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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Jul 30. 2024

행복은 개인적 문제가 아닙니다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지난 글에 이어 틱낫한의 <고요히 앉아 있을 수만 있다면>을 읽고 쓰는 기록을 이어갑니다.


공교육은 산업화 도구로 탄생했다

다음 포기말(=문장)을 읽을 때는 묻따풀을 해 오던 영향으로 최봉영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쪽인 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고통이 우리 선조들, 사랑하는 이들, 그리고 지구별 자체와도 연결되어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아직 충분히 공감하지는 못하지만, 받아들이는 중입니다. 다시 보면서 요즘 배양하는 ‘연민의 시선’이 필요한 이유로도 연결해 봅니다.


그리고 다음 다발말(=단락)을 보니 지인이 알려주신 고등학교와 공교육의 등장 배경이 떠오릅니다.

어째서 학교에서는 고통 다루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걸까요? <중략> 고통을 잘 겪어 내는 기술을 서로 공유할수록 세상의 고통은 줄어들고 행복은 증가합니다.

공교육의 모태는 산업화 인력을 양성하는 곳이지 자아실현이나 인류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조직의 탄생 배경과 바탕과 유리된 '교육'에 대한 개인의 가치관이나 사회적 상식을 투영하는 일은 어찌 보면 이율배반적인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슬픔에 함께하기

다시 책으로 돌아가 보먄, 다음은 마음이 끌리는 포기말입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건 바로 당신의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방법도 제시합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거기 존재해야만 합니다. 거기 존재하는 것이 일종의 수행이 됩니다. 몸은 함께하지만 마음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 경우가 정말 많지요.

SNS의 등장으로 몸만 함께 하는 일은 너무나도 쉽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제는 실천할 때가 된 듯합니다.[1]

마음이 육체로 되돌아와 현재에 머뭅니다. 단순히 거기 있는 것, 그것이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직 '주위의 모든 존재를 바라볼 때 연민의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가족들을 대상으로는 수행을 해 보아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은 자신의 현존입니다.


유해한 환경에서 피난처 찾기

인용한 문장을 읽고 환경의 영향을 떠올리니 <오리진>이 떠올랐습니다.

좋은 환경이 우리 내면에서 최고의 것들을 이끌어 냅니다. 유해한 환경은 내면에서 최악의 것들을 가져오지요.

그리고 나 자신을 귀하게 대하는 태도를 위해 항상 주변을 깨끗이 해야 하는 이유를 보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여기서 연상되어서 한때 마음에 품고 살던 개념인 '정원 관리'도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개인으로서 외부를 향한 혹은 인간 공동체 관점이었는데, 자신의 내면을 위해서도 그러한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일상의 해로운 환경'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인스타를 적대적으로 다룬 유튜브 강연콘텐츠입니다.

일상에서 많은 이들이 해로운 환경에 있습니다. 그것은 의심과 경쟁, 탐욕과 질투를 상호 간에 증진시키는 환경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일종의 음식처럼 이용합니다. 그리고 음식처럼 해롭거나 이로운 요소들이 몸에 스며들지요.

인상적이긴 했지만, 그의 주장대로 살 수는 없을 듯합니다. 제 경우도 한때는 학교 공교육 환경이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교육 내용은 너무 낡았고 성적 위주의 패러다임은 해롭다고 생각하지만, 또래 아이들과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는 환경은 절대 해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대안도 없고요.


자신만의 안전한 항구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시작하기

다음 다발말은 슈필라움이라는 말을 처음 본 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스스로가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우선 자신만의 안전한 항구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시작하세요.

저자는 슈필라움을 '자신만의 안전한 항구'라고 말합니다.

저는 브런치 쓰는 시간이 안전한 항구이고, '사랑방'이라고 부르는 교류의 시간이 슈필라움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물리적 사랑방을 만들려고 노력 중입니다. 더불어 첫 회사 사장님이 집 앞에 작은 공간을 빌려 주변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을 '도반'이라 부르며 저를 초대했던 때가 떠오릅니다.[2]


안전한 항구는 결국 환경 독립적인 힘을 키우기 위한 수행의 공간인 모양입니다.

어떤 환경에 처해도 연민이 가능함을 보여 주는 그런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몇 시간 전에도 연민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수행과 그로 인해 얻은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체득했습니다. 가까운 지인이 자신이 바뀌었더니 동반자도 자연스레 변하더라고 말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거기 다른 길이 있음을 몸소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랑이 시들어 미움이 되었다면, 바로 당신이 미움의 쓰레기를 비료로 삼아 사랑의 꽃을 다시 피워 낼 수 있습니다.

다 년간 묻따풀한 덕분에 '온인 나와 쪽인 나'라는 이분법이 선악처럼 선명하게 나뉘는 경계가 아니라 두 가지 창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는 생각도 찾아옵니다.

집단 속에서 우리는 개인을 볼 수 있고, 개인 속에서 감추어진 집단을 볼 수 있습니다. 절대적인 개인성이란 없습니다. 절대적인 집단성 또한 존재하지 않지요.

다음 포기말(=문장)은 '유기체'나 '연기'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는 집단적 전체 (collectve whole)의 일부이고, 무엇을 소비하는가라는 이들 개개인의 결정도 집단의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아직 완전히 제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이미 <닫힌 우리에서 유기체들의 조직으로>라는 글에서 이를 시도한 흔적이 있네요.


행복의 기술 익히기

아직 읽은 내용에 비해 경험이 일천해서 책을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다음 포기말에는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습니다.

고통을 줄이고 행복을 늘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대략의 방향은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우선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럼 고통의 뿌리를 깊이 살펴보고 부드럽게 다루어 그것으로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쓸모없고 불필요한 고통을 흘러 보내고, 두 번째 화살을 거두고, 우리가 갖고 있는 행복의 개념을 자세히 되살피는 것을 요구하지요. 마지막으로, 매일 행복의 자양분을 공급해야 합니다.

이제는 실천이 남았고, 언젠가 그 내용들을 차곡차곡 <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으로 포용하고 체화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주석

[1] 개인적인 사건으로 어제 제가 경청 능력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10여 년 전에 깨닫게 해 주신 분을 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해 고했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조금 나아졌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랬으니 이제 어려워도 실천을 해야죠.

[2] 저는 종교 활동의 인상을 받아서 거부했습니다. 저는 경전에서 배울 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종교 활동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습니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4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41. 감정은 정보이다

42. 내 감정을 살피고 태도를 가꾸고 습관을 만들어가는 일

43. 마음챙김의 종으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도록

44. 이 길을 통해 내 최고의 열망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45. 두려움에 찬 집착을 버리기 위해 자신의 소를 놓아주기

46. 어째서 우리는 그런 기술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47. 감정 과학자가 되는 법

48. 이해와 연민 길러 내기

49. 부드러운 소통 그리고 마음챙김이라는 감성 능력 개발방법

50. 신념이 나에게 쏘는 두 번째 화살을 멈추자

51. 교만을 다스릴 연민을 키우고, 마음챙김을 익히기

52. 행복 창조의 기술 그리고 집중과 통찰

53. 신체 언어와 언어적 의사소통으로 감정 인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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