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영회 습작 Aug 16. 2024

판단 대신에 TDD를 응용하여 실패를 정의하자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지난 글에 이어 <테니스 이너게임>의 제3장 '자아 1을 조용히 시키기' 중에서 '판단하지 않기'를 읽고 느낀 점을 씁니다.


정확은 부정확의 축적이다

지난 글까지의 여정이 납득하게 하는 다발말(=단락)입니다.

우리가 범하는 오류도 발달 과정의 중요한 일부일 수 있다. 테니스 게임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실수로부터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심지어 슬럼프조차도 그러한 과정의 일부이며, 이는 결코 '나쁜' 사건이 아니다.

밑줄 친 내용을 정리하며 글을 쓰면서 다시 읽는 중에 작년 10월 이 책을 다 읽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영감을 얻어 배웁니다.

그중 하나는 '정확은 부정확의 축적이다'라는 <단단한 영어공부>의 영감 넘치는 문구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부정확에 야유와 조롱을 보냅니다. '문법이 엉망이군'이라거나 '발음이 왜 저 모양이냐'는 눈빛이 도처에서 감지됩니다. 이는 우리에게 자신의 불완전을 수용하지 못하게끔 합니다. 목소리가 들려야 할 곳에 침묵을 가져오고, 부정확에 대해 과도하게 마음을 쓰도록 만듭니다.

저자인 김성우 님이 지적하는 '야유와 조롱'은 충조평판의 변형이며, 그 원형은 연재를 통해 계속 다루고 있는 '판단'입니다. 판단이 힘을 얻으면 나비효과처럼 '야유와 조롱'이라는 간과되는 사회악으로 커갑니다.[1]


실수를 그대로 보는 일이 명확한 과제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는 영감은 바로 다음 포기말(=문장)입니다.

 테니스 게임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실수로부터 많은 것을 얻게 된다.

TDD에서 배운 핵심을 연상케 하는 이유입니다. TDD가 첫 번째 절차로 테스트 실패를 정의하게 하는 방식은 처음 접할 때는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이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상당한 내적 저항감이 있었습니다. <TDD의 Fail과 삶의 직면(直面)에 대하여>에 약간의 회상이 있습니다.

TDD를 처음 배울 당시는 부당해 보였다. 꼭 그렇게 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직 해당 기능을 짜지 않아서 실패할 것이 뻔한데 그걸 눈으로 꼭 확인해야 할까?

놀랍게도 <단단한 영어공부>에 당시 제 내면 상태를 설명하는 문장들이 존재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자신의 불완전을 수용하지 못하게끔 합니다. 목소리가 들려야 할 곳에 침묵을 가져오고, 부정확에 대해 과도하게 마음을 쓰도록 만듭니다.

사실 바로 그 불완전을 명확하게 정의하다 보면 한 발 나아갈 진정한 과제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위해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를 위한 일인데 말이죠. 아마 판단에 당하면서 자아 2가 위축되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합니다.


또한, TDD의 테스트 정의는 로널드 럼즈펠드의 4분면 프레임워크를 연상시키는 면도 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이 어디까지 알고 어디까지 모르느냐가 분명해져야 '낭비 없이' 시간을 쓸 수 있는 문제 정의가 가능하니까요.

마치 이러한 제 생각에 힘을 실어 주는 듯한 문장을 <테니스 이너게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쁘다'라고 규정하면 슬럼프는 오히려 더 오랫동안 지속된다. 훌륭한 정원사는 토양에 산성 비료가 필요한지 알칼리성 비료가 필요한지를 잘 안다.


첫 번째 단계는 스트로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소제목으로 책에 있는 구절을 옮기면서 TDD의 테스트 정의와 실패 확인이 바로 그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훌륭한 테니스 선수는 자신의 플레이가 발전하도록 자신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본연의 발전 과정을 억제하는 부정적인 생각에 잘 대처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코치와 선수 모두 현재의 스트로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발전 과정을 좀 더 빠르게 할 수 있다.

이는 결국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을 하기 위한 단계가 됩니다. 다시 한번 느낌을 강렬하게 해 주는 책의 포기말을 보겠습니다.

스트로크를 분명하게 바라보아야 하는데, 이는 개인적인 판단을 배제해야만 가능하다

분명하게 바라본다는 말은 '판단' 없이 보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제가 편향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메타 모먼트를 포착하는 역량도 갖춰야 합니다. 또한, 농부나 훌륭한 정원사처럼 경작 상태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경험의 축적을 전제로 하기도 합니다. 마침 책의 정원사 비유 덕문에 '정원 관리'를 키워드로 제가 썼던 관련 글을 훑어보고 상징적인 이미지를 인용합니다.


주석

[1] 믿음이 강해져서 '커갑니다'라고 했는데, 실제 삶의 체험으로 확고하게 믿는 것은 아니라 잠시 '커가는 듯합니다.'라고 쓸까 하다가 그냥 둡니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4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46. 어째서 우리는 그런 기술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47. 감정 과학자가 되는 법

48. 이해와 연민 길러 내기

49. 부드러운 소통 그리고 마음챙김이라는 감성 능력 개발방법

50. 신념이 나에게 쏘는 두 번째 화살을 멈추자

51. 교만을 다스릴 연민을 키우고, 마음챙김을 익히기

52. 행복 창조의 기술 그리고 집중과 통찰

53. 신체 언어와 언어적 의사소통으로 감정 인식하기

54. 행복은 개인적 문제가 아닙니다

55. 영어 공부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계기를 만나다

56. 이제 내가 습관으로 차릴 영어공부는 무엇인가?

57. 연민의 힘으로 개성을 포용하고 이름을 부르자

58. 케네디에게 침착함, 허심탄회함, 명료함을 배우자

59. 과정은 몸에 배어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60. 좋다, 나쁘다 판단하는 습관을 버리는 것

61. 판단이 부르는 일반화 본능의 무용함 혹은 해로움

62. 판단을 내리지 말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연민의 힘

작가의 이전글 평면적 데이터를 구조화하고 묻따풀로 설계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