니라 멀쩡할 때 의사를 방문하고, 의사는 그들의 건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테니스 코치에게도 판단을 내려달라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백핸드 스트로크를 보여주며 조언을 구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편,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본보기의 강력한 힘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판단을 내리지 말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자

음, 다음 다발말은 처음 읽을 때와 사뭇 다른 느낌을 줍니다.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점을 무시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뜻일 뿐이다.

직전에  <팩트풀니스>를 인용한 탓도 있을 것이고 <외면(外面)하기와 직면(直面)하기>에 쓴 대로 오랫동안 직면하기를 지향해 온 영향도 있는 듯합니다. 더불어 <내가 과학을 공부하는 진짜 이유>가 바로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함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관성 없이 진행했던 <대체 뭐가 문제야>를 읽고 얻은 노하우 <내가 풀려는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하자>와도 연결됩니다.


판단이 그렇게 나쁜 것일까요?

판단은 서브가 '나쁘다'라고 말할 때 시작되며, 분노와 절망, 좌절이 뒤따르고 이후 경기를 방해하게 된다. 사건을 '나쁘다'라고 말하지 않아야만 판단 과정이 중단되고, 감정적 반응이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경기 방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중략> 판단을 한다면 선수가 자신을 교정하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를 교정하기 위해 긴장할 것이다.

오로지 판단 때문에 분노와 좌절, 절망이 만들어집니다. 감정 과학자로 입문한 덕분에 위 내용을 <감정의 발견>에서 배우는 바와 연결할 수 있습니다.

북경에서 있는 그대로 보다가 발견한 '농부의 마음'

첫 줄을 읽는데 '아하, 이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땅에 장미 씨앗을 심을 때, 아직 작다는 생각은 할 수 있어도 '뿌리와 줄기가 없다'라며 비판을 하지는 않는다. 씨앗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물을 줄고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 씨앗이 자라 땅 표면을 뚫고 올라올 때, 미성숙하다고, 발육이 불완전하다고 비판하지는 않는다. 막 돋아난 싹이 처음부터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도 않는다. 막 돋아난 싹이 처음부터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도 않는다. 씨앗이 성장하는 과정을 경이에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보며 발달 단계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한다.

저의 부족한 연민의 마음도 어쩌면 '농부의 마음'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제 글에서 '농부의 마음'을 기록한 내용을 찾아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발견한 내용은 손웅정 님의 책을 읽고 쓴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인데 북경에서 지인을 본보기 삼아 배운 내용과 XP에서 배운 아기 발걸음을 결합하여 '농부의 마음'을 배울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다음으로 <칭찬이나 좋은 말 대잔치와는 다르다>에서 개취 인정과 농부의 마음의 연관성을 발견합니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개취인정을 훈련하던 시절 내 마음 상태가 '농부의 마음'이었음을 깨닫는다. 무더위 속에 힘겨운 일을 하던 농부 이미지는 내가 인내심을 갖고 기약 없는 개발자들의 성장을 기다리는 마음과 비슷했다. 다행히 나에게는 곁을 지켜주는 이가 있었고, 나는 살면서 처음 인내심을 발휘해 그들의 싹이 발아하는 것을 기다렸다.

초기 브런치 글이라 할 수 있는 <나의 애자일 정리: 안영회-gile>에 보니 조금 더 상세하게 '농부의 마음'이란 표현의 기원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XP는 어떤 조직에서나 쓸모가 있다>라는 글에도 '농부의 마음'과 '개취 인정'의 연관성을 담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저는 '농부의 마음'이란 비유로 이런 종류의 기다리는 힘을 키웠습니다. 당시 인고의 시간(?)을 부르는 이름이 '개취 인정'이었는데 최근에는 '방법을 알려주기 이전에 활력부터 주어야 한다'라고 전보다 우아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드러커에 따르면 바로 그 '개취 인정'은 경영자의 최소 요건인 듯도 합니다.


마무리

지난 글과 마찬가지로 시작은 <테니스 이너 게임>의  '판단하지 않기'를 다루다가 '농부의 마음'으로 수렴했습니다. 독자 님들이 보기에는 책에서 삼천포로 빠졌냐고 하실 수 있는데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이기 때문에 책 내용에만 머물 수는 없습니다.


결국 '판단하지 않기'는 일종의 '농부의 마음'으로 내 삶을 대하는 태도의 일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자기 연민 역시 '농부의 마음'을 통해 기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깁니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4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46. 어째서 우리는 그런 기술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47. 감정 과학자가 되는 법

48. 이해와 연민 길러 내기

49. 부드러운 소통 그리고 마음챙김이라는 감성 능력 개발방법

50. 신념이 나에게 쏘는 두 번째 화살을 멈추자

51. 교만을 다스릴 연민을 키우고, 마음챙김을 익히기

52. 행복 창조의 기술 그리고 집중과 통찰

53. 신체 언어와 언어적 의사소통으로 감정 인식하기

54. 행복은 개인적 문제가 아닙니다

55. 영어 공부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계기를 만나다

56. 이제 내가 습관으로 차릴 영어공부는 무엇인가?

57. 연민의 힘으로 개성을 포용하고 이름을 부르자

58. 케네디에게 침착함, 허심탄회함, 명료함을 배우자

59. 과정은 몸에 배어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60. 좋다, 나쁘다 판단하는 습관을 버리는 것

61. 판단이 부르는 일반화 본능의 무용함 혹은 해로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