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
애초에는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의 일부로 틱낫한의 <고요히 앉아 있을 수만 있다면>을 읽고 쓰는 기록인데, 쓰다 보니 일상 루틴으로 만들 내용이라 <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 연재로 변경합니다.
다음 다발말(=단락)을 거듭 읽는데, 만약 가능하다면 마법과도 같은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앉아 있음이 고유한 방식으로 매우 유익하고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앉아 있는 매 순간을 어떻게 즐기는지 배워야만 합니다. 어떻게 숨 쉬고, 어떻게 앉는지 말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앉아 있는 매 순간이 치유와 보양의 시간이 됩니다.
낯선 일인 동시에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제안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분명 저도 걸음을 즐기지 않습니다.
살면서 만나지 못한 경이로움이 주위에, 그리고 내면에 너무도 많습니다. 늘 서두르기 때문입니다. <중략> 그렇게 주변에 온통 존재하는 삶을, 생명을 놓칩니다. 좀비처럼 걸으며, 스마트폰만 응시하거나 생각 속을 헤매지요. 우리는 걸음을 즐기지 않습니다.
<아침에 활력이 찾아올 때 생각을 떠나 꽃을 보던 여유>는 노력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평소에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걷기 명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모든 발걸음을 즐기지 않는다면 걷기 명상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건 시간 낭비입니다.
놀랍다는 생각뿐입니다. 당장 걷기 명상을 시도할 생각은 없지만 이 글을 쓴 후에는 가급적 걸으며 걸음 자체와 함께 하는 비중을 늘릴 것입니다.
모든 발걸음을 즐기는 일이 정말 가능할까요? 가능하니 이 책이 있겠지만 말이죠.
이는 걷기와 앉기의 품질에 관한 것입니다. 마음챙김과 집중이 더욱 양질의 숨쉬기와 걷기, 그리고 앉기를 만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깨달음이란 언제나 그 어떤 것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그것으로 이미 깨달음입니다.
그런가요? 깨달음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싶습니다.[1] 저자는 반복해서 말합니다.
자신이 육체를 갖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그것도 이미 깨달음입니다. 자신의 발이 튼튼해서 걷기를 즐기기 충분함을 알아차립니다. 이것 또한 깨달음이지요.
방금 전까지 낯설기만 했던 이들 다발말을 자꾸 되새기는데 갑자기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 스스로 현존하는 나를 감각하고 느끼고 생각하며 사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요. 대부분의 생각은 미래 혹은 걱정이나 계획 혹은 욕망에 쓰고 에너지를 남기질 않습니다.
막막하던 마음챙김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느낌입니다.
마음챙김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언제 어느 순간에도 진정으로 거기 머물며 하고 있는 일을 즐기게끔 해 줍니다.
다음 다발말은 내일 아침부터 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처음 할 일은 무엇일까요. 한번 심호흡하고 또 하나의 새로운 24시간이 주어짐을 자각하는 건 어떨까요. 이는 선물 같은 삶입니다.
마침 이번 주부터 영화 역린에 나오는 중용 대사 암송으로 아침 기도를 대신하는 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내일부터 의식을 하나 더 추가해야겠습니다.
책에서 제안하는 시는 이렇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며 미소 짓네.
새로 받은 스물네 시간
깊이 몰입하여 살리라 맹세하네.
그리고 주위의 모든 존재를 바라볼 때
연민의 눈으로 보리라 맹세하네.
김기석 목사님의 아침 기도와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마지막 문장의 '연민의 눈'은 저에게 가장 부족한 능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음 문장을 보면서 이건 <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의 일부가 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스물네 시간을 이렇듯 가능한 한 평화롭고 기쁨에 차고 행복한 방법으로 살기를 기원합니다. <중략> 스물네 시간은 선물 같은 삶이니까요. 매일 아침 선물을 받는 셈입니다. 이것이 마음챙김입니다.
[1] 2년 전에 썼던 <깨달음과 깨달은 사람>을 읽어 보았는데, 지금 바로 깨달음에 대해 묻따풀하는 것보다는 <고요히 앉아 있을 수만 있다면>을 다 읽은 후에 다시 한번 <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을 읽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1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3. 본성을 따지는 일에서 최고의 씨앗들에 물을 주는 일로
16. 조심스럽게 관찰하면 서두르지 않을 수 있을까요?
17. 시행착오가 보여주는 지도 그리고 추진력을 찾는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