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
요즘 <고요히 앉아 있을 수만 있다면>을 읽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대체 뭐가 문제야>도 함께 읽고 있다 보니 두 책 내용이 바람직한 간섭(?)을 일으킵니다. 그런 간섭이 만든 생각 중에서 <고요히 앉아 있을 수만 있다면> 153 ~ 155 쪽 내용을 토대로 떠오른 내용을 기록합니다.
아래 포기말[1]은 명상이나 기도에 사용할 수 있는 염원[2]입니다.
네 안의 분노, 갈망, 망상의 근원을 보고 파악할 수 있기를.
문제를 다른 데서 찾지 않고 내 안으로 향한다는 점에서 바로 직전에 썼던 <문제의 근원은 대부분 당신 안에 있다>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편, 책에는 언급도 없는 실타래를 그 글에서 인용한 이유는 골치 아픔과 복잡함과 같은 문제가 갖는 특징과 느낌이 닿기 때문일 듯합니다.
<대체 뭐가 문제야>의 맥락을 따라 <문제의 본질 파악하기>에서 인용한 내용을 보겠습니다.
문제란 바라는 것과 인식하는 것 간의 차이다
위의 탁월한 정의에 따르면 누군가의 불편함이 문제를 찾는데 아주 중요한 요인입니다. 이쯤에서 돌아와 다시 다음 포기말을 보면 분명 여러분들도 느낌이 다를 것입니다.
네 안의 분노, 갈망, 망상의 근원을 보고 파악할 수 있기를.
아닌가요?
한편, 다음 다발말[3]에 등장하는 그녀는 심지어 <대체 뭐가 문제야> 14장의 주인공 재닛 자워스키라고 해도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던 사람에게서 신선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지요.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몇몇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그를 매몰차게 대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었는지도 보게 되었지요.
하지만, 두 책이 전하려는 교훈과 이야기는 다릅니다. 제 삶에서 혹은 제 머릿속에서 만났을 뿐이죠. <대체 뭐가 문제야>는 무심한 본성의 영역을 따지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에 건설적인 행동을 하고자 한다면, 문제를 내 문제로 돌리라고 합니다.
반면에 <고요히 앉아 있을 수만 있다면>은 마음챙김을 다루는 책입니다. 그리하여 비슷한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죠.
마음챙김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습관적인 생각 방식과 그 내용물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마음속 신경회로에 마음챙김의 빛을 비추어 그것들을 명료하게 볼 수 있습니다. 뭔가를 보거나 들을 때, 우리의 주의(attention)는 적절할 수도 부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위 다발말을 읽을 때는 <관성적 일상에서 나와 차리는 일상으로 바꾸기>를 쓰던 두 달 전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알아차린다는 말은 '정신 차리다'라는 말을 떠오르게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그때에 비로소 언행을 차려 나갈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마음챙김을 이용해 자신의 언사를 돌이켜봅니다. 그럼 자신과 타인을 위해 자애로운 언어를 쓰고 충돌을 야기할 만한 얘기가 입 밖에 나오기 전에 멈출 수 있습니다. 이제 자신의 행동을 살핍니다. 마음챙김은 자신이 어떻게 앉고, 서고, 걷고, 웃고, 찡그리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을 어떻게 쳐다보는지 조명합니다. 어떤 행동이 유익하고 어떤 행동이 해로운지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드디어 다음 포기말을 만나는 순간 제가 찾고자 했던 <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과 연결될 듯한 단서를 찾은 듯합니다.
우리는 최고의 씨앗을 알아보고, 물 주고, 길러 내는 정원사들입니다.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실천으로 사전을 찾아봅니다. 씨말은 念(생각할 념)과 願(바랄 원)이며, 풀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마음에 간절히 생각하고 기원함. 또는 그런 것.
[3]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5. 일상에 마주하는 감정과 문제를 비슷하게 인식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