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지난 글에 이어 <테니스 이너게임>의 제4장 '자아 2를 신뢰하기' 중에서 '자아 2는 누구이며, 어떤 일을 하는가?' 를 읽고 느낀 점을 씁니다.
앞장의 요약이 나옵니다.
자아-정신과 신체, 즉 자아 1과 자아 2 간의 조화를 위해서는 자기-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는 것이 바로 앞장의 주제였다.
그리고 익숙한 '최고의 기량'이라는 매듭말[1]이 등장합니다.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기 위해 필수적이지만 쉽지 않은 덕목, 즉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책 주제가 <테니스 이너게임>인 탓이겠지만 자주 등장하는 것이 저자가 좋아하는 표현이란 생각이 듭니다. 잠시 틱낫한 스님께 배운 마음챙김으로 관심을 돌려 보면, 마음챙김의 이유 역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기'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어색하면서도 매력적인 연결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어서 '최고의 기량'을 위해 자신감이라는 덕목을 갖춘다는 문구를 음미하다가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의 강렬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최근에 자신감을 많이 잃었는데, 어쩌면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작년에 읽은 <테니스 이너게임>을 다시 펼친 이유도 바로 그 자신감 회복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가 놀라울 정도로 관심을 두지 않는 몸의 신비를 말해 줍니다.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당신의 신체는 놀랍게도 조화로운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부분들을 깨닫는다면 자신감은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일단 저에게는 어려운 듯합니다. 적어도 아직은요.
계속해서 다음 다발말(=구절)을 읽어 나가니 예전에 로봇 공학을 연구하는 박사 님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당신이 책을 읽기 위해 의자로 걸어가 불을 켠다고 해보자.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근육의 움직임이 완벽하게 조절되어야 한다. <중략> 인간의 육체는 진정 불가사의한 도구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하는 몸의 기본적인 활동이 아직 인간이 구현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어려운 기술 장벽들로 이뤄져 있음을 깨닫게 해 준 팟캐스트[2]였습니다.
우리는, 아니 적어도 저는 몸에 대해 너무나 무지합니다.
위와 같은 사실을 고려할 때 우리 몸에 대해 경멸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결코 적절하지 못하다.
그나마 최근에야 몸에 대해 알 필요성을 깨달은 것이 다행이란 생각입니다. 그런데 '경멸적인 발언'이라는 말을 들으니 신기하게도 故박완서 작가님이 TV에서 평론가를 꾸짖던 장면에서의 비언어적 표현이 떠오릅니다.
한편,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아 2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며 무한한 잠재력과 더불어 가히 경이적이라 할 수 있는 내적 지능을 지니고 있다.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몇 차례 생각을 떠올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랬더니 '농부의 마음'이라는 키워드를 끈으로 또다시 <판단을 내리지 말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연민의 힘>에 썼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다음 포기말들은 이번 섹션의 요약으로 보아도 좋을 내용입니다.
자아 2를 존중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뻔뻔하게도 이토록 놀라운 도구를 두고 '통제되지 않는다'며 불평한다.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어구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매듭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월말김어준> 강의 중에 하나였습니다.
(5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51. 교만을 다스릴 연민을 키우고, 마음챙김을 익히기
54. 행복은 개인적 문제가 아닙니다
58. 케네디에게 침착함, 허심탄회함, 명료함을 배우자
59. 과정은 몸에 배어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61. 판단이 부르는 일반화 본능의 무용함 혹은 해로움
62. 판단을 내리지 말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연민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