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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Jun 04. 2024

시행착오가 보여주는 지도 그리고 추진력을 찾는 질문

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

묘한 일입니다. 아니, 어쩌면 '지식 덕후' 선언(?)을 했을 때 기대했던 순간이 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당시 그렸던 아래 그림이 지난 일을 대상으로는 그렸기에 편안하게 그릴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저 그림을 미래에 투사하면 제가 근래 느낀 불안이라는 경험과 이어진다는 사실을 당시에는 몰랐던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 주는데 동화가 말을 건다

꾸준히 <두 아들과 함께 배우기>를 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이에게 영어 책에 대한 친근감을 높이기 위해 읽어 주는 책이 있습니다. 반복해서 읽다 보니 특정 장면에서는 지금의 저에게도 교훈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로 다음 쪽의 장면과 내용을 만났을 때입니다.

높은 산에서 보니 강을 따라가면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두렵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제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과 닮은 듯합니다. 그 느낌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글을 씁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일로 겪은 경험과 기록이 떠올라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물었다가 이로 인해 앞서 인용한 이미지를 마주치게 됩니다.

왜 그런 걸까?


그리고, 거기서 FEAR ZONE이란 표현을 만납니다.

어제 동료들과 <대체 뭐가 문제야>를 읽으며 '불안'에 대해 얘기했기에 또 묘하다는 감정이 강화됩니다.


시행착오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 주는 걸까요?

여기서 생각을 꺼내려 하자 직전에 썼던 <시행착오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 주는 걸까요?>를 쓸 당시를 떠올리게 됩니다. 동화 속에서 보여준 집으로 가는 길은 일종의 지도라고 생각했는데, 그 지도를 물리적 항로가 아니라 내 인생에 투사한다면 바로 시행착오가 만들어 준 주관적인 장면일까요?


잠시 망설이는데, 앞서 그린 그림이 저를 이끄는 듯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공감하며 읽었던 페벗 님의 독서 메모 <나의 호불호가 삶을 지배한다>가 떠올랐습니다.


이치理致와는 구분되는 나의 줏대를 쌓아가기

호불호는 <생각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키우는 다양한 맛과 문화>를 쓴 탓에 대번에 정약용 선생의 기호嗜好를 떠올리게 합니다.

조선시대에 정약용은 맛을 모든 생명체의 바탕으로 보아서 생명의 본성을 기호嗜好로써 풀이하였다. 기호는 생명체가 갖고 있는 갖가지 맛, 곧 보는 맛, 듣는 맛, 맡는 맛, 씹는 맛, 하는 맛 따위를 말한다. <중략> 그는 음식, 안위, 남녀, 도덕 따위에 대한 욕구나 욕망을 모두 기호인 맛으로 풀이하고 있다.

연이어 손때를 묻힌 그림도 소환됩니다. 제가 이론이나 상상으로 떠올린 것들을 맛보아야 기호嗜好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계속할 것인지 다른 것을 할 것인지 결정하고, 나와 관계 맺은 수많은 사람과 공동체와 환경과 영향을 끼치며 살게 됩니다. 그때 그저 익숙한 대로 나의 경험의 경계 안에서 살 수도 있습니다. 불안이 찾아오면 그렇게 하고 싶은 강렬한 본능에 휩싸입니다.


불안이 알려준 비움과 채움의 경계

<불안이 알려준 비움과 채움의 경계>에 썼듯이 이때 경계를 직시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사실을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것이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려면 낯선 '맛'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가슴 뛰는 삶, 전략적 사고가 필요할까?>에서 고민한 사항 이면에는 불안도 공존했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불안을 거의 느끼지 못했던 (직업적) 프로젝트에서 활용한 전략적 로드맵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각 단계에서 배우는 것이 시행착오와 불안 따위를 포함한다는 사실이 아직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왜 그런 것일까?

서로 다른 경험이 연관을 지은 듯해서 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하나로 꿰어서 글로 만드는 일에는 하나의 질문이 필요했습니다.

왜 그런 걸까?


얼마 전 썼던 <욕심과 다스림: 추진력인 욕심을 바로 알기>은 이 질문의 힘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욕심은 사람에게 일종의 에너지입니다.

욕심은 나의 안에 자리하고 있는 '하고자 하는 마음', '하고 싶은 마음'을 말하며, 대상을 이렇게 또는 저렇게 다루고자 하는 뜻으로 드러난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은 대상에 대한 욕심을 이루어 가는 일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대체 뭐가 문제야>에 따르면 해결 가능하도록 문제를 정의하려면 문제를 둘러싼 욕망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 해결 그룹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꼭 정의를 내리는 것을 간과해서만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해결안을 이끌어 내기 위한 추진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여러 가지 정의를 놓고 왈가왈부만 하다가 실패로 끝나버리기도 한다. <중략> 또 문제에 대한 어떤 공통된 이해 없이 나온 해결안은 여지없이 '엉뚱한' 문제에 대한 해결안이 되고 만다. 보통은 목소리가 가장 큰 사람이나 가장 설득력 있게 말하는 사람이 주장하는 문제가 선택된다.

결국 '왜?'는 추진력을 확인하게 해 주는 좋은 질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 연재

1. 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을 상상하다

2. 점으로도 또 선으로도 대할 수 있는 일상

3. 차리다에서 알고리듬으로 나아간 나의 기록

4. 감정과 행동 사이에는 경계가 필요하다

5. 일상에 마주하는 감정과 문제를 비슷하게 인식하는 법

6. 불안이 알려준 비움과 채움의 경계

7. 일상을 차리기 위해서는 우선 조심해야 한다

8. 생각 과잉 상태와 생각 걷어차기

9. 심신을 밝게 깨어 주변의 변화를 주시하기

10. 동기부여를 일관성 있는 흐름으로 바꿀 수 있나?

11. 가슴 뛰는 삶, 전략적 사고가 필요할까?

12. 꾸준하게 절제하며 자기 길을 걷는 방법

13. 본성을 따지는 일에서 최고의 씨앗들에 물을 주는 일로

14. 새롭게 길들여지는 습관의 방향과 관성력 키우기

15. 시행착오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 주는 걸까요?

16. 조심스럽게 관찰하면 서두르지 않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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