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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Sep 19. 2024

쪽인 나로 일을 인식하는 과정을 풀어 보기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쪽인 나를 둘러싼 묻따풀의 다음 단계로 최봉영 선생님과 통화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는 저에게 지난해 묻따풀 했던 보고 여기는 과정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사람은 '오인 나'로 세상을 인식할 수도 있고, '쪽인 나'로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둘이 꼭 구분하지 않기에 아울러서 인식하는 경우가 더 익숙할 듯합니다.


누리와 사물과 사태와 사건과 판단

이때 '쪽인 나'에 초점을 맞춰서 벌어진 일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최봉영 선생님이 이런 상황을 차려서 풀 수 있는 도식을 주셨습니다. 도식의 이름은 <누리와 사물과 사태와 사건과 판단>인데, 이를 기준으로 '쪽인 나'로 일을 인식하는 일에 대해 글을 씁니다.


먼저 누리는 우주를 뜻하는 토박이말입니다.[1] 아쉽게도 '눌다'는 사전에도 없지만, 인공지능 삼총사도 대답을 못합니다.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리에서는 온갖 것이 누리고 눌리는 일을 바탕으로 언제나 늘 함께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꾸준히 <월말김어준>에서 박문호 박사님 강의를 들어온 덕분에 물리를 바탕으로 한 우주의 존재 양식을 평이한 한국말로 풀어낸 포기말(=문장)이라 여겨집니다.

한편, 이쪽과 저쪽이 항상 함께 하는 일은 '쪽인 나'라는 사고의 바탕인데, 물리적으로 따져 보면 바로 누리(우주)에 작용하는 힘이 사물이 존재하는 양식에 영향을 끼치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을 보고 최봉영 선생님께 누리고 눌리는 일이 '중력' 때문이냐고 물었습니다. 선생님도 부정하지 않으셨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우주에 존재하는 네 가지 힘이라 해야겠죠.


事物: 事이면서 物이고, 物이면서 事

사물이라는 단어를 두고 한자를 병기해서 보니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물'이라고 말하면 (뜻을 따져 보지 않고) object랑 비슷한 단어라고 여겼던 듯합니다.

콜린스에 따르면 object는 전혀 다른 뜻입니다. 사물에서 물에 대응한다고 하겠습니다.

An object is anything that has a fixed shape or form, that you can touch or see, and that is not alive.

비교해 보면 사물은 신묘한 정의입니다. 흡사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양자역학의 흔한 소개 문구가 떠오릅니다.

事物에서 事는 '일 事'로서 이쪽과 저쪽이 함께 해서 벌어지는 어떤 일을 가리키고, 物은 '것 物'로서 어떤 일에서 함께 하는 이쪽이나 저쪽의 어떤 것을 가리킨다. 누리에 널려 있는 모든 것은 언제나 늘 '事이면서 物이고, 物이면서 事'인 상태에 있는 事物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최봉영 선생님 설명에 따르면 동양은 오래전부터 불교의 영향으로 이러한 양상으로 세상을 이해했다고 합니다. 성리학도 음양오행이라는 쪽과 쪽의 관계로 세상을 보았다고 하고요. 반면에 서양은 절대적 진리로써 일을 따지는 바탕에서 언어가 발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상대성 이론의 등장 이후에 비로소 쪽과 쪽의 관계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사태와 사건: 사물을 인지하는 두 가지 방식

누리에서 사물을 대할 때 우리의 인식을 표현하는 말로 사태가 있습니다. 사태를 파악한다고 말할 때 바로 그 사태입니다.

사태[2]에는 상태(狀態)에 쓰이는 모습 태(態) 자가 쓰입니다. 그리하여 일의 상태라고 일컫지만, 앞서 최봉영 선생님의 事物 정의를 고려하면 역시 사태 역시 事物의 상태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에 관여하는 사물의 상태까지 아울러 보아야 일의 상태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인식하여 자신이 아는 내용과 대응시키고 나면, 사태는 사건을 낳습니다. 그리고 사건의 뜻을 찾아보면 한자에는 없던 수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국어사전 풀이의 빈약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뜻밖에'는 왜 포함된 것일까요?

뇌피셜로 갈 필요가 있군요. <제정신이라는 착각>에 따르면 우리 뇌는 행동을 하기 이전에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예측 기계처럼 판단을 내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낯선 것에 대해 항상 불안을 느끼는 이유가 아마 이와 깊은 관련이 있을 듯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뇌의 작용을 사람 관점에서 보면 항상 사태를 파악하는 일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판단을 내리기 위한 대응 관계의 결과를 사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판단이 끝나면 하나의 물건처럼 인식할 수 있습니다. 사건으로 규정된 것이죠. 새롭게 규정된 것은 뇌 입장에서는 예측 밖의 일을 처음 알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뜻밖에'라는 표현이 들어갔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최봉영 선생님 풀이를 볼까요?

사람들이 무엇에서 벌어지는 무슨 일을 어떤 사태로 알아보게 되면, 그것을 낱낱의 사건으로 규정해서 사건의 알맹이, 곧 사실(후)을 알아보는 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밖에서 벌어지는 무슨 사태와 비가 오는 것을 대응시켜서 "밖에 비가 오는 것 같다"와 같은 사태로 알아보게 되면, 이런 사태를 하나의 사건으로 규정해서 "밖에 비가 온다:라고 말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사건의 사실을 묻고 따져서 사실에 대한 규정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


한국말에서 사태에 대한 대응 판단과 사건에 대한 규정 판단

최봉영 선생님에 따르면 판단은 사태나 사건을 단위로 풀어내는 행위입니다.

판단은 사람들이 무슨 사태나 무슨 사건을 어떤 것으로 풀어서 무엇을 어떤 것으로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어떤 사태에 대해서는 어떤 사태와 그것을 담아내는 말의 대응 관계를 살펴서 무엇에 대해서 '-같다'와 같은 대응 판단을 내리고, 어떤 사건에 대해서는 어떤 사건과 그것을 규정하는 사실 관계를 살펴서 무엇에 대해서 다와 같은 규정 판단을 내리게 된다. 사람들이 사태에 대한 대응 판단이나 사건에 대한 규정 판단을 내리는 것은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사람들이 1. 무엇을 어떤 것으로 확정해서 판단하는 것, 2. 무엇을 어떤 것으로 추측해서 판단하는 것, 3. 무엇을 어떤 것으로 예상해서 판단하는 것, 4. 무엇을 어떤 것으로 짐작해서 판단하는 것이 그것이다.

최봉영 선생님이 함께 공유해 주신 또 다른 도식의 이름은 <한국말에서 사태에 대한 대응 판단과 사건에 대한 규정 판단>입니다. 그중 일부를 인용합니다.


주석

[1] 표기법의 일관성에 초점을 맞춘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는 이럴 때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세상’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2] 한자사전에서 씨말인 '모습 태'의 풀이를 찾아보았습니다.


지난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연재

(8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81. 떨림과 울림, 어울리다 그리고 매력

82. 차림과 알아차림 그리고 헤아림과 어림

83. 정신이 팔리면 NPC처럼 휘둘리기도 한다

84. 사람이 마음 그릇의 울림판을 통해 함께 떨고 운다

85. 몸과 마음을 통해서 대상에 대한 느낌과 앎을 갖는다

86. 열린 우리주의(홍익인간)와 닫힌 우리주의(집단이기주의)

87. 나도 알 수 없는 내 마음: 밑바탕 마음에 대해서

88. 믿음에 바탕을 두고 꿈을 꾸거나 일을 꾀한다

89. 글 내용에서 내 경험과 공통점을 찾는 일은 대칭적인가?

90. 대칭과 대응의 흐릿한 경계를 묻고 따지다

91. '스스로 하는 나'에서 '위하는 나'로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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